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타는 글쓰기 2편
1편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이 글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과 교내 글쓰기 대회를 준비했던 일화를 담았습니다. 단 3회의 수업으로 금상 수상을 노렸던 이야기입니다.
(1편에 이어서…)
[심사위원이 내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들기]
우리의 전략을 실행시켜 줄 내 첫 번째 무기, 바로 [목차]이다.
내 수업을 수강하는 손에 꼽히는 몇몇 아이들, 이미 헤어졌거나 앞으로 헤어질 그들이 나로 인해 평생 기억하게 될 두 글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차이다.
그렇다. 나는 목차무새다.
목차는 무언가를 배우는 이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개념이다. 나는 읽기, 말하기, 글쓰기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과목의 학습일지라도 그 모두를 관통할 수 있는 공부법이 있다면 그것은 목차 쓰기라고 주장하겠다. 내 학생이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야기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 “차례”를 짚는다. 그리고 수업을 당분간 함께 하게 된다면 이 아이가 나로부터 언젠가는 반드시 배우게 될 목차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다.
이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붙잡아 둘 첫 번째 장치이자 3일짜리 커리큘럼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아이템만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목차이다. 유하(가명)가 목차를 강조하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던진 첫 질문은 “목차를 어디에다 써요?”였다. 당일에 나눠주는 서술형 답안지에서 제목 아래, 본문을 쓰기 앞서 좌측 상단에 적으라고까지 짚어줬다. 장담컨대 330명(내가 추정한 대회 참가 학생 수) 중에 목차를 쓴 어린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것은 승산 있는 게임이었다.
목차는 다시 말해 작은 제목의 나열이다. 답안지 상단에서 후킹 역할을 맡아 줄 제목을 막 지나온 심사위원을 조금 더 붙잡아 둘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았다는 소리다. 또한 글쓴이가 앞으로 얼마나 재미있는 글을 쓸지 간단히 요약하여 소개하는 기능을 하며, 글의 논리구조에 대한 간이 설명서이다.
좀 더 과장해서 심사위원이 굳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고도 합격의 목걸이를 걸어 줄 만한 강력한 아이템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목차이다. 본문에서 난데없이 엉뚱한 곳으로 튀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목차에 맞는 글을 제대로 써 나가기만 한다면, 목걸이 색깔은 셋 중 하나로 정해진다.
이제 본 게임이다. 약 2,000자 분량의 글에서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려면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첫째, 애초에 머릿속에 든 것이 많으면 된다. 책으로 읽은 간접 경험이든 직접 체험한 것이든 뭐가 됐든 글로 쓸 수 있는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독서량도 턱없이 부족하고, 학교-학원-집만 왔다 갔다 하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면? 당연히 책을 이 잡듯이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장착하고 한 문장 한 문장 따지고 들어야 한다.
마치 매직아이 보듯 책에 적힌 글자 이면에 혹시 무엇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글자로 적혀 있지 않아도 뭐가 더 보이는 것은 없는지 뚫어져라 쳐다보아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종이를 뚫고 내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 이탈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한국에서의 정착 과정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이들이 하나원에서 받는 교육을 네 종류로 구분하여 간략히 다루는데, 이 한 페이지는 본문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배경지식, 용어 등의 설명을 하고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파트이다. 하지만 교육별로 각각 53시간, 44시간, 193시간, 130시간이라고 적힌 것을 캐치한다. 그리고 이 숫자를 유심히 지켜본다. 시간을 더해도 보고, 더해서 나온 숫자를 일, 월, 년으로 환산을 해 보면서 그 숫자가 가진 의미를 깨닫거나 혹은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보는 일을 해야 한다.
420이라는 숫자를 손에 쥐었다.
이제 글 쓸 준비는 거의 다 끝난 셈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 몇 가지를 발견했다면 이제 남은 작업은 뼈대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420이라는 숫자를 2,000자로 불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 과거에 겪은 독특한 경험이나 독서 활동 등 이야깃거리를 이곳저곳에서 그러모으면 정말 좋겠지만, 단시간에 글에 꼭 맞는 경험을 꺼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유하가 썼던 일기나 성장 과정 등을 들춰 볼 시간이 우리에게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없는 경험이라도 지어 내야 한다. 관심 없던 것도 관심 있는 척을 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내가 기능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 경험을 기꺼이 유하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마침 그즈음 책을 구매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헌법 필사 노트’가 있었다. 당시는 헌법 재판소에서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라 헌법을 들이밀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게다가 열세 살 유하 역시 첫 만남에 “빨간색 vs 파란색?”을 외치며(실제로는 각 색상을 대표하는 정치인 두 명의 실명을 대며) 선택을 강요했던 아이 중 하나였으니, 그 어느 때보다도 [헌법]이라는 두 글자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목을 끌고 있을 때였다.
내가 고른 [헌법] 조항은 두 가지. 제1조 1항과 제10조이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문장을 덧붙인다.
“이 문장은 얼마 전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받은 사은품 ‘대한민국 헌법 필사 노트’에서 처음 본 것이다.”
다음으로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특히 제10조의 경우에는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로 분할하여 각각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의 머리에 배치하면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없다.
헌법만 있을까? 여기 [세계 인권 선언]도 있다. 때마침 열 살 아이들과 함께 읽은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는 세계 인권 선언을 총 30가지 그림으로 편집한 어린이용 그림책이다. 열 살 진오(가명)의 경험은 이제 유하의 것이 된다. 글의 흐름에 맞게 서론이나 결론을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몇 해전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라는 그림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한 장 한 장, 각각 30가지의 그림과 30개의 문장이 쌍을 이뤄 책으로 묶였다. 1-2학년들이나 읽을 법한 그림책임에도 당시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어려운 단어 하나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출제도서를 읽다 어느 순간 “아?!” 하고 불현듯 머리에 스쳤던 그때 그 단어. 바로 ‘인권’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조항 하나를 소개한다.
“세계 인권 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정말 유하의 것을 곳곳에 배치한다. 유하가 응원하는 아이돌의 응원봉 즉, 10-20대 젊은 여성의 손에 쥐어진 오늘날 광장의 응원봉과 과거의 광장에서 휘날리던 태극기를 나란한 위계로써 잠깐 다루어 본다. 또는 북한이탈주민의 삶과 대비되는 즉, 강남 한복판에 살며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또 어떠한 제약이나 차별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추구권”이 보장된 듯한 유하의 일상을 담아 현실감을 높이고, 동시에 “행복추구권”에 무게를 실어보는 것이다.
심사위원을 사로잡을 나만의 장치에 살을 붙여 2,000자를 만들고, 각 문단별로 제목을 달아 목차를 완성했다.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의 마지막이자 심사위원의 눈에 처음 새겨질 첫인상. 제목이다.
“몬스터 차일드를 읽고” 따위의 제목은 절대 금물이다. 책의 제목이나 누구라도 파악할 수 있는 책의 핵심 주제를 그대로 노출하는 직접적인 제목을 쓸 작정이라면 차라리 제목을 빈칸으로 두는 것이 낫다. 아무리 우리가 목차를 쓰고 헌법으로 심사위원의 구미를 당겨보려고 해도 제목에서 매력발산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거기까지 데려갈 수가 없다. 높이 쌓인 서술형 답안지들 사이에 유하의 글이 어느 사이에 껴있을지 모른다. 하필이면 금요일 오후 유하의 답안지가 심사위원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제목으로 심사위원의 지친 눈과 머리를 잠시나마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장소나 특정한 사물을 활용해도 좋고, 글의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목도 괜찮다.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 가수의 K-pop 한 소절을 인용하거나, 앞서 골라둔 헌법의 한 조항을 글자 그대로 옮겨 적어도 좋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등장인물에게 앞으로 닥칠 미래의 일들을 내 멋대로 상상하여 제목에 담아도 심사위원의 관심을 끌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수난이대의 부자는 과연 그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갔을까?’ 하는 상상을 담아도 좋다는 뜻이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내가 앞으로 전개할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제목이라면 오히려 큰 감점의 요소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대회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대회로써 눈길만 끌고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제목을 내놓는 일이 발생하면 가차 없이 삭제해 줄 선생님 곧 내가 있기 때문에 리스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 아니겠는가?
덧붙여 세계 인권 선언 제19조를 인용한, 북한 이탈 주민 어린이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읽고 쓴 글의 제목은 “대한민국을 사는 법”이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