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과 ChatGPT

by 킴프로


내가 동시 천재라 부르는 아홉 살 시오(가명)와 글쓰기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문득 6학년 유하(가명)와 있었던 일화를 꺼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팔을 활짝 벌리며 내 목덜미에 매달린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선생님 미안해요!!!”



저학년과의 수업에는 동시를 종종 활용한다. 올해 아홉 살이나 되었지만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는 이유로 여태 한글도 완전히 떼지 못한 아이에게 독서감상문 쓰기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외로 감동적인 동시를 척척 써내는 녀석에게 계절도 바뀌었으니 ‘봄’이라는 주제로 동시 짓기 숙제를 내주었다.


서오가 만들어 온 동시의 제목은 “봄의 감동”. 읽기도 전에 이미 감동이다. 게다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표현력, 감수성, 완성도. 혹시 책에서 봤거나 AI를 활용한 것인지 슬쩍 찔러봤다. 정색을 하고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라며 으스대기까지 하기에 자꾸 의심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전,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유하와 교내 논설문 쓰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상 타는 글쓰기 3편 | ‘쓰기의 부심’ 에필로그 1 참고). 수업 시간에 함께 작성한 개요를 중심으로 논설문을 써오라고 했다. 대충 훑어보니 길이도 적당하고 그럴듯해 보이기에 수상에 대한 욕심이 다시 조금씩 올라오고 있나 보다 하던 참이었다.


첨삭을 위해 글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걸리는 것 없이 술술 읽힌다. 꽤 논리 정연한 데다 문장 구성도 놀랄 만큼 깔끔하다. 그런데 어딘지 굉장히 익숙한 글투다. 두 번째 문단, 세 번째 문단, 글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이거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글투였다.


‘에이 설마…’


‘카피킬러’ 사이트에 접속했다. 문서의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이 서비스는 웹에 게시되어 있는 텍스트와의 일치뿐 아니라 AI 생성 여부까지 검출하는 프로그램이다. 도구 이름도 무려 ‘GPT 킬러’.


결과는 AI 작성률 100%.


사실 확인차 당사자에게 물었다. 이 녀석 건조함을 넘어 투덜대기까지 하며 “다시 쓸게요.”란다. 아이는 이렇게 프롬프트를 입력했던 것이다.


“아래의 개요로 논설문을 작성해 줘”








이 이야기를 들은 ‘동시 천재’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백을 해왔다. 일기 쓰기와 동시 짓기 숙제를 할 때 챗GPT를 썼다고 말이다. 실망감은 우선 제쳐 두고, 챗GPT를 활용하는 과정을 내게 직접 보여달라고 했다. AI를 어떤 식으로 쓴다는 건지, 프롬프트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전문을 온전히 표절한 것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방식은 이랬다. 챗GPT에게 주제를 던져주고 동시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명령한 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일단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다. 그리고 스스로 동의가 되지 않는 표현은 자신의 언어로 변환하고, 썩 내키지 않는 문단은 떠오르는 경험이나 감정을 담아 재구성하는 방식이었다.


‘GPT 킬러’는 어절과 문장의 수가 적은 동시의 AI 생성 여부는 정확하게 검사하지 못했다(AI가 생성한 동시와 AI의 생성물을 사람이 일부 수정한 동시의 AI작성률은 모두 0%였다.). 하지만 이 아이가 내게 보여 준 그간의 과제물들의 AI작성률이 유하의 것과는 다르게 100%가 아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수업을 해오면서 알게 된 이 아이의 특성에 있다.


시오는 동시를 짓든, 마인드맵을 그리든 간단한 게임을 하든 본인이 직접 그 절차와 방식을 정해야 한다. 한글도 아직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선생님이 더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아무리 제안해도 그것이 성에 차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스스로 생각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내가 AI로 동시와 함께 넣을 귀여운 삽화를 그려오면, 연필로 슥슥 그린 색도 칠하지 않은 그림을 버젓이 내놓고 본인이 더 잘 그렸다며 내 것은 거들떠도 안 본다. 내가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고 지적하면 다시 그려온단다. 자기 주도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자기가 주인이다.


챗GPT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하기 싫은 숙제를 빨리 끝내버리려고 챗GPT를 활용할지언정, 시키는 대로는 할 수 없다. ‘개구리가 폴짝 뛰는 모습’을 챗GPT가 “개구리가 하늘로 날아올라”라고 써 줘도 자신의 상상 속에서 개구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이렇게 바꿔버린다.


“개구리는 깜짝 놀라 ‘누가 와?’ 물어요.”



서오의 동시와 삽화(서오가 직접 그린 그림을 챗GPT를 활용하여 이미지 파일로 변환함)



AI가 동시를 짓는 과정은 어떨까.


제시된 주제와 문맥을 바탕으로 다음에 올 적절한 어휘와 그럴듯한 표현을 확률 기반으로 생성해 나가는 과정을 단순화해 보자.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 중에서 ‘개구리’ 뒤에 붙을 행동이 만들어질 때, [봄비가 내릴 때 개구리의 모습 → “난다”가 높은 확률로 생성됨 → “개구리가 난다”의 문장으로 연결]과 같은 흐름을 거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개구리가 하늘로 날아올라”라는 응답을 내려준다. 그러나 그것을 최종적으로 채택할지 여부는 AI의 몫이 아니다. 사용자가 응답에 만족하지 않으면 높은 확률의 다른 대안을 재생성해 줄 뿐이다.


그러나 시오는 AI가 이렇게 생성한, 즉 상대적으로 높은 확률의 응답인 “난다”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순서도를 그려 다시 따라간다.


[봄비가 내릴 때 개구리의 모습 → ‘뛴다’ or ‘난다’ → “난다”? → ‘개구리가 나는 상황’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 “뛴다” → 왜 뛰지? → “깜짝 놀랐다” → 왜 놀랐지? → “누가 왔다” → 누가 왔지? → 봄비]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는 논술 단골 주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단어는 ‘대체’이다. 특정 대상이 다른 대상을 ‘대체’한다는 것은 곧 경쟁 우위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대체되는 대상보다 월등하게 우수하거나 상대에게는 없는 고유의 능력으로 그가 속한 사회나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끄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대(AI)에게는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 중 하나로 내가 내세운 의견은 ‘인간은 행위의 목적을 찾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자기 성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 두 명의 학생이 있다.


한 명은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논설문을 쓰기 위해 챗GPT에게 명령한다. 응답받은 것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제출한다. 근거로 든 사례에 대하여 학생에게 자세히 물으니 그런 문장을 썼는지도 모르고 있다. 한 번 훑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GPT 킬러를 쓸 일은 절대 없다며 숙제를 챗GPT로 써도 된다고 툴툴댄다.


다른 한 아이는 동시를 써야 하는데 도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챗GPT에게 써 보라고 시켜봤더니 영 시원치 않다. 챗GPT가 만든 동시를 일단 한 번 쭉 곱씹어 보니 문득 주말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오빠가 수영장에서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주어 감동받았던 순간’을 되새겨보니 꽃이 피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하다. 마지막 연을 추가하고 다시 편집한다. 끝으로 제목을 새로 붙인다.


“봄의 감동”


‘AI’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두 학생 모두에게 내가 내준 숙제를 할 때는 AI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때로는 수업 시간에 함께 사용한다.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요구하고, 내려준 응답이 이해될 때까지 다시 묻는다. 더 좋은 응답을 위해 정확한 프롬프트 작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잘못된 응답에 대하여 추궁한다.


아무리 묻고 따져도 챗GPT는 짜증을 내지 않아서 좋다. AI를 쓰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만약 학생이 내게 묻는다면, 스스로 정한 선에서 멈춰도 괜찮다. 본인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나와 함께 AI를 사용할 줄 아는 고유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 테다.






에필로그


위에서 한 차례 밝혔듯, ‘GPT 킬러’는 챗GPT가 생성한 동시와 챗GPT의 생성물을 서오가 일부 수정하여 만든 동시의 AI 작성률을 모두 0%라고 응답했다(이것이 이 테스트를 해보기 전까지 본인이 직접 창작한 동시라는 서오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은 이유이다.).


문득 챗GPT는 스스로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해졌다. 서오가 챗GPT를 활용하여 만든 동시에서 어느 부분이 사람이 만든 부분이고, 어느 부분이 AI가 생성한 부분인지 분석해 보라고 명령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


서오가 직접 창작한 부분은 AI가 생성했을 확률 75%라고 판단했고, 챗GPT 본인이 생성한 부분을 서오가 창작했을 확률 70%로 분석해 주었다.


.....시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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