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나이에 떠난 동기를 애도하며
초등학교 동기의 부고를 받았다. 동기회 회장도 역임했었고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나름 저명했고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두어 해 전부터 모임에서도 보이지 않아 안부를 물으면 '몸이 좀 안 좋아서'라고 했는데 기어이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먼저 떠났단다.
아직은 세상과 이별하기엔 아까운 나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다. 어느 누구의 죽음 앞에 적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없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65살, 동기들 중에 이미 이 생의 연을 다한 사람들도 여럿 있고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픈 이별을 하는 이들도 아주 많다.
태어난 순서 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생에서 맺은 인연들 때문에 아쉽고 아프고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동기의 부고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아침이다. 낙엽 지는 가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로 이 생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 때문인지 하루가 뒤숭숭하다.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따뜻하고 좋은 날 두 손 활짝 기지개를 켜면서 싹을 틔우며 파릇파릇한 초록으로 많은 사람들의 탄성과 사랑을 받는 새싹, 무더운 어느 날 짙은 초록으로 왕성한 힘을 뽐내며 그늘도 만들고 바람도 실어다 주고 열매까지 나눠 주느라 힘이 빠지는 날이 오면 이파리들은 알록달록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온 산과 들을 물들이며 아직은 자신의 쓸모와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느 날 찬바람이 용심을 부리는 날이 오면 거부하지 않고 고요히, 살포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우리네 삶도 자연과 다르지 않아서 이제는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위로하면서 알록달록한 삶을 살아갈 시간임에도 미처 그러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안타깝고 아까운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집을 한 권 샀다. 오로지 제목에 꽂혀서 책을 샀고 종종 꺼내 읽기도 하고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책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면서 그간 책장에 자리하던 수많은 책들을 나눔 하면서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 중에 한 권이다. 책 표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박경리
가지고 있기보다는 버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위대한 작가 선생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는 말씀에 큰 위안을 받았다. 물론 작가 선생님의 버릴 것과 내가 버릴 것은 같지 않겠지만 몇 문장의 글귀만으로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와닿았던 책이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면서 어김없이 공감의 눈물과 함께 위로를 받곤 한다.
덕분에 알록달록 해야 할 나의 가을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보낼 수 있는 것 역시 작가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뿌듯하고 무척 좋다.
내게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다가올 그날이 조금 더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욕심을 담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날의 소망을 미리 그려본다.
이왕이면 감성 터지는 계절이면 좋겠다.
남은 사람들이 나의 죽음으로 인해 덜 힘들면 좋겠다.
나의 아픈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더 좋겠다.
더 욕심을 내자면 버릴 것조차 남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죽음의 복
잘 죽는 것도 복이라고 했다. 과연 내게 그런 복이 주어 질 지는 모르지만 이 가을을 잘 보내고 언젠가는 찾아 올 찬바람의 용심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서 60대는 60킬로로, 30대는 30킬로, 80대는 80킬로로 달린다고 한다. 또 혹자는 재밌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같은 시간이라도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 시간은 재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모쪼록 내게 주어진 시간은 무조건 재밌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시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간은 단 1초도 머무는 법이 없다.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 시간이다. 이렇게 계속 흘러가는 시간을 '하루는 24시간'이라는 틀이 과연 필요할까?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지금'이지 싶다. 심지어 '지금 여기'라는 말조차도 마지막 단어는 지나가는 시간의 끝자락인 것을...
시간이 가는 것이라면 오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오는 시간을 미래라고 하고 가버린 시간은 과거라고 하고 지금을 현재라고 하지만 흐르는 시간 어디를 붙잡고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현재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순간순간 재밌게 행복하게 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