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더러운 영업 생활

신입사원 술 충격기

by 아침해


1. 동병상련



이사님은 사람을 잘 다루시는 분이었다.

팀에는 백화점 부서가 있었는데, 이사님은 수백 명이 되는 판매사원을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칭찬하고 동기 부여하는 리테일의 대가셨다.


한 번은 팀 회식을 하는데, 나는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선배가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줬고 그다음 날 죽다 살아나서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사님이 나의 몰골을 보고 혀를 차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야야, 내가 네 신발 주워서 신겨줬다.



에그머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속마음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렸어야지. 중얼거렸다


영업하려면 술 잘 먹어야 되지 않아요?라고 질문받는 것을 일상이다. 술을 못 먹으면 영업에 불편한 것이 그 당시 현실이다. 다행히 대학 때 음주가무를 했던 편이라 술은 좀 먹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소주 두세 병을 먹는 주량은 아니었다. 한 번은 신규 매장을 오픈하면서 지방 출장 지원을 간다. 부산에 오픈 예정이었다. 매장이 오픈하면 거래선 구매담당 직원들도 매장에 가서 돕는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전 메이커 직원들이 들러붙어서 매장에 본인 회사들의 물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혈투를 한다. 매장 당일 날인 새벽 네시까지도 진열을 사수하고, 연출물을 비치하기 위해 매장 내에서 같이 머무는 것은 일상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내려간 우리도 숙소를 잡고, 매장에서 같이 머물러 준다. 딱히 직접 진열을 바꾸거나 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인해전술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많이 와서 관심을 보인다를 보여주기 위해 머물렀다.



중요한 일이 또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거래선 본부장, 임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 자리는 서로의 유대감을 가지고 매우 좋고, 그 자리에서 이슈 되는 제품들 에어컨, 김치냉장고등의 정책적 협의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석식 자리에서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영업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불똥이 나한테 튀기 전까지는 말이다.


매장 오픈 전날은 어김없이 거래선 임원들과 식사자리였다. 거래선은 이사급, 우리는 부장급이 주축이었고, 나 같은 사원 조무래기들이 따라붙었다. 마침 거래선에도 대졸 여직원이 입사했고, 나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동병상련 정신으로 서로의 일에 대하여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술을 누가 더 잘하냐의 논쟁이 양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슬슬 술을 먹는 분위기로 몰아가졌다. 그러더니 폭탄주가 한잔씩 돌았고, 한 마디씩 구호를 하고 폭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구호하는 것도 걱정이고 술을 먹는 것도 걱정이고, 일단 뭐라 던져 넣고 술을 마셨다. 예상컨데 폭탄주 다섯 잔이 내 목으로 넘어가면 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잔 돌고, 두 잔… 다섯 잔이 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테이블 밑에 사발을 놓고 술을 버리기도 했다. 들키면 혼나고, 거래선에게 지는 거다. 그냥 마셨다. 어느 순간 기억이 안나는 상태가 오는 것이므로 정신줄을 바짝 잡으려고 애썼다. 건너편의 거래처 대졸 여직원을 봤다. 바알 간 하니 흥이 올라보이긴 했으나 멀쩡했다. 한 7잔쯤 마셨나 속이 부대꼈다. 나는 화장실을 가서 게워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에 사람이 있었다. 엄청남 토악질 소리.. 나오는 그녀를 보니 거래처 대졸 여직원이었다. 입에 흐르는 토사물을 보고 핸드타월을 뜯어주며 괜찮냐고 물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서로 알 수 없는 미소만 흘렸다.




2. 체육대회


거래선 체육대회였다. 매장이 많아서 지역별로 체육대회를 하기도 하고, 수도권 어딘가에서 모여서 하기도 한다. 거래처가 체육대회를 하는 날이면 체육대회를 참가하는 것이 업무이다. 노는 기분도 들고 청바지도 입고 조금은 신난다. 여의도 한강변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우리도 정장 차림이 아닌 캐주얼하게 입고 모임에 구경 갔다. 거래선이 크다 보니 우리 본사 마케팅과 생산본부에서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경품을 지원해주니 정말 잔치가 따로 없다.


거래선 사장님까지는 오진 않으셨지만, 전무, 상무 등께도 인사를 드릴 기회였고, 이름도 기억하려고 애써주신다. 체육대회는 오후가 되면 파장이 되어 가는데, 우리를 포함한 파트너사에게 " 특별한" 제안이 들어왔다. 모두 술을 한잔씩 받으라는 것인데, 그 제안이 괴상했다.


잔디에 줄을 서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면, 우리의 입에 소주를 적당히 따르겠다는 것이다. 소규모 파트너 회사들이 잔디에 하나둘씩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고, 중소기업 대기업 영업사원들이 줄 지어 앉았다. 어느 순간 나도 꼬리에 앉아 있었고 선배 다음으로 입을 벌려 거래선 임원이 따르는 술이 목구멍으로 쳐들어옴을 당했다. 소주 ¼쯤이 입속으로 쑤셔 들어왔고, 바로 일어서서 그 길로 그냥 집에 왔다.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내가 집에 가야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


그 순간 거래선의 임원의 수준을 재 평가했다. 그분은 그해 겨울에 직장을 떠나셨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이 영업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 하니 포장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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