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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Nov 22. 2021

항상 넘치게 주고 싶은 엄마들

플로에(Plouay)의 E네 집에서

로리앙에서 20분쯤 차로 달리자 작은 마을 플로에(Plouay)에 도착했다. 소박한 읍내만큼 작은 도시였다. 귀여운 시내를 관통한 후 뭔가 다른 마을로 진입하는 굽이길 코너에 E 네 집이 있었다. 사실 초대는 우연찮게 나와 S의 휴가지역이 브르타뉴로 정해진 사실을 알게 된 친구 E가 제안했다. 지난여름 E네 커플이 파리에 들러 친구 몇 명과 함께한 한국식 바비큐 저녁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제안받아, 그저 거나하게 취한 서로의 기분에 어영부영 오가는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떠나기 보름 전, E는 메신저 단체방을 열어 며칠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일정을 살폈고 결국 초대 날짜가 정해졌다. 촉박한 여행 일정에서 굳이 친구에게 폐 끼치며 일박을 한다며 S의 옷깃을 잡아당겼는데도 그래도 초대해 준 친구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다며 S는 기연코 E와 확정해버렸다. 출발 전 E는 이번 기회에 내게 짜장면 만드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서 떠나기 전, 한인마트에서 사 온 짜장면 재료들과 부탁받은 파리의 여러 물품과 함께 꽃 한 다발을 안겨주며 비주로 인사를 나누었다.


E네 커플은 우리가 머물 방을 소개할 겸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물결 같은 눈웃음을 일렁이며 일박하는 동안 내 집처럼 편히 있으라며 당부했다. 친구를 초대했다고 해서 유난히 신경 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둘째 아들 홀로 사용하는 욕실 샤워 커튼대는 부러진 채 달려있었고 깨진 변기 버튼도 교체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생활한 듯 보였다. 우리가 머무를 방은 창고처럼 쓰지 않는 세간살이를 보관해 두었는데 지금은 대학교 2학년인 그녀의 큰아들이 쓰던 유아 변기가 괜히 눈에 띄었다. 간단한 여장을 풀고 이런저런 소지품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뒀는데 와장창 하며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 보니 조금 전 올려둔 세면 가방에 내용물들이 다 바닥으로 쏟아져버렸다. 알고 보니 테이블은 뒷다리 하나 없이 다리 세 개로 겨우 서있었는데 거기에 내 소지품이 올려지자마자 균형을 잃고 굉음을 내며 쓰러진 것이다. 큰 폐를 끼친 것 마냥 재빠르게 주섬주섬 주워 담아 활짝 입 벌려진 내 캐리어로 세면 가방을 옮겨 두었다. 그동안 우리 집을 거쳐간 초대자들의 떠올리며 ‘내 집같이 편히 쉬다가’라는 말을 괜히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대충 짐 정리를 해두자 곧 E는 우리를 뒤뜰로 불러냈다. E는 본식도 아닌 아페리티프 안주를 야외 테이블에 가득 차려 놓았다. 두 쟁반에 이단으로 쌓인 딱틴은 구운 가지와 총총 썬 토마토를 듬뿍 얹어 구워냈고, 빵에 곁들일 과카몰리는 수프 볼에 담겨 나란히 두 개씩 맞추어 올렸다. 또 엄청난 샐러드 볼에 산처럼 쌓인 칩스와 이런저런 음료수, 그리고 와인 두병과 맥주 여러 병. 한 사람당 두어 번 집어먹으면 끝날 핑거푸드와 종지 그릇에 견과류나 마른 과일을 내어오는 프랑스 안주거리에 익숙한 우리는 무슨 아페리티프가 이렇게 대용량이냐며 놀라자 "이 사람 스타일이 이래. 음식을 언제나 넘치게 준비한 단말이지." 라며 그녀의 남편이 놀려댔다.


몇 시간째 대화를 나누며 안주거리를 주섬주섬 집어먹어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E는 바비큐 그릴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본격적인 저녁을 먹겠다고 그녀는 뜨거운 불판 위로 엄청난 고기를 쉬지 않고 올렸다. 최근에 친지 어느 분이 돼지를 도축해서 가져온 것이니 신선하고 양도 많으니 맘껏 먹으라는 말과 함께. 음식 준비하는 손크기를 보면 그녀는 영락없는 엄마다. 것도 두 아들의 엄마. 식사 양 조절을 못해서 다음날 회사 도시락으로 싸갈 분량까지 충분히 밥을 지었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모자라고, 실패를 되짚어 양을 늘려 만들어도 또 모자라는 일이 반복되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난 2인 살림이라 그런지 음식 손 키우는 건 참 힘든 일이다. E에겐 커가는 두 아들과 식사에선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낫다고 새겨진 듯했다. 모든 엄마들의 마음처럼.

그릴에서 구워진 삼겹살 한 줄, 소시지 한 줄을 먹었더니 엄청나게 배가 불러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와 진짜 배부르다" 라며 모두가 만족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도 E는 준비한 고기의 절반도 굽지 못했다며 또 돼지 안심을 불판 위로 올리는 거다. 결국 남은 돼지고기는 다 먹지 못했고 이미 구워졌지만 다음날 짜장면 재료로 써도 되니까 포장해두자고 제안했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비큐 그릴에서 뒤돌아 이내 E는 주방으로 향하더니 디저트 케이크를 들고 와 모두를 뜨악하게 했다.

"아무리 배불러도 디저트는 먹어야지!"


다음날 오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내 배가 더부룩거렸다. 끼니때마다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내오는 E의 이틀 동안의 사육 덕분에 주말 새 5 kgs는 불어버린 것 같았다. 도중에 해안가에 들러 밀려오는 파도를 반대로 두 시간 남짓 수영을 했는데 그제야 묵은 트림이 튀어나왔다. 발 밑의 자갈들이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닷물 안에서 허우적거리니 겨우 소화가 되었다. 엄마의 밥상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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