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이 많고 우울한 날

경제적 독립이 안돼서

by 힐링아지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긴가 민가 할 때는 하지 마라

돌아갈까 말까 할 때는 가던 길 가라

-현숙의 '인생팁' 노랫말 중에서








노일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대기번호 2324

60세 이상,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1년에 한 번씩 신청받아서

합격한 노인들에게 1년간 일자리를 제공하는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담당 노인복지서비스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지원서류와

자격증들을 챙겨 갔다.


대기 번호 2324번

대기번호표를 받고 들어서는 순간 바로,

잘못 왔나? 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왠지 다른 이의 일자리를 뺏는 것 같고

아직은 와서는 안 되는 곳에 온 것 같고

분명히 자격범위에 해당됨에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지,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남의 사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잖아?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그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선택한 일이잖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 40여분 내내 머릿속은

같은 질문과 대답의 도돌이를 있다.




2324번 선생님~!!

드디어 내 차례

어랏~! 앉아마자

가지고 간 서류와 자격증을 꺼내면서

온갖 자랑을 하고 있다.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선생님, 참 많이 하셨네요"


면접 선생님의 시선에는 나 역시 똑같은 노인이다.

사회적으로 물리적 기준으로 분명 노인이 맞다.

노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껄끄럽고 개운치가 않다.


"제가 가지고 온 자격증은 1/3도 안돼요"


조금 전까지의 갈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화자찬하면서 면접관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마주 앉은 선생님들은 서류 접수와 함께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있다.

만세도 시키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 보라며 신체적 기능 상태를 체크하고 단어를 말하며 기억력 테스트도 하고 스마트 폰 활용 정도도 그 자리에서 다 확인

하면서 수많은 지원자들을 일일이 응대하고 있다




얽히고설키는 생각들

1 지망, 노일 일자리 사업단 안전점검 및 모니터링

2 지망, 노인 일자리 홍보지원(블로그, 유튜브)

그나마 가지고 있는 유효한 자격 덕분에 환경미화나 주방 보조 일이 아닌 약간의 순발력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두 분야에 지원하고 돌아왔다.


집까지 10여분 남짓 거리를 걸어오는 동안

머릿속이 많은 생각들로 엉키기 시작한다.

뭐라고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게 뭔지 모르지만 많이 무겁다.


30대에는 하루라도 빨리 60이 되기를 희망했고

60을 훌쩍 넘겼지만 나이 듦에 우울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대기번호표를 받기 전과 후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노인 일자리 사업단의 강사로 초대되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는데 무대 아래 객석에 앉을 수 있을까?

프리랜서 강사로 더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나?


무슨 소리하는 거야?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면서

각종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잖아...

오늘 신청은 잘한 거야.

자격이 안 되는 데 불법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일단 합격만 하면 적은 금액이라도 고정 수입이 생길 수 있으니 잘한 거야.


너도 이제 노인이.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것도 니잖아

합격을 하면 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즐겁게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되는 거야.


내 그릇의 크기를 너무나 잘 알지만

마음의 온도와 현실의 차가움의 괴리가 너무 크다.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불안함과 서러움으로 부끄럽고 우울한 하루를 보냈지만

넌 알잖아

자고 일어나는 내일 아침이면 이 우울감은 사라지고 없을 것...


나는 고민이나 걱정을 오래 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람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