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이 아카시아라면

by 행동하는독서

차라리 잔인한 달은 오월이 아니겠는가? 가정이라는 따뜻한 이면에 담긴 의무감은 통장을 비우기 딱 좋다. 자본주의 논리 속에 상업화는 피할 수 없구나. 무시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이 SNS의 발달로 파괴되었다. 작은 인연이라도 있을라치면 뭐라도 보내야 한다. 손가락 하나면 상대의 계좌에 숫자가 들어가는 세상이 아닌가? 보고 못 본채 할 수도 없는 일이 다반사다.


아직도 스승의 날이 남았으니 맘을 놓을 수는 없다. 학교 선생님만 스승이라고 인정하던 분위기가 점점 확대 적용되고 있다. 사수도 스승이요. 학원 선생님도 스승이다. 나에게 작은 가르침을 준 모든 분들이 스승이 돼버리니 무시하기도 만만치 않다. 나름 법의 테두리가 막아주고 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5월의 신부를 최고로 쳐주니 결혼식도 하필 5월로 몰린다. 누가 5월에 이렇게 많은 행사를 두었단 말인가? 어지간히 눈치도 없는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카네이션 값은 우리 어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작은 꽃 화분 하나에 2만 원이나 한다. 택배로 받는 꽃은 8만 원짜리도 있다고 하니 SNS 때문에라도 싼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가입한 SNS 여기저기 자식에게 받았다는 꽃 사진이 도매가 된다. 찾아보면 저렴이 꽃은 보이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눈 높이도 높아졌으니 아무거나 사드렸다가는 섭섭함만 배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나도 가장 못한 것에서 조금 윗 단계의 화분을 구매했다. 양가 부모님 꽃에다 선물까지 챙기고 식사까지 하면 어버이날이 누군가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겠구나.


우리 아이들이 이제 제법 컸다고 종이 카네이션도 만들지 않는다. 내가 꽃을 사보니 아이들 용돈으로 사기에는 제법 부담스러워 보인다. 꽃 선물은 마음에서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내년에는 꽃을 살 수 있도록 어린이날 용돈을 여유 있게 줘야 할까? 아이들이 눈치 볼까 봐 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며칠 전, 아빠는 꽃, 편지 이런 거 필요 없어. 다만 너희들 안마만 있으면 그걸로 땡큐야.라고 해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꽃은 구경도 못했다.


밤늦게 들어오던 큰아들 손에 카네이션 다발이 들려있었다. 용돈도 부족할 텐데 그래도 큰 아들 노릇 하는 걸 보니 믿음직스럽긴 하다. 사진을 찍었지만, SNS에 올리는 건 그만두었다. 방금까지 상업화가 어쩌고 했던 사람이 쪼르르 올린다는 것이 스스로 우습다. 그래도 허전한 책장 위에 빨간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있으니 뭔가 키운 보람이 들긴 하다. 부모 맘은 다 같겠지? 어머니도 어제 꽃바구니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셨던 그 마음이겠지.


어릴 적 형이나 누나가 꽃을 사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미처 부모님 꽃을 준비하지 못해 새벽에 일어나 문방구로 향했다. 나름 빨간 생화와 초록 잎사귀를 은박지에 싸서 500원 하던 시절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은 200원쯤 했다. 단 몇백 원에 생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


두 개를 가슴에 품고 몰래 들어와 부모님께 드리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나 된 아들이 종이접기로 꽃을 만들 수는 없었다. 꽃은 물병에 있다 며칠 후 버려졌다. 부모님은 꽃이 아까우니 다음부터는 사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남들 다 받는 꽃을 받지 못하면 얼마나 섭섭하실까? 그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색종이를 가지고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색종이를 병풍 접기 하여 둥그렇게 말아 풀을 붙이면 그럭저럭 카네이션 모양이 나왔다. 초록색 리본을 V자 모양으로 붙이고 간단한 감사 인사를 쓰면 초등학생 수준에 딱 맞는 꽃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 꽃을 참 좋아하셨다. 하루 종일 왼쪽 가슴에 붙이고 다니실 정도라서 그 꽃이 진짜 마음에 드시는 줄 알았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비슷한 꽃을 만들어 왔을 때 차마 달고 다니지 못했다. 시대가 바뀐 탓도 있겠지만 엉성한 색종이 꽃을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런 꽃을 달고 다니셨을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보다 내가 부족한 탓일까?


솔직히 꽃보다는 내가 필요한 걸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걸 어찌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꽃보다는 그 무언가가 좋을 것 같다. 이 또한 아버지보다 내가 못한 면일까? 혹시 아버지도 그랬을까? 물질주의 세상에 사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비싼 꽃보다는 그만큼의 다른 무언가가 뭘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내년에도 꽃이 될 거 같다.


5월의 꽃은 장미와 아카시아 아닌가? 아카시아는 대한민국 어디서라도 화려하게 피는 5월의 꽃이다. 만약 어버이날 꽃을 아카시아로 했다면 어땠을까? 아카시아 꽃말은 품위이다. 친구들과 산에 가서 얻은 아카시아꽃을 잘 포장해서 부모님께 드렸다면 색종이로 모조품을 만들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아파트에 살면서 아카시아 향을 잊었다. 5월이면 저녁 바람에 아카시아 향이 온 방안을 휘몰아치던 그때 카네이션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때의 정성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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