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연과 필연 그리고 에밀리
불멸과 함께 마차를 타고 온 죽음을 보았다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
그의 시도 올여름, 불멸의 마차를 타고 내게로 왔다.
예고 없이 온 이 손님은 대강 이름과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나는 그가 뛰어난 시인이며 생전에 발표한 시가 많지 않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구절을 보았고,
그날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구매했다. 그가 쓴 시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
"내가 읽은 책 한 권으로 인해 온몸이 오싹해졌는데 그런 나를 어떤 불로도 따뜻이 못한다면, 그게 시예요. (중략) 오직 이런 식으로만 나는 시를 알아요. 다른 방법 있나요?
If I read a book and it makes my whole body so cold no fire can warm me I know that is poetry. (중략) These are the only way I know it. Is there any other way?"
-에밀리 디킨슨, 박혜란 고르고 옮김,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김소연 시인의 [눈물이라는 뼈]와 정한아 시인의 [울프 노트]를 펼칠 때 그랬듯이.
한동안 뜸했던 시 레이더망에 그가 포착되었다. 생각하지 못한 시어의 조합과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감각이 가만히 있던 마음을 두드렸다. 온몸이 오싹해지게.
Meeting by Accident,
We hovered by design -
우리는 우연히 만나
계획적으로 배회했다 -
-에밀리 디킨슨, 박혜란 고르고 옮김,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37p 중
나는 우연과 필연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만났을 때 우연히 만난 건지 필연적으로 만나야 해서 만난 건지 알기가 어렵다.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었는지, 다른 도리 없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를.
그 구분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 내게 에밀리 디킨슨은 훌륭한 해결책을 주었다.
위의 시를 읽는데 우연과 필연이 공생할 수 있음을, 굳이 구분 짓지 않더라도 한 공간에서 함께 언급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시는 해석하기 나름일 때가 있고, 의도하지 않아도 시선이 그대로 꽂히는 구간이 있는데 이 대목이 그랬다.
시의 한 부분만 가져오는 건 무례한 일이기도 하지만. 시를 읽으며 마음이 동하는 구간이 나는 늘 좋다. 오독이어도 빛나는 그 시 한 구절로 나는 힘을 얻는다.
에밀리의 시를 읽은 건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심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연과 필연을 구분하는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지 아님 어느 쪽이든 상관없기 때문인지도.
어느 쪽으로든 설명하기 어렵다면 그의 시처럼 현명하게, 내가 그의 시를 읽는 건 우연히 만나 계획적으로 그의 세계관에 들어가 마음껏 배회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편한 마음이 들었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독자의 마음으로.
만일 꿈에서라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전하고 싶다.
먼 나라의 시인 에밀리, Is there any other way? 다른 방법 있느냐고 묻는 당신의 언어가 나는 참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