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큰 아들 표정에 당황함이 보였다. 학교 숙제로 요구르트병을 가져가야 하는데 당일 아침에 생각이 난 것이다. 전날은 뭘 하고 이제야 어수선을 떠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 문을 연 마트에 가서 요구르트를 구매해 왔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두 개씩 마셔버리고 통을 깨끗이 씻어 보냈다. 요구르트 통이나 우유팩은 준비물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런 건 학교에서 준비해 주면 좋을 텐데, 분리수거하는 날이 아니면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갑자기 김밥을 싸야 한다고 해서 아침 일찍 동네 김밥 집에 도시락 통을 가지고 가서 준비한 적도 있다.
얼마 전 둘째 아들 역시 큰 페트병이 필요하다고 아침이 되고서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젯밤까지는 유튜브 영상만 보더니 아침에서야 준비물 생각이 나는가 보다. 탄산수나, 주스를 따로 사 먹지 않는데 우리 집에 페트병이 있으리 만무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버린 것을 주우러 나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간이 분리수거함까지 뒤져서 준비시켰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침 일찍부터 준비물을 위해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은 준비물만이 아니다. 가정 통신문도 학교 가기 전에야 건네주니 읽어보고 사인하기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손을 잡고 문방구를 찾아간 적도 많다. 문방구가 큰 길 건너, 학교 방향과는 반대로 가야 해서 혼자 보낼 수 없다. 문방구에 데리고 가면 아이들은 기회가 왔다는 식으로 준비물 외에도 사고 싶은 것을 조르곤 한다. 그래도 문방구가 가까이 있으니 다행이다. 점차 문방구도 사라지는 추세라서 급한 준비물은 전날 다이소에서 구매해 놓거나, 쿠팡 새벽 배송을 애용한다.
막내딸은 준비물이 있으면 전날 다이소 가자고 서두르는 편이다. 오빠들은 마음이 느긋해 보이는데, 막내딸은 조급증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아침에 당황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숙제가 어렵다며 가끔 내게 부탁한다. 딸의 숙제를 도와주다 보면 은근히 도전받게 되고,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해도 아이들 힘으로 어려울 때가 있으니 온전히 아빠 숙제가 되곤 한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 숙제를 핑계로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이들 숙제로 내가 바쁘고, 당황하고, 화낸 적도 있듯이 오래전 그때도 그랬다. 지금보다 준비물이 더 많았던 시대였다. 피리,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을 과목에 맞추어 가져가야 했고, 사물 주머니라고 해서 별것도 없는 것을 가지고 가야 했다. 미술이 있는 날은 스케치북에 크레용, 물감까지 챙겨야 하니 가지고 갈 것이 엔간히 많았다. 사물함이 뭔지도 모를 시절이니 과목에 따라 가져갈 것이 많았다. 국민학생 아이들이 얼마나 잊지 않고 챙겼겠는가? 지금이야 학교 앞이 집이지만, 그때는 학교가 적어 집이 꽤나 멀었다. 한번 준비물을 잊으면 아침은 땀 범벅이 되곤 했다.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국민학교 3학년 때 한 달 숙제로 받은 국기함 만들기였다. 3학년에게 나무로 국기함을 만들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건 내 숙제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어찌할 수 없어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자칭 동네 유지요, 오지랖으로 따지자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수양아들까지 거둘 정도면 얼마나 여러 사람 일에 참견하시고, 도움을 주었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아버지가 아들 삼은 형이 목공을 하고 있었으니, 이런 숙제야 식은 죽 먹기요, 세발의 피였다. 그때는 형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나보다 나이가 20살은 많았을 것이다.
뽀얗게 대패질한 나뭇결이 손에 부드럽게 다가왔다. 뚜껑도 베니다 한판으로 대강 만든 게 아닌 두툼하게 원목을 얇게 깎아 주었으니 명품이 따로 없었다. 밑에서 뚜껑을 밀어올리면 닫히는 구조였는데, 얼마나 세심하게 깎았는지 뚜껑을 밀어 올리면 부드럽게 밀려 올라갔다. 아버지 같은 분이 부탁했으니 오죽 신경을 썼겠는가? 내가 한 거라곤 정확하게 잘린 부품을 목공 풀로 붙인 것 밖에 없었다. 내가 붙인 기억은 없으니 그것도 아버지의 몫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친구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재료를 판다고 했지만,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아한 작품이 아닌가? 그런데 별거 아닌 숙제로 유난을 떤 것 같아 유독 신경이 쓰일 정도로 나는 수줍은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혼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자랑스러운 작품을 선생님께 보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 작품을 보신 선생님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내가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작품이었고 선생님은 소유의 욕심을 보이셨다. 결국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말았다. 내 숙제로 만든 작품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중학교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여의도에 살고 계신 선생님댁을 방문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고이 잘 간직하신다며 나의 작품, 아니 아버지의 작품 국기함을 다시 보여주셨다. 표면에 묻은 검은 얼룩을 보고 벼루와 먹을 담아두는 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말씀 안 하셔도 금방 알았다.
아버지는 아들 숙제에 관심이 많으셨다. 아크릴로 연필꽂이 만들기 할 때도 유리 가게 하는 분을 통해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오셨다. 아크릴이라는 게 자르기 위해 전용 칼을 쓰는데 한 번에 잘리지 않아서 여러 번 긋고 잘라야 해서 면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는다. 자르다 보면 아크릴 플라스틱 특유의 냄새도 많이 난다. 본드를 잘 못 붙이면 하얀 본드 자국이 지문과 묻어나 투명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 숙제로 이런저런 곤욕을 치렀듯이 그때 아버지도 나 때문에 별 부탁을 다 하셨을 테다. 자식의 숙제가 어쩌면 아버지의 사명이 되는 순간이다. 나의 숙제를 같이 하시며 아버지도 나처럼 만드는 것이 즐거우셨을까?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져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사랑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