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랑' 여는 글] 편집위원 민상
누군가는 지금을 대혐오의 시대라고 한다.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는 아닌듯하다.[1]
아이유가 신곡 소개 글 첫머리에서 내놓은 이 진단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부터 그랬다. 가깝게는 매일 같이 에브리타임에서 순서를 바꿔가며 HOT 게시판을 점령하는 혐오성 게시물부터 그렇지 않은가. 이곳에 사랑은 없다.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는 데조차 큰 용기와 비약이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여러 문제점을 차치하고서라도, 〈Love wins all〉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15년 차 유애나인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무엇보다 이 문장과 아이유의 글에 만연한 ‘사랑’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아이유의 글은 꼭 ‘남녀갈등’과 ‘소득분위갈등’을 멈추라고 애걸하는 ‘에타 현자’의 게시물 같았다. 혐오 ‘떡밥’이 한차례 돌고 나면 꼭 올라오기 마련인, 혐오가 넘치는 대학 커뮤니티에 대한 반성을 담은 글들 말이다. 혐오성 게시물만큼이나 이런 류의 게시물 또한 하도 많이 목격해서인지, 이제는 ‘우리 모두 사랑하자’고 외치는 일도 모두 거대한 돌림노래의 한 소절로 끼어들어 가 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K-Pop의 정상에서 십수 년을 버텨온 아티스트로서 아이유의 사랑은 습관이자 삶의 태도가 된 사랑이다. K-Pop은 무엇보다 사랑을 팔고 분배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혐오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아이유와 ‘에타 현자’들이 사랑을 습관 삼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사랑을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대혐오의 시대’인 만큼,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랑’을 대안으로 내거는 ‘대사랑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정말 ‘사랑은 혐오를 이’길까? 정말? 언제나? 둘을 관성적으로 대립시키면서, 사랑에 거는 기대와 낙관들로 우리는 그 반대항에 있는 혐오의 몸집 또한 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랑해’라고, 누군가의 눈을 보며 말한다.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구체적이어서, 고작 세 글자밖에 안 되는 짧은 말에 고백, 선언, 기대, 예언, 공감을 포함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담아 보낸다. 역시 가성비가 넘치는 말이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랑한다는 말로 잠시 덮어둔 여러 못남들, 나와, 너와, 세계의 못생김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한다. 최소한 못생김에 관한 한, 사랑은 너무 많이 약속해 주는 탓에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목사가 “사랑해서 반대한다”고 말할 때, 백인우월주의자가 이것은 외국인을 향한 ‘혐오’가 아니라 백인의 영혼을 향한 ‘사랑’이라고 말할 때, 사랑의 약속은 너무도 굳건하고 유능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거짓되거나 말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해’가 진실한 만큼, 그 말을 믿는 만큼 이들의 사랑은 누군가를 죽이고, 경멸하고, 심지어는 ‘극복’해 버린다.
아이유의 〈Love wins all〉의 뮤비에서 각각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분한 아이유와 뷔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존재는 눈, 코, 입이 없는 금속성의 ‘네모’로 표현된다. 하지만 현실의 ‘네모’들은 눈으로 그들을 보고, 코로 그들의 냄새를 맡고, 입으로 침을 튀긴다.
저희는 매일 아침 뮤직비디오의 "네모" 같은 존재와 싸우고 있습니다. 침묵 선전전조차 수많은 경찰,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폭력 속에서 쫓겨나고, 그들의 온갖 언어 폭력도 감내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장애인도 함께 살자고 외쳤다는 이유로 수많은 전장연의 활동가들이 수차례 폭력적으로 연행되고 있습니다. [2]
아이유의 뮤비를 향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만평은 이토록 구체적인 ‘대혐오의 시대’를 증언한다. 이곳에 사랑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사랑이 있대서 간단히 나아질 리 없다. 사랑은 이토록 무력하다. 그것은 애초에 무언가를 이기는 힘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혐오를 이기려 든다면, 차라리 다른 무언가를 무기 삼는 편이 나을 성 싶다. 이를테면 눈과 코와 입을 더 적절하게 사용하는 법을 연마해 두는 건 어떨까. 이걸 나중에 가서 ‘사랑’이라 부를지, 그러지 않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단 지금은, 사랑을 믿지 않겠다.
편집위원 민상 I hitch9662@gmail.com
[1] EDAM엔터테인먼트 (2024.01.24). [아이유] IU 'Love wins all' 발매 안내 [온라인 게시물].
[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4.01.28.). The real "Love Wins All" ; 아이유, 유애나, 그리고 함께 하는 시민 여러분께 [전장연 만평].
참고문헌
단행본
사라 아메드 (2023).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 (번역). 오월의봄.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4.01.28.). The real "Love Wins All" ; 아이유, 유애나, 그리고 함께 하는 시민 여러분께 [전장연 만평]. 접속일 2024.02.09.. Retrieved from https://sadd.or.kr/data/?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jt9&bmode=view&idx=17785527&t=board
EDAM엔터테인먼트 (2024.01.24). IU ‘Love wins all’ 발매 안내. [홈페이지 게시물]. 접속일 2024.02.17.. Retrieved from http://edam-ent.com/html/sub02/sub02_0201.php?bbsCode=b_notice02&vType=view&idx=50&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