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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이야기

by 이기병 Aug 07. 2021

 ‘군수산업의 대명사’ ‘조직의 미쓰비시’(Mitsubish, 三菱)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전범 기업인 이 회사의 창업자는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 Iwasaki Yataro)다. 


1870년 선박 3척을 가지고 해운업에 뛰어들어 기업 역사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1873년 미쓰비시 상사를 설립했다. 하급 무사 출신인 야타로는 일본 근대사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Sakamoto Ryoma)와 동향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1874년 일본의 타이완(Taiwan) 정벌 시 군수품과 병력의 해상운송을 책임지면서 오늘날 재벌이 되는 밑거름을 조성했다.


     

 같은 해인 1874년 오사카 시대를 마감하고 본사 소재지를 도쿄로 이전하면서 '우편기선미쓰비시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해운업을 핵심 역량사업으로 정하여 ‘해운왕’이라는 명성도 얻었으나 창업자 사망 이후 회사명을 미쓰비시로 변경했다. 



일본이 1875년 통상체결 요구 조건으로 개항을 강요한 강화도 침략 시 군사들의 수송도 맡았다. 

이후 조선은 국제법의 틀에서 맺은 최초 조약이면서도 강압적이고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1885년에는 라이벌 경쟁사였던 교도운수를 인수합병. 주력이었던 해운업을 닛폰유센(日本郵船)이라는 신설법인을 설립하여 양도했고 이 회사가 오늘날 일본의 해운회사인 NYK Lines이다.



 미쓰비시는 뒤 이어 조선업과 중공업 등에 매진하여 지금의 눈부신 성장을 도모했고 특히 일본 정부로부터 해운업과 밀접한 나가사키 조선소를 불하받은 후 초대형 군수 기업으로의 발전을 이룩했다. 



 NYK는 일본 3대 선사 중 하나로 2018년 경쟁 기업인 MOL, K-Line과 컨테이너 부분 통합 해운회사인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ONE, Ocean Network Express) 출범했다.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고 3사간 내부역량을 결집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여 머스크 라인, CMA-CGM 등 세계적 컨테이너 선사와 경쟁하겠다는 자발적인 고민의 결과물이 설립배경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익숙한 국내 해운업계에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획기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쓰비시는 우리나라 아픈 근 현대사에 쓰라린 의미를 남긴 일본 기업이다. 

첫째, 태평양전쟁 시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을 가장 많이 한 1위 기업이면서 최대 작업장을 보유했다.

 290여개의 노무 작업장과 학계에서는 신중하게 다루고 있으나 한국 및 일본 사회에서는 ‘미쓰비시 10만명’ 동원설을 정설처럼 여기고 있다. 



 미쓰비시의 작업장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거센 공분을 일으켰던 곳이 나가사키의 섬 하시마 hashimaIsland, 端島)이다.



 ‘지옥 섬’, ‘감옥 섬’,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리는 대규모 강제동원이 이뤄졌고 201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면서 역사 왜곡의 논란을 일으켰다. 



 둘째, 조선인을 고용하면서 약속된 임금을 주지 않아 일본 당국에 공탁형태로 미불임금을 가장 많이 남겨둔 기업 1위이다. 



나가사키 조선소에 미쓰비시 중공업을 포함 약 1만 1천명을 공탁하였고 스미토모 4,400여명, 미쓰이 2,700여명 등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이 받아야 할 돈이 공탁금으로 변신하여 소멸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관리하면서 개인한테 지급하지 않는 것이 현재 강제동원사의 해결되지 못한 현안 과제 중 하나이다.  



 미쓰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한국 대법원의 배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 중공업의 한국 자산들이 강제집행 절차들이 검토되는 등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미쓰비시 특유의 관료적인 병페, 군수사업을 기반으로 한 소비자 경시 풍조, 인권에 대한 인식 없는 이익추구, 상의하달식 보수적인 기업문화 등이 그 근본적 요소라 할 것이다. 



 미쓰비시등 전범기업들에게 배상 및 책임을 요구하는 동시에 일본 특유의 보수적인 조직문화 논리보다 한국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우리 스스로 부각시켜야 한다.


 글로벌화에 입각한 ‘경제의 논리’를 그들이 따르도록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스케일 업’(Scale-Up)이 

필요하다. 미쓰비시가 중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자발적 배상’을 한 배경은 중국 정부와 언론의 단합된 힘과 전범 기업으로서의 기업이미지 탈색, 중국 시장 확보가 필요한 ‘실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강(自强)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의 걸림돌은 과감히 파괴하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융·복합 경쟁력을 확보하여 한국 경제의 ‘근원적 변화’(Deep Change)의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짬뽕과 카스테라 빵이 유명한 나가사키의 맛집도 있지만 원폭피해를 강조하며 피해자를 주장하면서 많은 강제동원의 노동 인권이 탄압되었던 또 다른 나가사키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말을‘분노의 역사’로서만 인식하고 피해자 의식에 매몰돼서는 안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제대로 기록하고 교육하며 역사의 퇴행을 막는 올바른 인식도 갖는 한편 경제에 있어서는 한국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실행력을 보여‘성과와 속도’를 창출해야 한다. 



 그 선봉에 해운·조선업을 비롯한 물류업이 괄목할 만한 실적을 끌어내 움츠린 한국경제의 활력을 일으키고 만성적인 대일무역 적자 궤도를 벗어나 흑자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공헌한다면 그늘 속에 가려진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넋이 많은 위로를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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