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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Jan 09. 2024

은별이

연구실에 정적의 시간이 왔다.

프로그램 개발팀은 주 40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회사원일 뿐

7명이나 되는 팀원들은 각자의 업무량 만을 소화 한 채

오늘도 어김없이 6시 정각이 되어 사무실 불을 껐다. 

그들은 술과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퇴근한다.

창밖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언 뜻 개발팀이 족발 얘기를 한 것이 매우 불만인 은별이는 그들의 행적을 잠시 상상한다.

지금 쯤 야들야들한 족발 앞다리 세트에 막국수. 그리고 소주와 맥주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겠지...

그곳에 나는 없고 김, 이, 박, 조 2, 최 그리고 영수는 소개팅이 있다고 했으니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고.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은별이는 열외 됐다.

인공지능이 은별이의 발목을 잡았다.

"그게 지금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강팀장은 은별이의 제안을 반신반의했다.

데이터를 이식한다?

"은별아 너 600만 불의 사나이라고 들어봤니?"

강팀장은 은별이가 제안한 임호 프로젝트에 그렇게 반응했었다.

그리고는 개발 중인 인공지능 팀에서 6개월 시한 부 극비리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것이 임호 프로젝트!

하루종일 IT와 프로그램, 빅데이터, 그리고 수많은 자료분석과 싸우는

이 업계 사람들이 지금 가장 원시적이고 인간적으로 흐르고 있는 족발회식은

잠시 기계적 인간에서 본능적 인간으로 회기 하는 시간인 것이다.

물론 은별이는 빠졌다. 계속 인공적으로 흐르고 있는 은별이도 얼마 전 까지는

족발에 소주를 즐겨 먹던 인간이었다.




판교에서 대전까지는 늘 교통편이 문제다.

정박사님은 언제나 버스를 타라고 문자를 보냈다.

'픽업은 나갈 테니 차표만 캡처해서 보내라'

은별이는 밤운전이 매우 불만이다. 두 시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언제부터 인지 

운전이 싫었다. 특히 야간엔 신경 쓸 일이 많다.

비라도 오는 날 에는 더욱 그렇다.


'이 쇳덩이를 옮기는 건 일단 나다. 내 의지대로 속도를 높이고 차선을 바꾸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 데려다준다. 이 첨단 장치가 가득한 이동 수단을 컨트롤하는 건 나인가?

자동차라고 불리는 이놈이 나를 조정하는 것인가? 내가 이 문명의 이기를 옮기는 것인가? 

단지 조작만 할 뿐 나의 위치를 바꿔 놓는 것은 이 자동차의 의지인가? 

도저히 모르겠다.


버스를 타는 것은 불편했지만 잠시 눈을 감고 쉴 수 있어서 선택한다.

은별이는 눈을 감았다.

특유의 버스 냄새와 덜컹거림이 신경 쓰이지만 오감을 집중하는 운전과는 다르다.

눈을 감았고, 소음은 음악으로 채우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다른 것을 내려놓으면 머릿속은 더 선명해진다.

과연 나는 '임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연기처럼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잊힐 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나?

가능한가? 


터미널에 정박사의 차가 보였다.

차에 올라탄 은별이가 앞 뒷말을 생략 한 채 정박사에게 툭 던진다.

"아빠 나 족발~"

"그럽시다. 팀장님!"

정박사는 차를 움직였다.


은별이 연구실에는 윙~ 하는 서버 소리와 에어컨이 낮은 소음을 내고 있다.

모니터는 켜진 채 깜박였고

책상 위 에는 임호의 기사와 여러 가지 자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은별이가 임호를 선택 한 건 어느 날 우연히 

뉴스에서 임호가 쓰러진 속보를 접한 후였다.

AI전문가 은별과 신경정신과 박사 정의도.

임호가 쓰러진 이후 부녀는 그렇게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다.

임호가 깨어나도 그렇지 않아도 플랜 B를 늘 생각해 놨다.


부녀는 윤리적인 문제와 과학적 접근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정박사는 딸 은별이를 그런 면에서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은별이의 프로젝트는 멈추 질 않을 태세다.


"운동선수는 말이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생각이 있다."

정박사의 지친 훈계가 시작됐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보다 멀리..."

"또 시작하십니까? 정도령 님!"

은별이는 가끔 정박사를 정도령이라 불렀다.

"만약에 임호가 받아 드린다고 해도 그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헤하는 일인거지..."

정박사를 쳐다보던 은별이는 허공을 손으로 저으며 말했다.

"정도령! 그 얘기는 벌써 끝난 거 아니오 본인이 선택한다는데 아니면 말고지.."

"양심은 인간이 그래도 멸하지 않는 최소가치의 본능이다. 가책을 못 느끼는 인간이 많아지면서

세상이 혼탁해졌지만...."

"네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은별이는 식탁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야경 속에 시선을 둔다. 여전히 세상은 혈관의 피처럼 흘러 다닌다.

불빛 따라 차들은 섰다 가기를 반복하고 가로등은 우두커니 

그리고 바람은 불고 작은 낙엽들이 떨어져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은별이의 시계도 임호의 회복도 모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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