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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yaChoi Feb 24. 2024

혼돈의 덕질

정상인이십니다요!

        요르단에 0-2로 참패한 아시안컵 4강전 뒤에 허탈함을 달래려고 네이버 스포츠 기사들을 읽다가, 오픈채팅 이강인 응원방에 몇 자리 남은 걸 발견했다. 오래전 포레스텔라의 팬클럽 숲별에 들어가려다 늦어서 못 들어간 아쉬움을 떠올리며, 또 늦어서 놓치지 않으려고 얼른 응원방에 입장했지만, 아무도 아무 말을 남기지 않은 채, 방은 내내 고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영국 타블로이드지 'The Sun'에 '한국국대 탁구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4강 시합 전날 탁구 치고, 하극상을 저지른 인성 못된 이강인' 기사가 우리나라 뉴스와 유튜브 등 여기저기 도배되었다. 밥 좀 빨리 먹고 탁구 친 게 그리 나쁜 일인지 탁구인으로서 혼란스러웠고, 멱살잡이와 몸싸움이 있었다니 당황스러웠으며, 예의 바른 우리의 '살아있는 레전드' 캡틴 손흥민이 다쳤다니, 더 놀랐다. 혹시 새로운 소식이라도 들을까 싶어서 잊고있던 채팅방으로 더듬더듬 찾아들어갔다. 방은 정원 1000명을 꽉 채웠고, 갑자기 몰려들어온 사람들이 온통 이강인 욕을 해댔는지, 클린봇이 지운 흔적이 얼룩덜룩했다. 미처 지워지지 않은 비방 글들을 보고, 피붙이도 지인도 아닌 내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까지도 발칵 뒤집은 거처럼 느껴지는 후속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우울했다. 귀여운 꼬마 이강인이 공차는 슛돌이를 보고 축구를 배운 뒤, 축구해설 기사와 유튜브를 보며 PSG 선수들 이름과 포지션을 외우고, 이강인의 PSG 19번 유니폼을 사고싶고, 어느 팀이든 축구 보러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사건의 정확한 전말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수많은 추측들이 흘러나왔고, 이강인의 첫 번째 사과문이 나왔지만, 한번 기울어진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수만 명이 이강인 SNS에 몰려가서 온갖 악플을 달았으며, 이강인이 광고하는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일어나면서,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 나쁜 놈일 수 있다니, 너무 슬펐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자, 괜히 억울해졌다.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린 거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거도 아니고, 미리 정해진 식사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긴장풀이용으로 다들 치던 탁구였고, 식사시간에 탁구 치지 말라고 미리 정해놓은 거도 아니었다.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들은 이런 간단한 규칙도 안 정하했나?) 요즘 애들이 말 안듣는 뿐만 아니라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꾸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체도 없이 연장전을 두 번이나 연달아 치르면서 모두 너무 지치고 예민해져서 발생한 우발적인 다툼이었을 텐데...... 엄격한 축구감독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손흥민과 혼자 알아서 거칠게 살아남은 이강인의 스타일이 정반대여서, 이 둘의 성격이 뒤바뀌었더라면 훨씬 평화로웠을 거 같다고 생각할 즈음, 이강인이 영국으로 날아가서 손흥민에게 사과했다는 기사와 함께 둘이 나란히 사진이 무려 4~50개 동시에 떴다.

        어떤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도록 행동해야 주장존중(respect)하고 따라야한다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사회가 너무 유교적이고 여론재판이 과하다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혈기왕성한 선수들이 모이면 흔히 일어나는 다툼인데, 이걸 밖으로 흘린 그 누구와 이를 무마하지 않은 감독과 언론 플레이한다는 의심을 받는 축구협회가 제일 잘못했다고 한다. 후유, 무섭고 혼란스러운 덕질이다.


         누군가를 욕하는 덕질 말고, 응원하는 덕질을 하자.


* 이강인 관련 가짜 뉴스 유튜브가 2주 동안  361개 올라와서 7000만회 이상 재생됐고, 약 7억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한다. 


*누적된 피로와 바이러스 감염과 마음 고생으로 부진을 거듭하며 출전 시간이 점점 짧아지던 이강인이 2024/3/5에 유럽챔피언스리그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로 나와서, 가슴 트래핑으로 받은 공을 매끈한 포물선을 그리며 로빙 패스해서, 음바페 골에 도움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선발 출전해서, 전체 경기를 소화했다.


* 이강인 월드컵 예선 태국전 참여 찬반 투표에서, 46.9:40.7 여론이 반으로 나뉘었다는 뉴스가 떴다. 황선홍 임시 감독은 이강인을 소집했고, 붉은 악마는 대표팀과 모든 선수를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으며, 태국전 티켓은 완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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