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환절기에 기침하다가 갈비뼈에 금갔다는 지인이 큰 병원에 가봐야겠는데 의사들이 의대정원 증가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가는 바람에 병원이 난리났다고 걱정하는 말을 듣다가, 몇 년 전 코로나 때가 떠올랐다. 강력한 전염병 때문에, 길에서도마스크를 꼈고, QR 코드를 찍어야 마트나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코로나 환자의 밀접 접촉자뿐만아니라 코로나 환자와 동선이 겹치는사람들도 자가격리하고병원출입도통제당했다. 전무후무한통제가 극에 달했을 때, 집에서 운동하다가 폼롤러를 밟고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내 오른 손목이 뚝 부러지고 말았다.
동네 큰 A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금방 엑스-레이 찍고 응급실 의사가 사진을 확인한 뒤에 레지던트랑 둘이, 한 사람은 팔뚝을 잡고 또 한 사람을 손을 잡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쭉 잡아당겼다. 아프기도 했지만, 손목이 떨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란 내가 '악......' 소리지르는데, 둘이 뼈를 맞추더니순식간에 기브스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다시 찍은 엑스-레이를 보여주던 응급실 의사가 '아직 젊으시니까 수술하는 게 나아요' 하더니, 정형외과 교수님이 휴가여서 1주일 뒤에 수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이 엑스-레이를 들여다보던 나는 손목뼈가 아주 조금 엇갈린 걸 발견하고 '쫌 삐뚤어요' 했더니, 응급실 의사가 억울한 표정으로 '똑바로 맞추는 거 어려워요' 하고 말했다.
왠지 1주일 기다리는 동안 뼈가 어긋나게 붙을 거 같은 불안 때문에, 하루 고민 끝에, 더 큰 B 병원 응급실로 갔다. 누군가 오더니, 내가 다녀온 A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줬다. 잠시 뒤 응급실로 내려온 정형외과 의사가 나 같은 골절 환자는 무조건 뼈를 새로 맞춘다며, 내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 둘이 또 내 팔을 양쪽으로 잡아당겨서 뼈를 새로 맞췄다. 하지만 며칠 뒤, 외래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그새 또 손목뼈가 어긋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술받기로 했다.
수술 전날, 온갖 검사를 다 받고, 마지막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갔다. 입구에서 코로나 발생지역을 다녀왔는지 체크하는데, 리스트에 A 병원이 보였다. 내가 A 병원에 다녀왔다니까, 간호사가 옆 칸으로 가라 했는데,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거기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여럿이 나 하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한참 의논하더니 정형외과에 전화했는지, 잠시 뒤 정형외과 간호사가 내게 전화했다. 'A 병원 다녀온 걸 왜 말안했어요?'하고목소리 높이며, 다음 날 수술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응급실 들어갈 때 다 말했는데..,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닌데...뼈를 똑바로 다시 맞춰주지도 않고부러진 채로 2주 뒤에 다시 오라니... '내 손목 어떻게 해요?'하고 앙앙 우니까, 이 사람들이 아주 난감해하며, 자기들끼리 또 한참 의논하더니 놀라운 융통성을 발휘해서, 코로나 발생리스트에서A병원 '응급실'을 빼주겠다며, 다음 날 수술받으라했다.
못 받을 뻔한 수술을 받게되어 그런지, 살았구나 싶은 마음에그 무서운 수술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수술 끝나고 생각해 보니,진료기록을 떼느라 코로나 터진줄도 모르고A 병원 본관 건물에 들어갔었다!
1년 뒤, 손목에 박은 쇠를 빼는 수술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수술과 달리, 다시 들어가는 수술실 앞에서 꽤 연세 있어보이는 마취과 교수님이 하얀 가운를 입은 애들(?) 앞에서 내 팔에 초음파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바늘을 넣다 말다, 이쪽으로 찔렀다 저쪽으로 찔렀다 하면서 계속 뭔가를 설명했다. '아고... 선생님 제가 좀 어지러운데요...' 했더니, '아, 네' 하고는, 또 설명을 이어갔고, 나는곧 잠들었다. 그리고 몇시간만에 마취가 쉽게풀렸던 첫 번째 수술과 달리, 두 번째 수술에서는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간신히 나무토막같던 팔의 마취가풀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 의사쌤은 눈에 선하다며 한참 웃더니, 의대 정원이 확 늘면수술실에 들어와서 수업 듣는 학생들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설명을곁들였고,현실을 잠시 잊고 우리는 다 지난 내 고군분투기에 또웃었다.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규정을 약간 비켜가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사람을 살리는 게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