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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Nov 04. 2022

감사일기

22년 3월 15일-21일

한국에서부터 1년 넘게 써온 감사일기. 늦은 오후 이유없이 뒤적이다 코로나로 아팠던 며칠간의 기록에 잠시 시선이 멈춘다. 그 순간을 화면으로 살포시 옮긴다.


3월 15일 화요일

1.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그 끝에 받아들임을 택함 감사합니다.

2. 인생에서 또 한명의 동료를 만나 감사합니다.(당시 읽기 시작한 책의 저자를 향한 표현이다.)

3. 가족들의 애정과 돌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출국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터라, 다들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어머니는 전날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로 보건소까지 왔다갔다 먼거리 이동을 도와주셨다.)

4. 마음을 터 놓을수 있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5. 지금, 내 안에 아무런 불평이 없음에 감사합니다. 걱정도요.


3월 16일 수요일

1. 하루종일 방 안에서 축 쳐져있기보다 가볍게 운동을 하길 선택하고, 덕분에 에너지를 낸 것 감사합니다.

2. 나를 챙겨주는 가족들 감사합니다.(방에 달린 창문을 통해 간식부터 식사, 필요한 물건들을 계속 공급받았다.)

3. 삶이 지루하지 않은 것 감사합니다.

4. 몸이 그럭저럭, 컨디션이 많이 힘들지 않아 감사합니다.

5. 따뜻한 물로 한 샤워 감사합니다.


3월 17일 목요일

1. 깊은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남에 감사합니다.

2. 피자와 파인애플, 라면에 초콜릿까지. 창문으로 전달받는 일용할 양식들 감사합니다.

3.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게 두렵지 않음에 감사합니다.(어릴 적엔 아프거나 힘든게 부끄러움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사소한 것들도 가볍게 여길수 있음에 감회가 새로웠다.)

4. 삶에 대한 호기심. 감사합니다.(인생을 향한 의미와 그를 좇아가는 탐험을 의미한다.)

5. 오랜만에 하루종일 내리는 비.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이 건조하지 않습니다.


3월 18일 금요일

1. 아침에 눈 떠서 먹은 피자와 파인애플 감사합니다.(파인애플은 친한 친구가 퀵으로 보낸 위로 선물이었다.)

2.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수 있는 것 감사합니다.(아버지가 방 안에서 혼자 심심하지 말아라고 인형만들기 세트를 사다주셨다.)

3. 3일째 방에서 해주는 운동. 온 몸에 피가 도는 것 감사합니다.

4. 갑갑했던 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5. 1일 1썬칩. 감사합니다.(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자를 가족들이 매일 사다가 전해주었다. 이 것은 또다른 위로의 방식이리라.)

감사일기의 첫 기록, 첫 장

3월 19일 토요일

1. 하루종일 약기운에 멍했는데, 이런 하루도 감사합니다.

2. 과자 세봉지로 인한 더부룩함을 운동으로 시원하게 날린 것 감사합니다.

3. 방 안에만 있어도 갑갑하지 않은 것은 돌봐주는 손길과 관심들 덕이겠지요. 사랑받음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4. 문득 한동안 손톱을 뜯던 습관이 없어진 걸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5. 다시 몸무게가 돌아오고 붓기가 빠진 것. 감사합니다.(감염 초반 몸이 부어오르고 동시에 몸무게가 늘었다.)


3월 20일 일요일

1. 인형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 감사합니다.(중간중간에 실수를 해 몇번을 풀었다 꿰매기를 반복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해냈고, 그러다 보니 더 귀하고 예쁘게 여겨져 지금 여기에서도 서랍위에 고이 함께하고 있다.)

2. 내 삶의 모든 선택을 선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 갑자기 올라온 체가 속히 진정됨 감사합니다.

4. 이제 격리도 하루 남았습니다. 작은 방안에서 넓게 보낸 것 같아 감사합니다.

5. 우리는 인간으로 살길 택했고 이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디 어리석은 순간에도 빛을 비춰주시고 홀로 두지 말아주세요. 오늘도 믿음을 심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 21일 월요일

1. 어머니와 함께 보낸 밝은 하루 감사합니다.

2. 다시 보리를 쓰다듬을  있고 같이 산책할  있음에 감사합니다.(이는  삶에  부분을 차지한다.)

3. 내 일상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달아 감사합니다.

4.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잘 정리됨 감사합니다.(당시 고민하던 인간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5. 엄마가 슬픈 순간, 그 옆을 지킬 수 있어 감사합니다.(어머니께서 정말 사랑하시던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날이었고, 다행히 격리가 해제되어 어깨를 내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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