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손은 약손

by 행동하는독서

큰아이가 밤에 갑자기 열이 올랐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해열제를 사러 약국을 가야 하나? 스마트폰 시대도 아니라서 밤에 문을 연 약국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아기의 고열을 잡지 못해 장애아가 된 사례를 주변에서 보았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처음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뭐든 신중했다. 늦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배운 것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수년 전부터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오고 있었다. 현대의학의 대증요법이 하지 못하는 맹점을 알아가며 재미를 찾아나갔다. 그러다 침과 뜸의 효능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결국 배우는 단계까지 발을 들였다. 일 년 동안 일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 동대문에서 하루 종일 배우고 실습했다.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우리 가족의 건강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었다. 가족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당시 침술원을 운영하시던 분이 아침마당에도 수차례 소개되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분이라 배우는 수강생이 참 많았다. 근처 경희대 한의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주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종의 수강생들이 같이 배웠다. 멀리 지방에서 배우기 위해 올라온 분들도 계셨으니 일요일 하루쯤 희생하는 것은 큰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돈 받지 않고 봉사하는 것은 허용하던 때라서 국회나 금호 빌딩 등 몇 군데에서 무료 봉사소가 있었다. 나도 모든 과정을 수강하고 다시 일요일에 봉사를 나가며 나름 배운 것을 활용한 적이 있다. 참 보람 있던 시절이었다. 이웃이 다리를 접질려서 걷기도 힘들다고 하기에 한번 해주었는데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나중에 병원에서도 뼈와 인대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내가 도와드린 것이 꽤나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급한 데로 열나는 아이의 머리에 배운 침과 뜸을 활용했다. 수강생들에게 배운 귀침을 이용해서 귀에도 살짝 시침을 하고, 아직 약을 삼키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비타민C를 녹여 마시게 했다. 잠시후 아이의 열은 서서히 내려갔고, 아침이 되어서는 큰 문제 없이 어린이집에 갈 수 있었다. 배운 것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활용한 좋은 사례였다.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작은 도구만으로도 병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다. 지금처럼 현대의학의 이점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면 활용할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알고만 있다면 응급처치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아버지는 막내 아들이 한의대 가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공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침을 배우고 봉사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대학을 나와야 면허를 딸 수 있는 체계라서 수능 성적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의료 면허도 가질 수 없다. 일본이나 미국과는 다른 의료체계라서 어쩔 수가 없으니 그저 배워서 이웃봉사 정도밖에 할 수 없다. 그 간단한 침과 뜸의 민간 의료마저 1960대를 마지막으로 의사들에게 편입시키고 말았다.


아버지는 진짜로 침을 꽤나 잘 활용하셨다. 그 시절 어디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배우셨는지 간단한 침을 활용하시곤 했다. 가족들이 어디가 아프거나 통증이 있으면 침을 활용하시곤 했는데, 도장침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침은 두려움이 대상이었다. 소화가 되지 않거나 다리를 접질렸을 때 놓는 침은 아버지에게 일도 아니었다. 일반인에게도 침 면허가 허용되었다면 아버지는 돈을 꽤나 많이 버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다양한 한의학 서적을 활용해서 직접 본인 병에 맞는 한약재를 달여드시기도 했다. 경동시장에 나가서 약재를 구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 전 종갓집 형의 공장을 방문했다가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는 명의야, 명의, 병원에서도 안된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만들어준 약 먹고 내가 나았어. 아저씨는 시대를 잘 못 만났어. 조금만 배우고 기술을 익혔으면 크게 될 분이었는데."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어주셨다. 실제로 내가 어릴 적에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것이 없다고 했던 동네 아저씨를 고쳐주신 적이 있다. 곧 돌아가실 거라며 방에 혼자만 눕혀놓은 아저씨를 아버지가 침과 약재를 활용해서 일상으로 돌려놓으셨다. 그 집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오빠라고 부르며 철마다 맛있는 것을 가지고 왔으니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건 사실이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자기병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나마 사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신 분이었다. 당신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공부하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아프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30년을 사셨으니 자신의 공부 덕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자기병을 고치기 위해 공부하신 내용을 주변에 많이 베푸셨던 분이라고 해두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어떻게 배우시고, 공부하셨는지 질문하지 못했다. 아버지에 관한 미담이 많을텐데 잃어버린것 같아 아쉽다. 그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 내 마음에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던 때,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교육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 어떻게 혼자 공부하셨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나도 배운지 오래되어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피가 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