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4~5회 할 때까지는 느낌 없었는데 마지막 회로 가면서 매시간이 아쉬워졌다. 회사에 쪼들리는 삶이 싫어서, 다른 부캐를 찾아 선택한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나 스스로 옭아맨 약속이라 거절도 못 하고 선생님의 책무를 지키려고 애썼다. 내 지식과 유머를, 그리고 내 애정을 전달하려 애썼는데 헛수고 아니었음을 바랐다.
마지막이라서 늦고 싶지 않았어요
저녁 9시 정각에 들어왔다. 마지막 수업에는 아가 손님이 와 있지 않은가?
남동생의 아들 조카였다. 아빠는 흑인 엄마는 한국인이다. 올 1월에 태어난 귀염둥이에 절로 웃음이 났다.
3개월 아기는 저 정도로 크구나~ 실감했다.
아가야. 엄마 공부해야 돼
본인은 고모인데, 엄마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가를 책상에 앉히고 수업을 마쳤다.
어떠한 수업이던, 어떤 내용이던 열심히 호응해 주는 맛이 있었다.
아팠을 때에는 누워서 수업을 했고,
라마단 때에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수업했으며,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수습하고 다시 수업에 들어왔다.
한국어로 운전면허 공부 같이 한 최초의 학생이었다. 이런 열정적인 학생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낯선 그녀의 이름 <야투>는 이제는 그냥 옆집 동생 같다.
마지막 수업으로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복습을 했는데 8할 이상 모두 기억하고 잘 알고 있다. 상장이라도 만들어 줬어야 하는데 아차 싶었다. 딱 모범상인데 말이다.
나는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학생은 니제르의 삶을 가르쳐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아프리카 이야기는 그 어떤 것 보다 더 신기하고 재밌을 수 없었다. 솔직한 학생 덕분에 많이 배웠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다른 시작이라 하지 않던가.
언젠가 우리 다시 선생님하고 학생이 아닌 그냥 친구로 만나고 싶다.
야투씨가 남편과 사별한 지 후 3개월이 지났다. 이슬람에서 정한 외출금지가 곧 풀린다.
따뜻한 봄날, 털털한 웃음과 괄괄한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실컷 던지면서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 야투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야투씨를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마음속에서는 스멀스멀 궁금함이 올라왔습니다. 한 번쯤 내 안부를 물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잘 살고 있겠지~ 그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