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관을 거닐며
소풍이라도 가면 딱 좋은 6월의 아침, 혼자 카메라 가방에 교통카드와 핸드폰만 챙겨서 나옵니다. ‘건축탐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나만의 외출은 이제는 정말 나만의 ‘특별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코를 스쳐가는 상쾌한 샴푸향기까지, 모든 것이 자유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을 정리하고 나서, 이렇게 혼자만의 여행길을 걷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아닐까요?
둘이서도 좋고, 여럿이 함께 가도 즐거운 것이 여행입니다. 그러나, 여행의 백미는 혼자 떠나는 여행입니다. 처음엔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괜스레 멋쩍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니, 혼자 못하던 것들도 해낼 수 있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혼자 멋진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마치, 20대 건축학도로 돌아간 기분도 들고, 건축전문기자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고요. 혼자 다니다 보니 나의 속도대로 둘러보게 됩니다. 모르면 다시 보고, 우연한 만남 속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이런 즐거움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습니다.
혼자의 시간은 많은 것들이 조용히 채워지는 시간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을 걸으며 시인과 나를 조용히 만나봅니다. 일제강점기 온 민족이 고통받던 시기 고뇌에 찬 마음을 시로 표현했던 윤동주 시인의 삶은 고뇌하는 현대인들에게 슬며시 다가오는 위로와 같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도 좋아했던 시이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짙은 농도로 이해되고 좋아하게 됩니다. 나이 든 해만큼 쌓인 희로애락이 깊은 맛을 내는 것일까요. 윤동주의 시가 하나하나 헤아려지는 지금 중년의 나이가 참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나이 들어감을 속상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 같습니다.
작은 평수의 건축물이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작지만 힘이 있는 건축물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윤동주의 시를 외우는 열혈 일본인들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것일까요.
1960년대 지어진 청운 아파트가 구조적인 문제로 2005년 완전철거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운 아파트 수도가압장으로 쓰이던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됩니다. 정체불명의 시멘트 옹벽, 기계실의 알 수 없는 두 개의 철문은 동네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애물단지가 된 거지요. 철거 직전에 놓인 흉물스러운 애물단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건축물에 이야기를 담아내어 새롭게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시인채, 열린 우물, 닫힌우물이라는 전시공간의 이름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충분히 이해하여 녹여내었기에 가능한 연결된 공간입니다. 공간은 사람을 닮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은 정말 딱 윤동주 시인 같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아내는 이 공간에서 나는 윤동주를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바라봅니다.
오늘따라 그의 고뇌가 더욱 가슴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역사의 아픔까지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이 들어가며 공간이 주는 철학과 역사를 품어봅니다.
내가 나를 만나고 싶을 때,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