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편집위원 민상
파주시청의 용주골 행정대집행 예고일이었던 작년 11월 22일, 용주골로 들어서는 길목의 코너를 돌아, 트럭 한 대가 맹렬히 달려왔다. 용역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던 용주골 성노동자들과 활동가, 시민들은 잔뜩 긴장한 채 팔짱을 끼고 수 초만에 스크럼을 짰다. 공기가 금세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마저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햄버거에요 햄버거!!"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며 저지선이 활짝 열렸고, 트럭 운전수는 운전석 창문을 내려 개선장군처럼 손을 흔들었다. 잠시 비장해졌던 게 머쓱한 듯 모두 환호했다. 점심시간이었다.
[그림 1] 용주골 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와 시민연대자 들이 용역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다. ⓒ 상민
이들이 이토록 긴장했던 이유는, 행정대집행 기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저지선을 넘어다니는 과정에서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호의적인 기사를 써줄 리 없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당연하다는 듯 스크럼을 짜증섞인 손짓으로 헤치고 넘어다녔고, 시청 공무원들은 그런 기자들인 척 위장을 하고 들어와 종사자들의 생활공간을 비롯해 용주골 이곳저곳을 촬영해갔다. 연대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만을 기다리며 채증 카메라를 들이미는 경찰들도 있었다.[1]
용주골을 향하고 있는 이 모든 ‘렌즈’와 ‘눈’들은 용주골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라며 노려보고 있다. 지난 《고대문화》 151호에서 전한 파주시의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 걷기 행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선의 주인이 페미니즘을 표방하든, 명목상 용주골 사람들을 보호하러 온 경찰이든, 파주시를 ‘정화’하고자 노력하는 시청 공무원이든 큰 차이는 없다. 추위가 살을 에는 겨울에[2] 제아무리 사납게 노려본대도 갈 곳 없는 성노동자들이 제 발로 순순히 걸어 나갈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불법 건축물 철거를 구실 삼는 행정대집행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는 파주시청의 CCTV 설치 시도 역시 폭력적 시선을 통해 용주골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다. 시청은 11월 28일, 12월 21일, 1월 30일 총 세 차례에 걸쳐 종사자들의 생활공간을 촬영하는 구도로 CCTV를 설치하려 기습했다. 무리하게 설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굴삭기 삽에 직원을 태워 작업을 하고,[3] 설치를 저지하기 위해 종사자가 굴삭기 삽에 올라가 대치하자 그를 떨어뜨리려 굴삭기 삽을 흔드는 등 위험한 상황이 끊이지 않았다. 김경일 파주시장에 따르면, 모두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일어난 일이었다.
[그림 2] 행정대집행이 시작하기 전 집결하고 있는 연대자들. 사진에 보이는 전봇대는 파주시청이 CCTV 설치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곳이다. ⓒ 상민
이미 용주골 안에는 종사자들이 자비로 설치한 수십 대의 CCTV가 작동 중이고, 집결지의 특성상 범죄 예방을 위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파주시청이 용역과 시청직원, 그리고 종사자들의 생명을 위협해가며 행정대집행과 CCTV 설치를 강행하는 덴 별다른 명분이 없는 것이다. 경찰의 카메라, 여행길 행사 참가자의 시선, 시청이 설치하려하는 방범카메라의 차가운 응시를 무기 삼아 여타 여성과 소수자에게 그러하듯 성노동자들에게도 수치심을 안겨주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 자리에서 성노동자는 다른 시민들과 형식적으로조차 동등한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삶을 재현하기, 이들을 ‘파주시민’으로 인정하기 거부하는 사회에서 성노동자의 삶은 마치 삶이 아닌 것처럼 다루어진다. 용주골 폐쇄에 반대하는 성노동자 당사자들은 언제나 행정대집행을 다룬 기사에서 이름을 잃고 ‘업주·건물주·알선업자’로 퉁쳐진다. 파주시가 10월 13일 내놓은 탈성매매 방안은 당사자와 한번의 논의도 없이 이루어졌다. 파주시에게 용주골 성노동자들은 애초에 동등한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파주시가 차려놓은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에 성노동자들은 함께 걸을 수 없었다. 이들은 ‘존엄을 포기했기에’ 여성도, 따라서 시민도 아니고, 행복할 수도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성노동자는 ‘정상 시민’과 동등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더 수월하게 집결지 철거를 진행하고 성노동자들을 통해 주한미군에게서 외화를 끌어모으던 파주시와 국가의 역사를 ‘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수치심은 그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기를 넘어, ‘파주시의 발전’과 ‘여성인권 제고’라는 공허한 문구와 맞물려 돌아가는 통치의 기술로 작동한다.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업주들을 통해 용주골 폐쇄에 대응하지 않는 대신 자체적으로 ‘자작나무회’를 결성한 이유에는, 정치, 여성인권, 진영, 이권을 모두 부차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생존의 문제가 있었다. 대개의 경우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아무런 의미도 생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여전히, 수백번이고 다시 말해져야 할 구호다. 행정논리와 페미니즘을 ‘핑계’ 삼는 자본과 기득권 정치에 비해, 이곳엔 삶 말고 아무것도 핑계 삼을 것이 없다.
파주시청이 철거하려는 ‘불법건축물’은 성노동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증축한 부엌, 빨래방, 거실이고, CCTV가 감시하는 곳은 종사자들의 생활공간이다. 용주골 투쟁은 삶을 지우려는 데 맞서 삶을 지키려는 투쟁이다. 종사자들은 어차피 용주골은 쇠락하고 있는 곳이라며, 자신들에게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마따나, 그리고 파주시의 의도대로, 결국 용주골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 삶의 시간 속에서 그러해야 한다. 행정집행과 도시개발, 자본의 시간 속에서는 안된다.
[그림 3] 11월 22일 행정대집행 연대자들이 먹었던 데리버거 ⓒ 상민
트럭을 타고 수백개의 데리버거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전자에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개장 컵라면을 먹을 시간이었다. 이미 아침에 김밥 두 줄을 먹어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젓가락 없으신 분, 물 못받으신 분, 한그릇 더드실 분을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와중에 라면 냄새까지 맡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시청 공무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폭식 시위’였다. 배가 불렀지만 끝까지 먹었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였으므로.
편집위원 민상 | hitch9662@gmail.com
[1] 실제로 불법행위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카메라를 키고 채증을 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2] 서울시는 최근 몇 년 사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8조의2(건축물의 철거 등) 제3항 4호’에 근거해 동절기 강제철거 행위를 금지해 왔다. 하지만 파주시청의 경우, 동절기 강제철거 금지는 서울시에서 따르는 ‘권고’ 사항일 뿐 경기도인 파주 용주골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202조’는 ‘차랑계 건설기계로 작업하는 경우 승차석이 아닌 위치에 근로자를 탑승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자료
박나혜·김세원 (2023. 12. 28.). 민들레들판. "파주시의 용주골 폐쇄, 우리 인생 결정할 시간 달라". Retrieved from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48
소봄이 (2023.12.27.). 뉴스1. '폐쇄' 용주골 여성 "분유 안 훔치고 애들 키울 수 있는 곳이었다" 울먹. Retrieved from https://www.news1.kr/articles/?5272867
기타 온라인 자료
성노동자해방행동 차차 (2024.02.03.). 사람이 죽을 뻔 했다. 파주시는 용주골 참사를 막기 위한 결단을 내려라 [입장문]. 접속일 2024.02.20.. Retrieved from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