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타는 글쓰기 1편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는 열세 살 소녀 옆에 앉아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의 맥북을 펼쳤다. 애플 로고만으로도 13살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에 얼마간 성공했다. 빠른 타자 속도와 현란한 단축키 사용까지 곁들이니 어느덧 이 소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요즈음의 초등학교 6학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도통 알 길이 없어 적잖이 걱정을 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고 짧은 아이스브레이킹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로에 대한 탐색의 시간 따위는 사치. 키노트를 실행하여 준비해 온 전략을 프레젠테이션 하기 시작했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 꼬맹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공부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야 제대로 된 수업다운 수업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나 자신에게 한껏 취했다. 의외로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던 유하(가명)가 마침내 꺼낸 말.
“아~ 어그로 끌라고요?”
6학년은 처음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귀엽고 꼬질꼬질한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 드디어 만난 6학년 유하와는 요일과 시간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수업과는 다른 형태의 것을 하기로 돼 있었다. 단 3회로 종료되는 이 수업.
목표는 “교내 글쓰기 대회 금상”
초등학교에서는 글쓰기(독서감상문) 대회, 논설문 쓰기 대회가 때마다 열린다. 학교마다 대회를 주최하는 시기가 비슷한 모양인지 수업 의뢰서의 요청사항에 “몇 월 며칠에 무슨 대회가 있어요.”라고 적힌 것을 몇 번 보았다. 어느 수준의 성취를 기대하고 수업을 요청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대회 참가를 목적으로 한 단기 수업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소리다.
유하의 어머니는 회당 2시간씩 총 6시간의 수업으로 대회에서 상을 타게 만들어 달란다. 그런데 학생이 평소에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단다. 명색이 내가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쳐 보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어쩐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의 의의에 준하지 않는 요구로 느껴진다. 주제에 곤조를 부린다고 할지언정 애초에 책을 읽지 않는데 무슨 수로 글을 잘 쓰겠냐는 것이다.
한편, 나는 늘 학생수를 모집하는 데 간판에 내다 걸 타이틀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국어국문학 전공이나 학원 강사 경력의 부재로 인한 낮은 신뢰도를 커버할 만한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것이 되었든 내 학생의 것이 되었든 내세울 것은 수상 이력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 장난칠 궁리만 하는 저학년들만 가르치다 보니 말귀 잘 알아듣는 고학년 학생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생겨나던 참이었다.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이참에 고학년을 지도해 볼 수 있기도 하고, 혹시 상을 타지 못하더라도 고학년의 머릿속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결심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래, 이 한 몸 갈아 넣어 너에게 상을 안겨 주겠다.
사전 공지된 도서는 총 네 가지.
중학교 필독서로 꼽히는 현대문학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그림책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정치와 민주주의를 다루는 학습 도서
대회 당일, 출제위원이 이 중 한 가지를 선정하여 공개하면 학생들이 해당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그냥 글을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회용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
유하의 학교는 서울 소재 사립초로 명문 초등학교라고 잘 알려진 곳이다. 학년당 평균 110명, 글쓰기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이 4-6학년이라고 가정하면(다른 사립 초등학교의 글쓰기 대회를 조사하여 정보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은 약 330편 내외의 글을 읽고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심사위원이 총 몇 명으로 구성이 되는지까지는 미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한 명당 아무리 다양해 봐야 세 종류의 주제로 써진 글 수십 편이 배정될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열한 살부터 열세 살 사이의 어린이들이 쓴 글이 말이다. 선생님들께서 어떤 고초를 겪으실지 상상만으로도 절로 고개가 홰홰 저어진다.
유하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후보 도서 네 권을 전부 한 번씩 읽은 후, 그중 한 권에 대하여 독후감을 쓰라고 일러두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단 네 권을 전부 읽지도 않았으며, 지정해 준 도서가 아닌 다른 것을 읽고는 글을 써왔다.
첫 시간부터 톱니바퀴의 이빨이 맞물리지 않았다. 게다가 독후감이라고 써온 글의 절반을 책의 줄거리가 차지하고 있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의견을 내세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의견이라는 것이 글의 중간즈음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내 다른 주장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초안에서 건질 수 있었던 문장은 단 한 문장, “저는 이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이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앞서 밝혔듯 이 초등학교는 명문 초등학교이다. 이것은 분명 학생들 수준이 꽤 높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이미 논리력을 충분히 갖추고 글을 잘 쓰는 학생이 여럿 있을 것이다. 또한 논리력을 넘어설만한 재미 즉, 정제된 글이 아니더라도 독창적인 주제나 자신만의 경험으로 심사위원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런 능력 있는 학생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패배한다. 이들과 경쟁하여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눈을 유하의 글에 잡아두어야 한다. 그들이 이 글을 중간에 덮지 않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글 안에 머물도록 만들어야 했다.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작은 희망의 불씨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정말 단 3회의 수업으로 입상이 아닌 무려 금상을 바라고 계신 유하 어머니의 상에 대한 강한 열망이었다. 덕분에 유하는 반드시 나의 커리큘럼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숙제를 빼먹지 않고 제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한 가지 더, 유하가 3-4학년 즈음 당시의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을 했었다는 사실(어머니께서는 유하의 입상 경험을 기억조차 하고 계시지 않았는데, 금상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게 직접 말씀하셨다.)인데, 이로써 동급생들의 글쓰기 수준을 조금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자. 끝까지 읽게 만들자. 이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아무리 짧아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이 대회를 준비한다면 아마 “개요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글쓰기 이론 따위를 배울 시간이 없다. 유하의 말이 맞다. 우리는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 그리고 글의 중간중간 매력적인 표현들과 생각지도 못한 유하만의 직간접적 경험으로 심사위원이 “응? 요것 봐라? 무슨 말을 하려고 이래?” 하도록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자.
이제 독자에게 공개할 차례이다.
나의 진짜 무기는 바로 목차, 글을 관통하는 나만의 장치, 그리고 제목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