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yaChoi Mar 08. 2024

규정과 융통성 사이

정상인십니다요!

        오락가락 환절기에 기침하다가 갈비뼈에 금갔다는 지인이 큰 병원에 가봐야겠는데 의사들이 의대정원 증가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가는 바람에 병원이 난리났다고 걱정하는 말을 듣다가, 몇 년 전 코로나 때가 떠올랐다. 강력한 전염병 때문에, 길에서도 마스크를 꼈고, QR 코드를 찍어야 마트나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코로나 환자의 밀접 접촉자뿐만 아니라 코로나 환자와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도 자가격리하고 병원출입도 통제당했다. 전무후무한 통제가 극에 달했을 때, 집에서 운동하다가 폼롤러를 밟고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내 오른 손목이 뚝 부러지고 말았다.

        동네 큰 A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금방 엑스-레이 찍고 응급실 의사가 사진을 확인한 뒤에 레지던트랑 둘이, 한 사람은 팔뚝을 잡고 또 한 사람을 손을 잡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쭉 잡아당겼다. 아프기도 했지만, 손목이 떨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란 내가 '악......' 소리지르는데, 둘이 뼈를 맞추더니 순식간에 기브스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다시 찍은 엑스-레이를 보여주던 응급실 의사가 '아직 젊으시니까 수술하는 게 나아요' 하더니, 정형외과 교수님이 휴가여서 1주일 뒤에 수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이 엑스-레이를 들여다보던 나는 손목뼈가 아주 조금 엇갈린 걸 발견하고 ' 삐뚤어요' 했더니, 응급실 의사가 억울한 표정으로 '똑바로 맞추는 거 어려워요' 하고 말했다.

        왠지 1주일 기다리는 동안 뼈가 어긋나게 붙을 거 같은 불안 때문에, 하루 고민 끝에, 더 큰 B 병원 응급실로 갔다. 누군가 오더니, 내가 다녀온 A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줬다. 잠시 뒤 응급실로 내려온 정형외과 의사가 나 같은 골절 환자는 무조건 뼈를 새로 맞춘다며, 내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 둘이 또 내 팔을 양쪽으로 잡아당겨서 뼈를 새로 맞췄다. 하지만 며칠 뒤, 외래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그새 또 손목뼈가 어긋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술받기로 했다.

        수술 전날, 온갖 검사를 다 받고, 마지막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갔다. 입구에서 코로나 발생지역을 다녀왔는지 체크하는데, 리스트에 A 병원이 보였다. 내가 A 병원에 다녀왔다니까, 간호사가 옆 으로 가라 했는데,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거기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여럿이 나 하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한참 의논하더니 정형외과에 전화했는지, 잠시 뒤 정형외과 간호사가 내게 전화했다. 'A 병원 다녀온 걸 왜 말안했어요?' 하고 소리 높이, 다음 날 수술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응급실 들어갈 때 다 말했는데..,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닌데...뼈를 똑바로 다시 맞춰주지도 않고 부러진 채로 2주 뒤에 다시 오라니... '내 손목 어떻게 해요?'하고 앙앙 우니까, 이 사람들이 아주 난감해하며, 자기들끼리 또 한참 의논하더니 놀라운 융통성을 발휘해서, 코로나 발생 리스트에서 A병원 '응급실' 빼주겠다며, 다음 날 수술받으라 했다.

        못 받을 뻔한 수술을 받게되어 그런지, 살았구나 싶은 마음에 그 무서운 수술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수술 끝나고 생각해 보니, 진료기록을 떼느라 코로나 터진 줄도 모르고 A 병원 본관 건물에 들어갔었다!

        1년 뒤, 손목에 박은 쇠를 빼는 수술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수술과 달리, 다시 들어가는 수술실 앞에서 꽤 연세 있어보이는 마취과 교수님이 하얀 가운를 입은 애들(?) 앞에서 내 팔에 초음파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바늘을 넣다 말다, 이쪽으로 찔렀다 저쪽으로 찔렀다 하면서 계속 뭔가를 설명했다. '아고... 선생님 제가 좀 어지러운데요...' 했더니, '아, 네' 하고는, 또 설명을 이어갔고, 나는 곧 잠들었다. 그리고 몇시간만에 마취가 쉽게 풀렸던 첫 번째 수술과 달리, 두 번째 수술에서는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신히 나무토막 같던 팔의 마취가 풀렸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 의사쌤은 눈에 선하다며 한참 웃더니, 의대 정원이 확 늘면 수술실에 들어와서 수업 듣는 학생들이  배로 늘어난다는 설명을 곁들였고, 현실을 잠시 잊고 우리는  지난  고군분투기에  웃었다.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규정을 약간 비켜가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사람을 살리는 게 정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혼돈의 덕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