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Jan 09. 2023

어? 예쁘다

듣다 보니 그렇게 됐다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나는 예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을 반쯤 감은 것처럼 보이는 속쌍꺼풀 눈은 높은 도수의 안경으로 인해 배는 작아 보였고, 낮은 콧대, 얇은 입술, 도드라진 광대와 각진 아래턱 등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미의 기준과 정반대만 모아놨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가족의 영향도 빼기가 어렵다.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해주시는 아빠보다 붙어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던 엄마는 항상 "넌 입술이 얇으니까 이렇게 웃으면 안 돼", "콧대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등 내 얼굴에 대해 아쉬운 얘기를 참 많이 하셨다. 그 생각은 점차 깊어져 '나는 별로 안 예쁘구나'란 관념이 머리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씻을 때처럼 필요에 의한 상황을 제외하곤 거울을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앞머리가 넘어갔나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볼 때 나는 엎드렸다. 거울을 볼 때마다 못 생겼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예쁜 것만 봐도 모자랄 판에 굳이 못생긴 내 얼굴을 볼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12년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지성 화장품 구매, 뷰티 유튜버를 구독하고 매일 돌려보기였다. 휴학을 하고 올리브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화장품 관련 지식이 업그레이드되었고 VIP 회원도 찍어봤다. 못 생겼다고 거울도 보기 싫어하던 사람이 뭘 이렇게 화장품에 매달렸냐 한다면, 이거라도 좀 발라야 못생김이 10에서 5로 좀 떨어지니까 그랬다.


그렇게 화장을 좀 하고 다녀서 그런 걸까? 여중·여고·여대를 나온, 소위 말하는 수녀트리를 겪은 나도 드디어 연애라는 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디 화장이란 건 완성된 모습이 중요할 뿐, 화장을 하는 과정과 지우는 과정은 너무나 귀찮고 엄청난 수고가 든다. 그래서 연인을 다 잡은 물고기라 여기고 내 본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데이트를 할 땐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자주 만나곤 했다. 꾸미는 게 좋았지만 매일 365일을 메이크업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 씻고 나간 건 아니다. 눈썹과 입술 정도는 칠하는, 기본적인 도리(?)는 하고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화장 잘 안 하네? 좀 꾸며봐.



지나 좀 꾸밀 것이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만 듣던 소리를 내가 직접 들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 했다. 안일했다. 언제 어디서든 인생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하물며 바로 옆 연인이라고 안전할리가. 아니 연인이니 안전해야 했던 게 아닌가 참으로 정당하고 어이없는 반항심이 생겼다.


"ㅇ.. 알았어^^(웃음웃음)" 하고 넘어갔지만 속으론 '아니, 애인이면 어떤 모습이든 예쁘다고 해줘야 되는 거 아냐?' 하고 궁시렁대기 바빴다. 화장을 통해 자신감은 좀 생겼을지 몰라도, 자존감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결국 바람 엔딩으로 끝이 났다. 프롤로그에 썼던, 바람 안 피겠다더니 또 핀 그놈.




이러한 과정을 겪는 와중 학교를 다니며 배우고, 책도 읽으면서 깨달음이 점차 많아지니 꾸밈이라는 게 참 부질없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왜 '내'가 아닌 '남'에게 '외적인 면'을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화장을 하지 않은 내 얼굴이 못나 보이더라도,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안 씻거나, 관리를 안 하는 모습이거나, TPO에 맞지 않는 차림새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생김새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꾸몄든, 안 꾸몄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나를 좋아해 사람은 계속 좋아해 것이고, 싫어할 사람은 계속 싫어할 것이다. 매일을 예쁜 모습으로 나오는 연예인도 그렇게 안티팬이 많은데 나라고 다를 리가.


도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예뻐 보이고 싶단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물론 이때까지도 "나는 못 생겼다"라는 전제는 깔려 있었다. 나를 사랑하게 되어서, 자존감이 높아서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기보단 해탈했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어쩌면 도피성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지금의 연인을 만났고, 다시금 변화가 생겼다.


애인에게는 세 가지의 말버릇이 있다. '너가 더 예뻐', '너가 더 귀여워', 그리고 '사줄까?'


같이 영상을 보다 예쁜 연예인이 나와서 "와 진짜 예쁘지 않아?"('내가 더 예쁘다고 말해'라는 의미가 아닌 진심 200%로) 하면 "무슨 소리야, 너가 더 예뻐!"라고 해주고, 엄청 귀여운 동물 사진을 보고 "귀여워!" 하면 "너가 더 귀여워." 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예쁘고 귀여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인가? 하고 느끼게 되었다.

 

가끔은 진심이 아니라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예쁘지도 않은 사람한테 매번 예쁘다고 해주는 모습이 참 대단하고 열심히란 생각도 했었다. 사람들이 으레 하는 걱정을 나 역시 했었다. 그래서 하루는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화장한 얼굴이 더 예쁘지 않아?", "꼬질꼬질하게 있는 모습 별로지 않아?"


아니, 뭘 해도 예쁜데?


정말 정말 신기하게도 애인의 눈에 나라는 사람의 외모가 희한하게도 이상형이었기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외모뿐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홧김에 끊은 PT를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장하고 멋있다면서 본인도 한동안 쉬고 있던 헬스장을 등록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인스타툰을 보고 재밌다고 해주고, 이런 걸 그리다니 대단하다고도 해줬다. 외모뿐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항상 좋은 말만 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말에 담긴 힘은 정말 강했다. 바닥을 설설 기던 내 자존감은 이후로 조금씩 일어선 것이다. 어떠한 미의 기준에 맞춰 비교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 자체를 예쁘고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자신감 있게 만들어주었다. 용기 내서 한 발자국 디딛은 행동을 크게 칭찬해주고 사랑을 주니,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운동을 하러 가고, 꾸밀 때 말곤 찍지도 않는 셀카를 찍어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꾸준히 들으니까,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예쁜 사람이구나, 나는 멋진 사람이구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제목으로 사용한 "어? 예쁘다"는 카페사장 최준의 유행어였다. 트렌드로 올라와 보게 된 최준 영상이 너무 웃겨서 애인에게 공유해줬다가 한 동안 최준 지옥에 빠져 살았다. 매일 내게 해주는 말이 최준과 찰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나카 상으로 바뀌었다. 좀 큰일 난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 풀꽃



농담곰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1102326446262833082/

도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출처 : http://www.yes24.com/Product/Goods/54587899

작가의 이전글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