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조사 품앗이

어떤 게 정답일까?

by 힐링아지매


시골에서 여름철 모내기와 가을 추수 때 일손이 부족하면 이웃끼리 서로서로 도와주던 풍습으로 품앗이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시골의 품앗이 풍경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바뀌었다.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운 지 오래이고 이웃 간에 일손을 나누던 풍습은 스마트한 농기계 돌려 쓰는 품앗이로 바뀌었다.






전통 경조사 품앗이

큰 댁에 맏언니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마을에서 한 집에 잔치가 있는 날은 온 동네가 잔치집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당숙모님은 예식장에서 오자마자 한복을 벗고는 곳간으로 가서 집안 동서들과 질부(조카며느리)들을 불러 각자 곳곳에 일을 맡며 총지휘를 하신다. 그렇게 당숙모님을 비롯해서 둘째 큰어머니들과 엄마는 잔치 때마다 품앗이를 했다.(아버지는 5형제의 막내라서 큰댁이 4곳이다. 첫째 작은 아버지... 둘째... 막내 작은아버지 그렇게 불렀다)


그땐 그랬다.

친정은 10촌까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 결혼식, 회갑년등 가을에 지내는 묘사까지 일손이 필요한 큰 행사가 아주 많았다. 안 행사가 전해지면 어른들은 미리 찾아가서 축의금을 전달하고 일손을 보탤 일이 없는지 물어봤고 당일에는 예식에서 예식을 마치면 일가친척들은 두 잔치집으로 가서 식사를 곤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진짜 잔치는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밤이 하이라이트다. 경상도와 부산에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랑 신부에게 하는'신랑 다루기'라는 습이 있었다.(경상도와 부산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주로 사촌 형제나 손윗 처남들이 새 신랑을 곤란하게 하는 짓궂은 장난을 시작으로 딸을 훔쳐간 죄를 물으며 사위의 발바닥을 위로 들고 마른 명태로 때린다. 이때 사위는 '장모님 살려주세요'를 외치고 장모는 아껴둔 술과 안주를 내오면서 '좀 살살해라' 하시며 사위의 편이 되어 준다.

아마도 이런 풍습은 대가족 시대에 백년손님인 사위가 처가 식구들과 빨리 친해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던 것 같다.(때로는 장난의 수위 조절을 잘 못해서 평생 처가 친척들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잔치뿐만 아니다. 아버지의 첫째 형인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채에서 상주의 곡소리와 함께 문상이 끝나면 안채로 모시고 따뜻한 국물과 음식을 대접했다. 상을 내 오는 사람은 주로 남자들이었고 상을 차리는 사람은 집안의 여자 어른 들이었다.


당시의 모든 경조사는 사람의 손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대가족일수록 더 했으니 가족과 이웃들이 서로 앗이를 하면서 치를 수밖에 없도 했지만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고 정서였다.


농촌의 경조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들 돌잔치를 몇 주일에 걸쳐서 기도 했다. 친가, 외가, 남편 직장 동료, 친구들 다 구분하여 집으로 초대하고 직접 만든 음식으로 대접을 했다. 그때 그 시절은 모든 여건이 그럴 수 있었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일하는 여성보다 전업주부가 많은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 정으로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주던 품앗이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

현대판 품앗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되고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남녀평등을 강조고 여성들이 손을 보태야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문업체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축의금 봉투와 교환 식권으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챙겨 먹을 수 있 장례식은 장례 전문지도사가 주관며 도우미의 일손과 주문 음식으로 문상객을 대접한다. 돌잔치 역시 이벤트 업체의 문 진행자에게 맡기고 엄마는 오랜만에 예쁘게 차려입고 찾아주신 손님들과 내 아이의 첫돌을 기며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더 나아가 일 손을 보탠다고 타인의 주방에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실례이며 경험자로써의 조언은 남의 일에 참견하는 매너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경조사는 모바일 링크로 전달하고 참석 여부는 받는 사람의 선택이고 부의금과 축의금의 금액으로 관계의 친밀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결혼식은 그나마 본인의 선택으로 소식을 전하지만 부의 소식은 주로 장례전문업체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상주와의 친밀도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보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전달받은 사람은 대개가 품앗이 리스트를 찾아보고 상대방이 나의 경조사에 참석을 했던가 안 했던가를 살핀 후 참석을 했다면 그 마음을 얼마로 표현을 했는지 보고 자신의 경조사금을 정하는 것이다.

경조금의 기준은 뭘까?

"나는 받은 만큼 똑같이 한다."


"나는 그 사람이 한 금액 대로 하기엔 부담 돼서 못해"


"이번 결혼식은 통장으로 보내고 가지는 못할 것 같아, 거기 뷔페가 7,8만 원 한다네, 그래서 미안해서 못 가겠네"


"그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축하해 주러 가는 입장이고 비싼 밥을 주는 것은 본인들의 선택인데 왜 우리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직접 가려면 최소 10만 원은 들고 가야 할 것 같아"


"그 사람 삶의 규모와 내 살림의 규모가 다른데 어떻게 다 따라 해? 그건 너무 힘들어"


"때로는 양해를 구할 때가 있어 '보내 주신만큼 못해서 미안해요'하면서... 어쩔 수가 없잖아"


"그래도 모두가 품앗인데 똑같이 해야 맞지"


"많이 받아 놓고 적게 주는 것은 아니지"


"많이 달라고 한 것도 아닌 데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 찢어지지"


"경조사는 품앗이잖아 그러니까 받은 만큼 하는 게 맞지"


어떤 것이 옳을까? 과연 정답이 있을까?

큰 댁의 언니 결혼식과 나의 결혼식을 비교해서 생각해 본다. 언니의 결혼식은 온 마을 식구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게 소 한 마리를 잡고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일손을 보탰다면 나는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사고 가까운 일가친척들만 집으로 오셨고 당숙모님들과 큰어머니들 두, 세분의 어른들만 도와주셨다.


예전의 품앗이를 기준으로 나의 품앗이 기준을 정했다. 웨딩홀이 어디가 됐던,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를 했던 결혼 축의금은 나의 상황에 맞게 하고 시간이 되면 참석하고 그렇지 않을 땐 입금만 한다. 하지만 부의의 경우는 상대가 나의 경조사에 참여를 했던 안 했던 내가 받은 모든 부의는 문상도 가기도 하고 부의금도 보낸다. 단, 단체에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제외한다.


경조금의 선택은 상대와의 친밀도를 기준으로 하되 자신의 위치와 경제적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