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아이들

아이들은 숨이 가쁘다

by 킴프로


1

“차라리 선생님을 바꿔보거나, 수업을 잠깐 쉬는 것이 어떨까요?”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를 공부방 밖으로 내보내고 그의 어머니를 호출했다. 90분 동안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버릇없는 태도, 말대답과 말장난을 일삼는 아이의 상태를 알리며,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지난 수업 시간. 한바탕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이후 돌아온 수업이라 아이가 수업에 조금 집중을 하겠거니 하며 약간의 기대를 했다. 하지만 어쩐지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아무리 주의를 주고 다그쳐봐도 좀처럼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벌써 2주째다. 그러자 갑자기 연필깎이를 억지로 고장 내더니 기어코 연필 부스러기 받침을 뒤집어엎는다. 연필 부스러기와 흑연으로 완전히 더럽혀진 책상을 보고 있으려니 어처구니가 없다. 화도 나지 않는다. 대체 요즘 왜 이러는 건지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 좀 해 보자고 했다.


올해로 4학년이 된 진오(가명).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단다. 힘들고 지치고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버릇없는 행동과 말장난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힘들다, 피곤하다, 집중이 안된다”라고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을 하라고 몇 차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진오에게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못 참겠어요. 안 하는 게 안 돼요.”


새 학년, 새 학교, 새 학원까지. 이 아이는 지금 숨이 차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예민하고 느린 아이인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나름대로 갖은 애를 쓰다 결국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 지금 학원 숙제할 수 있는 시간인데…”



2

8 학군 초등학교를 다니는 3학년 진오(2, 가명)의 어머니가 내게 하소연을 하신다. 아이가 학원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아이를 포기했단다. 그러고는 내게 수학 숙제를 도와주는 수업을 맡기고 싶으니 일주일에 두 번을 더 와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일주일에 네 번씩 만나던 어느 날, 아이가 불쑥 말을 뱉는다. 진오(2)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이 저 잘라줬으면 좋겠어요.”


서운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편의점도 다녀온 사이고(”선생님 편의점 갈래요.” 참고), 어느 날은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기다리며 내가 도착할 때까지 통화를 할 정도로 마음을 나눈 사이 아니었나. 하지만 진오(2)의 스케줄은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나 역시 진오(2)의 눈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것은 진오(2)의 일주일 스케줄(‘부자가 되려면 고깃집을 하세요.’에서 한 차례 밝힌 적이 있다.)이다.

읽기와 쓰기 선생님, 각각 주 2회

영어 학원은 두 곳으로 각각 주 2회

수학은 의대생에게 과외로 주 2회, 연산 학원과 도형 학원 각각 한 번씩

수영과 스쿼시 각각 주 2회, 골프 주 1회, 축구 클럽은 두 곳을 각각 주 2회

야구 클럽과 줄넘기 학원도 각각 주 1회

피아노 학원은 주 2회로 주말에는 피아노 콩쿠르와 축구 대회에 참가한다.

여기에 학원 숙제를 도와주러 내가 두 번을 더 오게 된 것이다.



3

(아래 ‘부모님 감청’ 에피소드는 ‘부자가 되려면 고깃집을 하세요.’에서 짧게 언급했다.)


국제 초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지유(가명)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지유가 말을 꺼내려다 갑자기 멈추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


“엄마가 이 수업 돈 내고하는 거니까 선생님한테 딴 얘기 하지 말랬어요.”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했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지금 문밖에서 엄마랑 아빠가 다 듣고 있어요.”


지유의 소원은 오늘 수업을 다 마치고 선생님의 랩탑으로 타이핑 연습을 한 번 해 보는 것, 그리고 나와 함께 '다른 그림 찾기' 딱 한쪽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즐겁지 않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 배울 수 없다. 수렵채집인이던 시절 사자로부터 도망(투쟁-도피모드 활성화) 가라고 우리의 뇌는 경보기를 울렸고, 그 경보가 곧 불안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통해 여전히 원시뇌가 우리에게 생존의 위협을 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경보를 울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노릇이다(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전두피질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주요 교과 과목의 공부이든 글쓰기이든 ‘편안한 마음’ 없이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외재적 동기 즉, 부모님의 요구를 일시적으로 따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쌓인 불안한 감정은 결국 터지고야 만다.


쏟아진 연필 부스러기는 곧 아이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타깝다는 이유로 나서서 내 수업을 도려내고 아이들에게 여유를 선사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숨차게 하는 데에 한몫을 하고 있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숨 쉴 틈과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어 선생님에서 학원 숙제 도우미까지 추가 고용된 나는 아이에게 문제 풀기 시합을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의 연산 문제를 푸는 방식이 우리 때와 제법 다르길래 누구의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한지 확인도 해볼 겸 내기를 걸었다. 승부욕으로 가득 찬 열 살 남자아이는 내 제안을 덥석 물었다. ‘두뇌로’를 푸는 알파세대와 90년대 ‘구몬’으로 다져진 밀레니얼세대의 대결.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며 승점을 가져갔고, 웃고 떠들며 반칙이네 아니네 다투기도 하면서 90분 내내 문제집을 풀었다. 밤 열 시 반이 넘었는데 고맙게도 아이는 지겹다는 소리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내게 귓속말했던 지유에게는 계약된 수업 시간 외 15분을 마련했다. 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돈 내고하는 수업'에 해당하는 시간은 60분이니, 이 시간을 다 채운 이후 무보수로 제공하는 15분에 대해서는 부모님이 아이에게 별말 안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시간만큼은 지유에게 내 랩탑을 건넸다. 내가 건넨 독후 질문에 본인의 생각을 타자로 쳐보게 했고, 때로 다른 그림 찾기 한 장을 같이 했다.


아이는 독수리 타법으로 키캡 하나하나를 쳐가며 문장 한 줄을 겨우 완성하면서도 까르르하며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다. 아이는 스스로 선택한 작은 것 하나를 시간을 갖고 천천히 배워가며 그 성취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방방 뛰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즐거웠어요.”라는 평과 함께 가장 아끼는 스티커도 하나 붙여준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이렇게 아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아이들의 작은 성장과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엄마”를 꼽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모바일 게임에 현질 할 수 있는 소소한 금액 얼마를 걸고 수학 문제 빨리 풀기 대결을 한다면. 또 오늘 할 공부를 다 마치고 다른 그림 찾기 대결을 함께 한다면. 죽어도 쓰기 싫다는 독후감 대신 로블록스 술래잡기 스토리를 짠다면. 아이들에게 채워질 즐거운 기억과 행복 그리고 비로소 쉴 수 있는 한 호흡. 이 아이들과 함께 ‘긍정적 공부 정서’를 만드는 사람이 내가 아닌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의 학습 효과는 과연 어떨까. 어린이들의 초기 학습 정서는 부모님과의 친밀한 관계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믿기에 참 아쉬울 때가 많다.


학습은 부모의 기다림과 아이가 가지는 여유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선생님에게 잘리기 전까지는 본인의 의지로 쉴 수 없고, 반가운 선생님에게 소개하고 싶은 소소한 일상까지 내 부모에게 감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에게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연필깎이를 엎어 버린 아이는 내가 떠나고 밤 11시가 넘도록 수학 숙제를 이어나갔다. 그다음 날 수학 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워왔을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자 중 한 사람인 바실리 수호믈린스키(1918-1970)의 교육 이론을 담은 책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는 이렇게 말한다.


"한가한 시간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한 과목을 좋아할 수 있고, 지적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학습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그 자체로 아이가 가장 높은 수준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보증수표”






에필로그 1


수업이 끝나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지유와 숨죽이고 틀린 그림 찾기를 했던 그 서비스 시간도, 결국에는 온전히 수업으로 채우길 바란다는 부모님의 의향을 지유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지유의 책상에 부모님께서 지유에게 써주신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못 보던 것이었다. 지유는 손에 쥐고 있던 연필로 편지가 있는 곳을 툭툭 쳤다. 소리를 내어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하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응? 그게 뭐야? 부모님이 편지 써 주셨어? 너무 좋겠다!” 하며 시선을 편지로 옮겨 소리 내어 읽어보려던 차. 아이는 급히 두 번째 손가락을 자신의 꾹 다문 입술로 가져다 대고 고개를 홰홰 저었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였다.


“속으로만 읽어요.”


편지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너를 믿는다, 많이 힘들겠지만 너는 할 수 있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결국 성공한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지유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말하고 서둘러 준비해 온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숨긴 마음은 지유에게 뱉은 말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사실 나는 조금 무서웠다. A4용지에 인쇄된 이 편지가 이제 겨우 만 8세가 된 여자 아이가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메시지로써 적절한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인 것인지, 어떤 마음이 담긴 것인지 나로 하여금 오래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지유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사실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를 바랐다.






에필로그 2


시간표에 여유를 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본인의 소원대로 진오(2)를 잘라주었다. 물론 내가 빠진다고 그 시간이 비워져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부디 아이에게 ‘한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를 뺀 열네 가지 중 단 한 과목이라도, 가장 마음이 끌리는 과목 하나라도 스스로 선택해 마음에 담아 둘 여유가 생기기를, 그것을 조금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지적 욕구가 동하기를,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배워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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