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부쩍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라 그런지 어린이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변에선 이제 일 년 남았으니 잘해주시죠라고 한다. 어린이는 초등학생까지. 누구 정한 건지는 모르지만, 이런 명확한 구분이 있어 편하긴 하다. 아이들도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어린이라고 우기지도 않으니 아이들과 실랑이할 일도 줄었다. 나도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청소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1학년인 둘째가 자기도 어린이날 선물이 필요하다며 조른다.
"너는 중학생인데 어째서 어린이 취급을 받으려고 하니?"
"동생만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똑같이 받았는데 지금 와서 다르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뭔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틀린 거 같기도 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막내가 나선다.
"그럼 나도 중학교 1학년까지 선물 받을 거야."
한 번의 예외가 머리 아플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연년생 아이들은 이래서 뭐든 같이 해주고 같이 멈춰야 하는데, 이번에는 좀 쉽지 않을 듯하다.
선물 때문인지 막내가 부쩍 아빠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안마이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 좋다. 특히 막내의 여리지만 다부진 손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원함이 있다. 그런데 이 안마가 무척 비싸서 뭔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좀처럼 받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둘째도 가끔 다리를 주물러 주곤 하는데, 뭔가 정성이 부족하다. 얻을 것을 위해 대강 시간을 때우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막내를 부른다. 그래서 막내는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안마도 오래 받을게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안마의자가 잘 팔린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안마의자에 앉으면 나는 바로 자는 편이다. 비록 사람 손은 아니더라도 손과 발을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밀려오는 시원함은 나이 때문인가?
"아빠는 안마의자도 있는데 왜 맨날 우리에게 해달라고 하세요?"
불만 섞인 목소리로 얼굴을 찌푸리는 막내에게
"그래도 우리 딸 손이 제일 시원해."
안마는 싫어도 그 말이 나쁘진 않은지 피죽 웃어버린다.
아버지께 안마의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는 안마보다는 등 두드리는 일이 참 많았다. 위가 좋지 않으셔서 잘 체하시고 소화제를 자주 드셨다. 속이 쓰릴 때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소다를 드시곤 했다. 화학명으로는 수산화나트륨으로 일명 양잿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위궤양이 심해서 속이 쓰린 나날이 많으셨나 보다. 위산을 중화시켜주는 알칼리성 소다가 속을 편하게 만들었을 테다.
소다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작은 비닐봉지에 노란색 인쇄가 된 소다를 두봉 씩 구매한 적도 있다. 통증이 심하면 아침 일찍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몸에 안 좋으니까 드시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가장 좋은 약이라 하셨다. 병원에서 액으로 된 위궤양약을 몇 달 치 처방받아온 적도 있지만, 그래도 소다가 제일 효과가 빠르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통증 완화 방법이다.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마다 등을 두드려야 했다.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오르락내리락 등을 두드리는 것은 주로 어린 내 몫이었다. 한참을 두드리면 트림을 하시며 시원하다고 하시는 모습에 안도가 되곤 했다. 어른이 되어 경락을 공부하고 혈점을 알았다. 어디를 누르고 두드리려야 효과가 좋은지 알았지만, 이미 아버지는 내 옆에 없었다.
아버지 엄지 손에 바늘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은 다반사였다. 가장 좋은 민간요법이 바로 손 따는 것 아닌가? 그대 부모님이 그려셨던 것처럼 가족이 체하면 첫 번째로 하는 처방은 소화제지만, 그래도 낫지 않으면 침을 꺼낸다. 그리고 손을 따고 피를 뺀다. 그때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시던 무서운 행동을 내가 자연스럽게 해낸다. 그래도 바늘은 어렵다. 바늘은 좀처럼 얇은 피부를 뚫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날카로운 바늘은 뭐든 잘 찌르고 피를 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힘을 줘서 바늘을 찔러야 하는데 자칫 뼈에 닿으면 파상풍을 일으킬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어른들은 그걸 조심한다고 머리에 긁곤 하셨다. 그게 의학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다들 그렇게 하시던 때였다. 옛날 어른들은 바늘을 어떻게 그렇게 잘 다루셨을까?
손을 따서 까만 피를 내고도 한동안 등을 두드려야 했다. 아버지 뒤에서 등을 두드리는 내 모습이 아련하게 흑백 사진처럼 그려진다. 지금 내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는 딸을 느끼면 아버지가 떠오르곤 한다. 힘들다며 작은 주먹을 쥐고 두드린다. 체하지도 않은 내 등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진다. 걸린 게 무언이든 다 내려갈 것만 같다. 이제는 가슴에 안기도 어려울만치 커버린 딸과 교감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