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눈물짓게하는 애틋한 순간

by 행동하는독서

좋아해서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호감 있다고 한다. 어쩌면 사랑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포함하고 있어 ‘애’라고 하는가? 사랑하지만 어쩌지 못할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가? 나는 ‘애틋하다’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이별하는데도 잡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말이 있을까?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강한 감정이 애틋함일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무릇 슬퍼야 더 강렬해지지 않는가? 이별의 슬픔이 없다면 사랑은 그저 행복으로 끝나버렸을 단순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막 자대 배치를 받고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사회와 이별한 지도 몇 달이 지나 군대물이 조금은 들어갈 즈음이었다. 일요일, 그러나 막내 이등병에게 일요일은 사치였다. 그때 갑자기 분대장으로부터 부모님께서 면회 오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위병소 옆 솔밭에서 싸오신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 원하지 않던 저녁 이별의 시간, 위병소에서 손을 흔들 때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애틋했다.

다른 면회객들이 자동차를 타고 나가시는 사이로 내 부모님은 올 때보다는 가벼워졌지만, 가방을 등에 메고 걸어가셔야 했다. 오실 때야 택시 타고 들어오셨겠지만, 나갈 때 택시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들 하나 먹이자고 족히 수 킬로 되는 거리를 들어오셨던 부모님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 입대 전 풍을 맞으셔서 입이 살짝 돌아간 얼굴로 가시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서 들어가라면 손짓하시던 가녀린 모습이 안타까웠다. 당장에라도 그 짐을 대신 지고 기차역까지 가고 싶었다. 죄송한 마음을 한동안 추스르기 어려웠다. 이별하는 마음이 먹먹했고, 가느다란 어깨에 놓인 배낭이 유별나게 슬퍼 보였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감정이 복 받혀 오른다. 애틋함은 사랑과 슬픔을 함께 담고 있다. 아버지께 다시 면회 오시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산에 가신다고 나서는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위병소를 돌아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제대한 후에도 어머니께서 먼 거리를 혼자 걸어가시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한 이후로 한동안 어디 가신다면 꼭 모시고 가려 했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차를 한 번도 타실 수 없었다. 내가 차를 구매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애틋한 기억은 안타까운 슬픔을 동반한다. 기대치가 있으니 사랑이고 그렇게 되지 못하니 안타까움을 넘어 애절하다.


아내가 임신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혼자 가는 모습이 차마 싫었다. 아이를 업고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엄마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도 그때 가방을 메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힘든 발길이 떠오른다. 나에게 애틋한 감정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모습인가 싶다. 애틋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리다. 심장이 조여오는 슬픔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리움을 더 아련하게 만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