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돌봐주던 달빛
해가 지고 창가에는 어둠이 찾아온 시간. 언니는 책상에 놓인 각도기와 공책 연필을 챙기기 시작한다.
나는 눈치를 보면서 언니의 물건을 만지작거린다. “나도 갈래!” 언니는 조금 귀찮다는 표정이지만 늘 그랬듯 말한다. “가자.” 그 말에 신이 나서 집을 나선다. 길게 늘어진 아파트 복도를 걷는 언니와 나의 뒷모습.
언니는 조금 앞장서며 어른답게 말한다. “잘 따라와. 말썽 피우지 말고.”
달을 보며 걸었다. 어릴 적, 언니와 함께 달의 각도를 재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름방학이었고, 숙제는 달 관찰일지 쓰기였다. 언니는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공책과 연필 그리고 각도기를 챙겼다. 그 모습이 비장하고 멋져 보여서, 매일 밤 쫄래쫄래 언니를 따라나섰다. 밤이 오는 게 신이 났던 유일한 이유였다.
집 앞에는 매일 밤 달이 떠 있었다.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크고 환한 달. 언니는 팔을 쭉 뻗어 달 위에 각도기를 포갰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숫자와 기호를 공책에 적었다. 조용하고도 어둡고도 밝은 밤. 언니는 달과 비밀스러운 약속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나무는 천천히 흔들리고, 풀 속에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났다. 바람 속에는 짙은 풀 향기,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언니를 따라 달을 관찰하고 매번 이름을 붙였다. 만두 같은 얼굴, 단무지 달, 손톱 달. 그중에서 유독 좋아하는 달이 있었다. 얼굴을 숙여서 무언 갈 보려고 하는 모양 같은 달이었다. 그때의 언니와 나를 자세히 살펴주고, 얼굴을 기울여 이야기를 꼼꼼하게 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귀 기울이는 달이라 지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하현달이라 했다. 가끔씩 그 달을 마주하면 더없이 기쁘다. 어린 시절 언니와 달님이 나눈 비밀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