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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Jan 16. 2024

주말엔 도서관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는 도서관이 딱 하나 있다. 언덕배기에 있어 도착하면 숨이 조금 가빠진다. 그 언덕이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그저 사람 발길로 다져진 흙길에 불과했다. 가로등 몇 개가 고작이라 밤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도는 그런 길.


어릴 때 나는 주말 두세 시쯤 느지막한 시간에 그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면 항상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큰 공용 테이블 구석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책을 반납하면서 반납 도서 트럭을 구경했다. 요즘 유행하는 왓츠 인 마이백처럼 다른 사람들의 독서 취향이 궁금했다. 게 중엔 관심가는 책도, 살면서 절대 안 읽을법한 책도 있었다. 바깥구경을 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 책들은 이상하게 새 책처럼 느껴졌다.


그 다음엔 바뀌는 주기가 정말 느린 신간 코너를 구경했다. 당시에는 도서 신청 방법도 몰라서 새로운 책이 들어오길 기약 없이 기다렸다. 읽고 싶은 책이 없으면 미술 책 코너를 구경하고, 그다음엔 서가를 돌며 운명처럼 나타나 내 인생을 바꿀만한 책을 찾아다녔다.


넉넉히 고르고 나면 테이블로 돌아와 책을 훑었다. 그중에 재밌는 책은 반절을 읽어버리고, 재미없는 책은 후루룩 본 뒤 옆쪽으로 밀어놓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은 빌리기 위해 아껴두었다. 내가 빌릴 수 있는 권 수는 세 권뿐이었으므로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세 권을 못 채우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두둑이 채운 가방을 앞으로 메 받침대 삼아 책을 읽으며 언덕길을 내려왔다. 여름에는 막 지기 시작한 오렌지색 햇빛에, 겨울에는 몇 개 없는 가로등 빛에 의지하며 책을 읽었다. 지금 주말은 평일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이틀이지만, 어릴 때 주말은 도서관 가기에 여유 있는 이틀이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싶다가도 지금의 나를 만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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