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 캘리를 배우기 위해 블로그 이웃을 찾아갔다. 글씨가 아름다워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다 여유 시간이 생기자마자 배우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1 대 1 수업으로 진행해 주시겠다는데 우천 때문에 약속을 미룰 수도 없었다. 선생님 글씨를 모방하기 위해 2시간 수업에서 무던히도 애썼다. 몇 주 걸리는 커리큘럼을 하루 만에 속성으로 배우다 보니 많이 부족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꾸준한 연습으로 감각을 키우는 것이리라. 선생님께서는 붓 펜과 공책, 캘리 전용 종이를 선물로 주셨다. 집에 가서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아이들과 캘리 연습을 해보았다. 딸아이가 아빠는 지금 왜 이런 걸 배우느냐고 물었다. 지금이 어때서? 평소에 펜도 잘 쓰지 않는데 갑자기 붓 펫을 들었으니 이점이 이상한가 보다.
"아빠가 사람들에게 좋은 글귀를 이쁜 글씨로 나누어주고 싶어서 그래."
나는 최근 들어 아날로그 펜을 잘 쓰지 않는다. 유일하게 쓰는 경우가 책에 줄치는 정도이다. 대부분 아이패드와 디지털 펜슬을 이용해 디지털 글씨를 활용한다. 만년필도 있지만 생각처럼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종이나 노트를 휴대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펜을 쓸 일도 별로 없다. 갑작스럽게 메모해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상대가 내밀어 준 종이에 쓰는 경우이다. 대부분 핸드폰에 메모하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들은 손글씨 쓰기를 연습하면 좋겠다. 글은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수련하는 과정을 담는다. 글씨는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하고 마음을 담아 보내는 메신저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편이라 나름 보기 편하게 글씨를 쓴다. 특히 샤프에 욕심이 많아서 고가의 샤프를 써야 글씨가 잘 써진다고 한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생일 선물로 비싼 샤프를 선물로 주었다. 막내는 여자아이라 그런지 글씨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책상에 앉아 뭘 쓰고, 오리고 붙이고, 포장지를 만들곤 한다. 누구에게 선물로 준다고 하는데 내가 받아본 적이 많지 않은 걸 보면 친구들과 주고받으며 노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은 아날로그 글씨 연습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붓 펜이란 게 참 신기하다. 뒷부분을 누르면 먹물이 붓에 묻어나며 편하게 쓸 수 있으니 우리 어릴 적에는 왜 이런 게 없었나 아쉬울 정도이다. 특히 막내딸이 관심이 많아 나보다 더 열심히 쓰고 싶어 했다. 부족하지만 선생님께 배운 대로 알려주었다. 역시 모든 일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실력도 늘어난다. 선생님 수준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비슷해지는 글씨를 만난다. 비 오는 날 멀리 다녀온 수고가 아깝지 않았다. 다시 선생님께 연락해서 아이패드로 연습하는 법을 물었다. 가끔 아쉬운 대로 아이패드로 연습 중이다.
나는 오랜 시간 글씨 연습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 배움보다는 연습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시간 나시면 먹을 갈고 작은 붓을 들고 세로로 글을 쓰셨다. 때로는 부적이란 것도 쓰셨는데, 그리시는 건지? 쓰시는 건지 애매하기도 했다. 뭔지 모를 빨간 가루를 갈아서 물에 타면 립스틱 빨간색보다 더 진한 액체가 된다. 작은 붓을 이용해 붉은 그림을 그려내셨다. 아마도 부적 쓰는 책을 보고 연습도 하시고 나름 자신만의 철학을 추가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을 누군가에게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어린 마음에 저런 게 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효과보다는 마음의 안도감을 주는데 이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사람은 믿는 데로 되는 법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제법 글씨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깍두기공책에 차곡차곡 쌓인 글씨가 이쁘다며 선생님께서 자주 칭찬해 주셨다. 칭찬받기 위해서 더 애썼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미술수업안에 서예 수업이 있었다. 연필 글씨와는 달랐지만, 한자 한자 써 내려가는 획이 좋았다. 특히 한일자를 그릴 때 시작점과 마무리점을 이어가며 잘록해지는 모양새가 좋았다. 친구들은 힘들어했지만, 나는 가장 자신 있게 그려내는 획이었다. 한동안 공책 글씨에 위 머리가 안쪽으로 들어간 서예풍의 세로획으로 쓰기도 했다.
내가 서예를 잘하던 비법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버지의 붓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름 족제비 털, 노루 털을 이용한 비싼 붓을 쓰고 계셨으니, 한번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문방구 붓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버지는 서울 어딘가에 가셔서 그런 붓을 사 오셨다. 서예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 붓도 한 자루 사주셨다. 선생님도 써보고 싶다며 빌려 가는 붓이었으니,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명필이 되려면 도구가 좋아야 했다.
선생님께서는 교실 뒤편에 명작들만 붙여놓곤 하셨다. 내 글씨는 거의 빠진 적이 없다. 아버지 덕분에 글씨 잘 쓰는 아들이 되었다. 딸과 함께 캘리를 하며 예전 아버지와 쓰던 붓글씨 생각이 났다. 이제는 편하게 눌러쓰는 붓 펜이 그때 아버지가 사주신 족제비 털 붓보다 백배는 편하다. 그래도 먹을 찍어 글씨를 쓰던 빳빳했던 붓의 고급스러움은 따라가지 못한다. 이왕 쓰는 거 제대로 쓰라고 버스 타고 멀리 다녀오신 아버지의 진심을 기억하며, 아들에게도 흔쾌히 비싼 샤프를 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