작가의 말_2
이 인식이 스스로를 해부하는 첫 단면일 수도 있겠군요.
느리죠.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그런 사람입니다.
왜 저는 이 이야기를 써야만 했을까요.
이야기를 쓰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그 여행을 낱낱이 해부하여, 글로 나열'해야만' 하느냐- 하는 거죠.
정말로 저는 괴로웠습니다. 대체로 모든 과정이 그랬습니다만, 특히나 그들과의 갈등을 그려낼 때는 실제로 그 상황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어쩌면 더 힘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해부’라는 게 그렇죠. 단면을 서걱서걱 잘라서 속을 들여다보고, 상흔은 더 정밀하게 해체합니다. 그저 그 표본에 대해 더 정밀하게 알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해부의 이유는 그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저는 해부에 능한 자라고 할 수 있겠군요.
태초의 기억부터 저는 그랬습니다. 싫은 기억을 자주 끄집어내서 가능한 잘게 해체했습니다. 싫을수록 더 작게, 더 수시로 난도질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그 표본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표본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면 저는 더 괴로워졌습니다. 그들을 이해해 버리면, 나쁜 사람들은 없어지고 어리숙한 저만이 그 상황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해’ 하지 못한 저라는 사람은 그 상황에서 유일한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매번 그런 식으로 저는 괴롭습니다.
라는 자각이 이번 여행을 집필하며 얻은 것 중 하나입니다.
내가 해부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이로부터 돋아나는 괴로움에 대한 자각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거죠. 이건 정말이지 중요한 인식입니다. 비록 왜 그런지 이해는 못하더라도, 모르는 것과 인식하고 있는 건 아주 다르지 않습니까? 이 인식이 스스로를 해부하는 첫 단면일 수도 있겠군요.
생활양식이 다른 사람 둘과 여행하며 갈등을 겪고 돌아와서는, 집필을 핑계로 그 갈등들 앞에 자주 매스를 들고 서야 했습니다. 아마, 글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는 원체 그런 사람이니 그렇게 했겠지만, 활자는 그 매스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줬던 것도 같습니다.
세비야의 이름 모를 거리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난 순간을 쓸 때는 최고로 힘이 들었습니다. 꽤 질긴 부위였습니다. 원하는 만큼 잘게 자르진 못했습니다만, 더욱 정교해진 매스를 사용하여 약간은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모양새로 어찌 됐든 해부를 마치고 매스를 내려두었습니다. 포기하듯 매스를 내려두고 그것들을 내려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또다시 쓰여있었습니다. 정말 모두 그럴 수도 있겠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과 함께 마지막 글을 발행하고도 왠지 모르게 찝찝했습니다. 어째서인지 또다시 저는 어떤 상황들에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어쩌면 <깐깐한 사람들 데리고 여행하는 법>의 집필을 계획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글을 쓰는 건, 더 날렵한 매스를 손에 쥐는 건, 그 덩그러니 놓여버리는 괴로운 상황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벗어났냐고 물으신다면, 음-- 아직 아닙니다. 그저 이제야 자신을 이해하기 하기 위해 한숨을 고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딱 한숨정도의 여유입니다. 회색빛으로 박제된 것 같았던 과거의 나를 날렵한 매스로 스윽스윽 떼어내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죠. 이제 그 회색빛의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볼지 결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저, 한 발자국만 떠나도 좋겠습니다.
느리죠.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그런 사람입니다.
부디 다음 일대기에서는 딱 한 발자국만큼 달라져있으면 좋겠다는 추신을 덧붙이며,
다음 여행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