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타는 글쓰기 3편
1편과 2편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이 글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교내 글쓰기 대회를 준비했던 일화를 담았습니다. 단 3회의 수업으로 금상을 노렸던 이야기입니다.
상 타는 글쓰기 2편 | “어그로는 이렇게 끄세요.”
(2편에 이어서…)
금상. 1등이었다.
1평짜리 작은 사무실에서 유하(가명)의 어머니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를 받고 어찌나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공유오피스라 소리는 지르지 못했고, 양팔을 활짝 펴고 발을 몇 차례 동동 굴렀다. 얼른 루프탑으로 올라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박수를 치며 크게 한 번 웃었다.
내가 세운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는 것,
시대를 관통하는 글쓰기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그리고 국어 국문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은 것 같은 마음에 정말 기뻤다.
한편 글쓰기의 기술과는 별개로, 유하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유하의 “영어 글쓰기” 경험이다.
유하는 간혹 멋진 문장이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의견을 내비치곤 했다. 바로 사교육으로 점철된 유하의 영어 실력이 한몫한 것이다. 토종 한국인 주제에 “저는 한국말 잘 못해서”를 입에 달고 사는 유하는 꽤 높은 수준의 어휘를 영단어로 습득하고 있었고, 영어 글쓰기뿐만 아니라 영어 스피치 대회도 수차례 준비해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하에게 잘 와닿지 않는 한글 표현은 내가 영어로 설명해 주고, 때로 내 설명을 듣고 유하가 영단어로 유추하곤 했다. 유하는 내가 영어 수업도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며 스치듯 말한 것 보면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던 것 같다.
글은 영어로 쓰든 한글로 쓰든 기회가 될 때마다 쓰기만 하면 된다. 영문 글쓰기에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은 한글 쓰기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하가 내게 처음으로 제출한 독후감으로부터 확인한 그녀의 글쓰기 실력은 처참했다 하더라도, 영어 글쓰기 경험 덕에 아주 기본적인 것은 어느 정도 다져져 있었다고 볼 수 있었고, 이것이 유하가 짧은 기간 내 나의 커리큘럼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글쓰기의 이론 또는 개념 등을 설명할 때 유하가 종종 했던 말이 있다.
“영어 쌤이랑 똑같이 말하네.”
영어 선생님이나 글쓰기 선생님이나 글쓰기에 대해 하는 말이 똑같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책은 안 읽어도 영어 수업 시간에 배워둔 것은 꽤 있었나 보다.
하지만 “영어 쌤은 그렇게 하지 말라던데...?”라고 하는 소리도 가끔 했다. 그럴 때는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의견을 전달하였고, 선택은 본인이 직접 하도록 하게 했다. 물론 내가 양보하지 않았던 사항도 있었는데 1등을 한 것을 보면 내 이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가 보다.
한 가지 더, 미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이 우리의 협업을 아주 원활하게 만들어 주었다. 6학년이라도 어린이는 어린이인지 맥북으로 노션을 사용하는 내가 자기 눈에는 그럴듯해 보였나 보다. Docs로 숙제를 제출했던 유하가 누가 알파세대 아니랄까 봐, 노션을 사용하는 것을 보자마자 본인의 랩탑에 앱을 설치하여 즉시 본인의 G메일 계정과 연동했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때 쓰던 협업도구로 6학년 아이와 소통하게 될 줄이야.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노션에 글을 쓴 후 내게 페이지를 공유하였고, 내가 의견을 달면 유하가 댓글기능을 활용해 바로 질문을 남겼다. 그 덕에 나는 장소나 시간의 제약 없이 빠르게 첨삭을 하고, 수정 사항들을 전달할 수 있었다. 새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할 줄 아는 유하의 성향이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만든 것이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학습에 적절한 기술을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완성해 나가는데 보여준 유하의 의지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금상은 없었을 것이다. 나의 세 가지 무기(2편 "어그로는 이렇게 끄세요." 참고)만으로는 입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자. 그럼 내가 글의 초반(1편 “아~ 어그로 끌라고요?” 참고)에 밝혔던 “타이틀”을 마침내 하나 달았으니 사정 좀 나아졌냐고?
아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깟 상 하나로 학생수가 급증할리 없었다.
만약 앞으로 오롯이 상 타기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이 또 온다면, 나는 거절할 것 같다. 이번의 경우는 장기간 나의 수업을 수강하다가 어느 정도 실력을 다진 후에 대회에 참가하여 때마침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아니다. 온전히 학생의 실력만으로 상을 탄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얼마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게다가 단기간에 성과를 얻기 위해 전략을 아무리 치밀하게 짰다 하더라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나로 하여금 지나치게 무리해서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었다. 그 시간을 최저시급으로 환산해 보니 내가 받은 교습비는 그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이런 현실적인 사정도 이런 식의 수업을 거절할 이유라면 이유다.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게다가 만약 어떤 이유로든 상을 타지 못한다면? 이 일은 금상을 타도 본전인 일과 다름없다. 수업을 듣다 어느 날 금상을 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머님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들은 이후 유하로부터 고마웠다, 감사했다, 고생하셨다, 등의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 물론 인사치레나 듣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서운한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게는 “금상”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부족했었나 보다.
아이들에게 상 타는 글쓰기보다는 진짜 글쓰기를 차근차근 가르치고 싶다. 이것이 대회용 수업 요청을 거절하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자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다. 물론 “진짜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도 “상 타는 글쓰기”의 기술을 매시간 연습한다. 제목 짓기, 목차 쓰기, 숨겨진 글감 발견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시간을 오래 두고, 그 기술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을 밟으며 말이다. 잘 배워서 상 좀 타오면 좋겠다.
그러나 쓰기에 앞서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연 독서이다. 많이 읽으면 글쓰기의 기술 따위는 필요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읽지 않는데 잘 쓰기를 바라는 것은 직무유기다. 읽지 않는 이에게 잘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내 고집이라면 고집이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물론 현생을 사는 성인들의 업무 관련 보고서나 이메일 쓰기는 조금 다른 경우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상을 만들어 버려서 오히려 내 자부심에 흠집이 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이 부분은 유하 본인의 부족한 독서량을 수업에서 보여준 유하의 열정과 태도로 갈음했다고 치기로 하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일 수 있겠다.
에필로그 1
몇 주 뒤, 그 집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 학교는 대체 대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이번엔 논설문 쓰기란다. 그리고 이번엔 한 회를 더 추가해서 네 번을 와달란다. 이번에는 지난번 대회와는 다르게 글쓰기 주제의 후보 목록이 사전 공지되지 않는 대회였다(1편 “아~ 어그로 끌라고요?” 참고). 나는 교보문고로 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국어 및 사회 그리고 글쓰기 관련 학습지를 전부 뒤져 예상 주제 목록을 리스트업 했다.
새로운 전략을 들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 집으로 향했다. 귀띔하자면 시즌 2의 전략은 “개요 쓰기”이다. 그런데 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다. “엄마가 마음대로 신청한 거예요.”라는 소리를 하며 저학년들이나 하는 억지를 부린다. 지난 대회 준비 때 내게 보여 준 그 실낱같은 유하의 의지가 이번에는 도통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침 긴 연휴 때라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데도 때에 맞춰 숙제를 제출하지 않았고, 심지어 ChatGPT로 숙제한 것을 내가 GPT킬러를 돌려 잡아냈다. 그러다 이런 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차피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데 왜 다 써봐야 돼요? 그냥 팁만 몇 가지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유하야 너는 책을 전혀 안 읽잖아? 논설문은 논리력과 독창적인 의견제시가 핵심인데, 다양한 주제로 연습이라도 최대한 많이 해 봐야 하지 않겠니?”
라고 대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자. 이번에도 내 전략이 맞아떨어졌을까?
결과는 상상에 맡겨 보겠다.
에필로그 2
유하와의 “논설문 쓰기 대회 준비용 수업”을 끝내자마자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가 수업 의뢰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있었다(글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안녕하세요. 초6남자어린이 담주에 교내 논설문 쓰기 대회가 있어서 문의드려요~ 이번 주 금, 일요일 수업 가능하신가요?”
이 어머니, 유하 어머니보다 더 한다. 두 번이라니.
그래서 수업을 했냐고? 아니. 정중히 거절했다.
난 승산 없는 게임은 시작하고 싶지 않다.
내게는 나도 몰랐던 승부사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