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 안주

생맥주엔 노가리가 최고다.

by 원영대

회사 일과를 마치고 오랜만에 야간 축구 경기를 하러 야외 운동장을 찾았다. 대부분 주말에 경기를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게 주중에 야외 운동장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갔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주중 야간 운동을 한다. 우리 집행부의 능력이 좋은 것 같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좋은 시간대의 운동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실내 운동이 안되니 모두들 야외 운동을 하기 위해 가능한 공간을 찾는다. ‘인간은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 있는 시체와 같다’라고 늘 말을 하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다.


운동장은 2시간 단위로 예약을 하고 있다. 땀을 흘린 운동을 마치고 집이 같은 방향인 선배가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다. 시간은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영업이 10시까지인데 어떻게 술을 마셔요?”

나는 한심하다는 듯 선배에게 불만을 내뱉었다.

“가장 빨리 되는 안주 시켜서 생맥주 마시면 돼. 빨리 와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니면 정말 맥주가 마시고 싶었는지, 함께 하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을 기세라 가장 가까운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여기 가장 빨리 되는 안주랑 생맥주 주세요.”

“아이고, 성격들도 급하시네. 노가리드릴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래요. 빨리 맥주 먼저 주세요.”


우리들의 성화에 가게 사장님도 덩달아 바쁘게 생맥주를 준비하고 통통한 노가리도 연기가 폴폴 나게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은 출입문 창을 통해서 보니 골목기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대고 있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건 아마도 무슨 사고가 났거나 불이 났다는 것이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여기서 무슨 촬영을 한데요. 거리 촬영도 한다고 해서 무슨 관계자가 와서 10시 넘어도 간판 불은 켜 달라고 부탁을 하던데요.”


우리가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인아주머니가 눈치를 챘는지 상황 설명을 맛깔나게 해 주신다. 손에는 노가리 몇 마리를 들고 있었다. 잠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정말 많은 카메라들과 관계자인 듯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무슨 영화인지, 어떤 드라마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바라만 보다가 이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밤이 늦도록 촬영을 할 모양이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참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몸 안에 녹아들게 해서 남들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이다. 관객들은 영화배우 본인이 아닌 영화 속 주인공의 슬픔과 아픔과 기쁨을 함께 즐기고 느낀다.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은 오로지 영화 속 주인공의 몫이다. 그 주인공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는 피나는 노력과 열정을 쏟는다. 마라토너 역을 하기 위해 20킬로 몸무게 감량을 하고, 정신지체 장애인을 연기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배운다. 영화 속에 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청소년들의 1순위 꿈이 연예인이라는 뉴스가 자주 기사에 오르내리곤 한다. 화면에서 보이는 그들의 화려한 삶에 대한 부러움과 열정 페이로 불리는 현실의 막막함을 비교하곤 한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연예인들의 부와 화려함이 그들의 꿈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일의 희망을 얘기해도 그들에겐 당장의 삶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배우로 사는 이들에게도 감내해야 할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공인이라는 미명 아래 그들의 모든 사생활은 공개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기를 얻은 배우나 아이돌 멤버가 인터뷰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장 골목에 있는 곱창집을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 계산된 멘트는 아닐 것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노가리 한 접시를 서둘러 가져온다. 반쯤 남은 생맥주 잔을 비우고 노가리 배를 갈라 맛있는 표정으로 입에 문다. 불내음이 풍기는 노가리를 씹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반건조 노가리는 없나?’ 세월의 흐름이 치아에서도 느껴진다.


“운동하고 이렇게 맥주 한잔 하는 게 진짜 영화 같은 인생이지 머. 인생 뭐 있어?”


생맥주 두 잔째를 비우며 선배가 푸념을 한다. 그도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의미도, 노가리가 질기다는 생각도. 시곗바늘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P.S) 노가리에는 소맥보다는 생맥주 본연의 맛이 어울린다. 나의 인생도 다른 사람의 삶을 섞는 것보다 내 본연의 삶을 사는 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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