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 튀고 싶다

신입 영업사원 고백기

by 아침해


1. 사장님 등짝을 후려치다



스무 살 중반 매장 담당을 하는 전자 영업사원이었다. 구매를 담당하면서 10개의 매장관리를 했다. 제일 큰 매장은 선배가 담당하고, 녹번, 안양, 장한평 등 중소규모의 매장 등을 관리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중, 용산은 부서 모두가 중점으로 관리하는 매장이었다. 왜냐하면, 주요 임원들이 전자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매주 드나드시기 때문이다. 그 당시 매출이 좋았던 우리 부서는 어느새 차장과 디스플레이 전담하는 직원까지 해서 10명으로 인원이 늘었다. 용산 매장에서 우리의 제품을 더 많이 전시하고, 노출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거래선 직원과 싸우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왜 저희 제품을 두 배로 전시하지 않는 거요?
장사할 마음이 있는 겁니까?





라고 우리 선배는 거래선 직원을 혼냈다. 내 눈에는 혼내듯 말하는데, 거래선 점장과 부점장은 웃고 장난친다. 친분이 대단한 것 같았다. 그런 뒤 잠시 둘이 담배 피우고 들어오면, 점장은 우리 제품 몇 개를 골든존에 더 전시해 주곤 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아주 무더운 날, 수해 작업이 한창인 여름이었다. 회사 봉사단이 수해지역에 가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수리해 주고, 물건을 닦아주는 장면들이 TV에 많이 비쳤다. 그 주 매장에는 가전제품 구매 손님이 늘었고, 주말에 매장에서 직원처럼 내가 직접 고객에게 물건을 팔기도 하고, 진열을 챙기기도 했다. 용산에는 구매부와 매장이 2개가 있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던 중 우리 사장님께서 수행 인원과 함께 매장에 오셨다. 수해복구 장소에서 다녀오신 복장이라 금방 알아봤고, 인사를 드리려고 뒤 쫓아갔다.



어떻게 인사를 드리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그만 내 손이 사장님 등을 치게 되었다. 살짝 친다는 게 거의 등짝을 때리는 수준으로 치고 말았다. 뒤돌아 보신 사장님께 “ 신유통팀의 아침해입니다” 말씀드렸고 사장님은 인자하게 돌아보며 반가워요. 장사는 잘 되나요?라고 물으셨다.


네! 냉장고가 잘 팔립니다.
어제 35대, 오늘 52대, 그리고 다른 제품 포함하여
용산 매장에서만 3억이 팔렸습니다.



한 5분 이야기했나? 나는 주문을 담당하는 업무를 했기에 매일 주문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고있었으며, 그날 매장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몇 대 팔았는지 실시간 파악이 가능했다. "오, 많이 팔렸군요. 수고해 주세요" 후광을 뒤에 머금고 사장님은 자리를 뜨셨다.





2. 왜 한 대만 쳤누



다음날, 출근해서 무슨 일인지 모른 채 우리 팀장님께 불려 갔다.


네가 어제 사장님 들을 후려쳤다며?
“ 네? , 인사드리려고 하다가 사장님 등을 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대만 쳤누?
네?

여러 대 쳤어야지, 사장님이 얼마나 시원하시겠냐”

사장님이 팀장님께 전화를 받으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하시다가 내 이야기를 하셨단다. 용산에서

똑소리 나는 여직원을 만났는데 내 등을 그리 세게 쳤다고 말씀하셨단다.


우리 팀장님은 소문에 의하면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가지셨고,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유명하신 분이라고 했다. 굉장히 세련된 외모와 복장을 갖추셨고, 역시 외국물을 드셔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절로 되었다. 분명 영어도 잘하실 거고 딱 존경 각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한국어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상상과는 다른 매력이 또 있었다. 나 같은 사원은 감히 팀장님과 이야기할 짬도 안되었고, 어쩔 때는 너무 어려우신 분이라 피해 다니기도 했었는데, 그 사건 이후 신입사원 주제에 사장님과 팀장님과 급격히 말을 틀 수 있었다.




3. 이제 그만 튀자. 피곤하다


용산 사건 이후, 지속 꼬리표처럼 사장님 후려친 직원을 회자되었다. 팀장님은 간담회 때마다 식사를 하면서 틈틈이 나를 놀리셨다. 몇 개월 뒤 인사부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면담 내용인즉, 영어교사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내심 공짜 영어 공부를 받는다는 생각에 급 관심이 생겼고 이유를 물었다. 팀장님 지시로,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어쨌건 여성인력이 노출되고 팀 내서 활약하는 것은 선배, 후배에게 매우 귀감이 될만하지만, 의도적으로 키우겠다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겁이 났다. 한편으로는, 그놈의 사장님 등을 후려쳐가지고 이렇게 꼬이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야기만 듣고 나왔고.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정말 무서웠다. 인사부에서는 내가 답이 없자, 우리 부서장에게 연락을 했다. 나에게 비슷한 말을 다시 듣게 되었고, 영웅이 되기 싫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이 이야기한 건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고, 그래도 싫다고 말씀드렸다. 그 뒤로는 인사부에서는 나를 다시 찾지 않았다. 남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감당할 그릇이 안되었던 것 같다. 용산을 포함한 거래선 담당을 그렇게 5년 하고 발령이 났다.


H 마트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지방 출장 때, 거래선 H 마트 회장님과 식사 자리에 운 좋게 참석하게 되었다. 원래 회장님들이나 사장님들은 후광이 있나 보다. 마른 체격의 회장님, 골프를 선수급으로 치신다는 소문처럼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매우 보기 좋은 회장님 모습이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식사 자리에 한 마디씩 건배사를 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여직원 영업사원이 귀하던 시절 나는 그 자리에 있던 유일한 여직원이라 뭔가 또 한마디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매장이 번창하길 바라고 많이 돕겠습니다.
회장님을 뵙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뻔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회장님이 내 인상이 어떤가요 물으셨고, 순간 훅 들어온 질문에 어느 수준으로 답해야 할지 판단이 흐려졌다.


회장님은 굉장히 건강 관리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짱짱하십니다.



순간 그 방에 폭소가 터졌다. 1분도 안 되는 사이 분위기가 확 타올랐고, 막 웃으시던 회장님이 내가 좀 짱짱하지라고 응수하셨다. 내 눈은 우리 부서장 얼굴과 거래선 본부장 얼굴을 찾았다. 두 분의 안색이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오늘 무사히 이 몸은 자리를 뜰 수 있겠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제발 그만 튀고 싶다. 인생이 너무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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