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할 걸
"한~ 70은 됐능교?"
한 어르신이 내 나이를 5년은 더 많게 본다. 순리대로 나이 들어가는 것에 크게 자극받지 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훅~! 5살이나 많아 보인다는 말에는 사실 좀 충격을 받았다.
리즈 시절, 많게는 10살에서 적게는 5살까지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는데 거꾸로 5살이나 더 많이 보는 노안이 되었다니... OTL
나이보다 어리게 보였던 것도 나이보다 더 많게 보이는 것도 모두 피부 때문이다. 동안으로 봐줬던 이유는 부드럽고 맑은 피부결 덕분이고 지금처럼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는 이유 역시 처지고 늘어진 피부 탓이다.
피부가 좋으면 점수를 먹고 들어 간다고 할 만큼 좋은 피부는 동안으로 보이는 요인중 하나다. 다행히 부모님에게 좋은 피부를 물려받았다. 친정 엄마의 피부는 희고 부드럽고 매끈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시던 여든일곱 살까지 검버섯 하나 없이 깨끗하셨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도 여드름이나 뾰루지로 고민한 적도 없고 관리를 하지 않는데도 어쩜 그렇게 좋으냐는 기분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반면 민감하고 예민하고 건조했다. 사실 피부는 부드럽고 매끈한 것도 좋지만 탄력이 있으며 빛이 나야 하는데 젊은 시절에는 젊음 그 자체로 빛이 났었기 때문에 얇고 부드러운 것이 더 빨리 처지는 원인이 될 줄 몰랐다.
어느새 60대 후반으로 향해가는 요즈음 생전하지 않던 말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처럼 터져 나오고 급기야 내 나이보다 5살은 더 많게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고 늙어 버렸지?
주름살은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이 많은 잡티들은 언제부터 있었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를 주름과 잡티도 안경을 쓰지 않거나 확대경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친정아버지의 베갯잇이 꼬질꼬질하다고 말씀드리면 그제야 돋보기를 쓰시면서 '그렇네' 하시던 것과 깔끔하시던 시어머니가 밥그릇 속의 머리카락을 못 보시던 장면들이 생각나면서 '그래서 그러셨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디 피부만 그럴까?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이제는 바로바로 느낄 수가 있다. 세상에는 공짜도 없고 원인 없는 결과도 없다. 영원히 좋을 줄 알았던 피부의 처짐처럼 언제부턴가 하나씩 노화의 징조들이 생겨나고 있다.
3,40대에 지나친 음주를 즐겼고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담배도 피웠었고 전신마취 수술도 네 번이나 했으니 그때 몸이 받았을 긴장감과 상처들이 이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리라.
문득 서유석 가수가 불러서 유행했던 '너 늙어 봤냐? 난 젊어 봤단다'라는 노랫말을 실감하면서 혼자 피식 웃는다. 이 노래가 나올 때만 해도 50대였고 그저 재밌는 가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완전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백내장, 비문증
50대 초반에 왼쪽 눈에, 그 후로 오른쪽 눈까지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갑자기 눈앞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고 별이 반짝이는 비문증도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알레르기 비염
보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기침 때문에 결국 병원을 찾았다. 기침의 원인이 감기나 독감이 아니고 알레르기 비염이라고 한다. 환경도 예전 같지 않고 면역력도 떨어지면서 증상이 오래간다고 하신다.
심장 검사
'선생님, 대중탕의 욕조만 들어가도 가슴이 답답하면서 숨 쉬기가 어려운데 비염이나 호흡기와 관계가 있을까요?'
가슴이 답답한 것은 폐와는 무관하니 심장 검사를 받아 보라고 권하신다. 심장 검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노인이라고 불리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경로 할인이 시작되는 나이, 누군가는 아직 청춘이라며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나이, 노인 대학에서는 새댁이고 노인들 뒷바라지가 싫어서 경로당을 안 가는 나이, 마음만은 청춘이고 뭐든 지금 시작하기 좋은 나이, 그럼에도 신체적으로 노화가 계속 진행되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다.
아직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싫지 않지만 하나씩 늘어가는 노화의 징조들로 불편해지고 자칫 하면 마음까지 늙어갈 나이다.
노화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몸은 분명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게 말을 했을 텐데 예민하지 못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예민하지 않았던 덕분에 지금까지 더 잘 지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플 땐 '아프구나' 힘들 땐 '힘들구나'했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바쁘다는 핑계와 함께 그냥저냥 흘려보내며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하는 말이 아주 잘 들린다. 그럼에도 버티는 습관이 남아서 그런지 일단은 버티고 본다. 그러느라 더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이상이 있을 때마다 병원 찾는다고 바로 해결이 될 거라는 기대도 없을뿐더러 처방전에 이끌려 이약 저 약 먹으며 지내기는 더 싫다.
아들들은 기침만 조금 해도, '아이고' 하는 소리만 들어도 병원 다녀왔느냐는 말을 먼저 하지만 이제 노화의 과정 속에 있음을 알기에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그래도 정 견디기 힘이 드는 순간이 오면 병원을 한 번 가 볼까~ 하는 정도로 살아갈 작정이다.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애쓰거나 그들의 젊음이 부럽지 않다. 난 이미 젊어 봤으니까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 다만, 좋을 때, 젊었을 때 좀 더 관리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노인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 관리를 돕는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으니 충분히 좋다.
매일 1시간 이상 걸으며 운동하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하루 최소 7시간 이상 잔다)
비타민 등 건강식품과 단백질 챙겨 먹기
정기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모임 갖기
가끔 힐링여행 하기
꾸준한 글쓰기(브런치 포함)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면 어떤가?
노화의 징조들이 하나씩 늘어나면 어떤가?
오늘이 내 생에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이니 이 귀한 날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많이 웃고, 기도(명상) 하면서 충실한 노년을 살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