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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봄에서 여름을

[시선] 편집위원 석규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2023년 7월 19일, 폭우로 수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던 해병대 포병대대의 채수근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 후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예천군은 대비되지 않은 폭우에 정부 책임론을 희석하기 위해 군부대가 대대적으로 동원된 곳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잘 알고 있던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은 ‘해병대 티셔츠가 잘 보이게끔 복장을 통일할 것’을 강조하며 적색 해병대 티셔츠 외의 다른 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유속이 빨라 상륙장갑차조차 철수한 내성천에 구조 훈련을 받지 않은 포병 병력을 투입하며 구명조끼조차 입지 말라는 무리한 지시였다. 경북소방본부는 ‘인간띠 수색’[1]을 만류하며 채 상병이 투입된 수중 수색은 소방 당국이, 해병대는 하천변 수색을 전담하기로 해병대와 이미 협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소방 측과 협의되지도 않은 작전에 병력을 무리하게 밀어 넣어 사람을 죽인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러한 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으나, 당시 국방장관 이종섭은 본인이 결재한 임성근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구두로 과실치사 혐의를 기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에 반발한 박정훈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된 뒤 보직 해임되었다. 채수근 상병(사후 추서)과 함께 실종되었다 구조된 동료 병사는 전역 이후 임성근을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으나, 사건의 책임자인 임성근에게 ‘심각한 이적행위’이자 ‘북한 사이버 공격의 한 행태’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가족 동향과 수사 기록의 이첩 상황 등을 세부적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결재한 뒤 대통령실 명의의 전화를 받았고, 임성근의 혐의를 제외할 것을 지시했다. 수사 외압 의혹의 가장 ‘윗선’으로 의심받는 윤석열은 이후 핵심 관련자로 공수처에 의해 출국 금지되었던 이종섭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여 출국시켰다. 이종섭이 윤석열의 개인 전화로 3차례 연달아 통화한 뒤 곧바로 박정훈 수사단장의 해임을 지시했다는 사실 역시 새롭게 밝혀졌고, 동시에 직무 배제 예정이던 임성근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등 ‘구명’을 받았음이 확인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이자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계좌 관리인이었던 이종호가 ‘VIP’에게 그의 구명을 로비하겠다는 녹취가 폭로되기도 했다.


이러한 수사 외압 논란과 ‘감싸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지난 2024년 7월 5일 임성근에게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 직후 임성근은 “허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을 상대로 형사와 민사소송 등 권리구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위협했고, 국민의힘 박준태 원내대변인은 “채상병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1주기 전에 수사 결과가 발표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조롱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특검법을 발의하였으나, 모두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다시 돌아왔고, 2/3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재의결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윤석열이 부당한 방식으로 수사에 외압을 가해 사법절차를 방해하고, 가족의 비리까지 엮인 사건에 대한 특검을 명분 없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무산시킨 것은 중대한 권력형 부패 범죄다.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 사유까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또 다른 본질은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책임 면피를 위해 사병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국가의 문제다. 임성근이 경찰에 제출한 탄원서 중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는 부분이 이를 적확히 보여준다.


편집위원 석규 | ksk030306@naver.com


[1] ‘인간띠 수색’은 물살이 약하고 수위가 얕은 지역에서 구조 대상이 물에 빠진 위치가 식별되었을 때 사용하는 수색 방법으로, 구조 대원들이 몸을 안전장치로 서로 묶고 일렬로 서서 구조 대상이 멀리 떠내려가지 않게끔 한다. 유속이 빠르고, 실종 인원이 확인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적합한 수색 방법이 아니다.



아리셀 참사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 배터리 제조 업체 ‘아리셀’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총 24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18명이 외국 국적의 이주노동자였다. 이번 참사는 아리셀 공장 3동 2층의 작업장에 쌓여 있던 배터리들이 폭발하고 유독가스를 분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은 배터리가 아닌 기업과 노동의 구조에 있었다. 참사 당시의 CCTV 영상을 보면 배터리가 폭발하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은 일반 분말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한다. 이는 소화기로는 제압할 수 없는, 리튬 배터리 화재 발생 시 대처법을 교육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해당 공장의 비상 출입구는 두 개였지만, 화재를 일으킨 배터리들이 두 출입구로 나가는 문 앞에 적재됐다. 많은 희생자는 대피로를 찾지 못하고 질식사했다. 아리셀의 노동자 중 절반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파견업체 ‘메이셀’로부터 공급된 이들이었다. 사측이 ‘저렴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리튬 배터리 화재에 대한 대응 방법이나 공장의 대피로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참사 석 달 전, 화성소방서는 ‘정기 소방활동 자료조사’에서 참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3동을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지역”으로 지목하고,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경고했다. 그러나 이후 적절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참사 이틀 전, 아리셀의 다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근처에 있던 노동자들이 초기 진압에 성공했지만, 이는 화재 예방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법 파견과 대피로 미확보, 취급 물품에 대한 안전 교육의 부재, 부실한 화재 예방 등 이윤을 위한 관리가 2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번 참사는 한국 경제가 열악한 일자리에서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음을 비극적으로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와 산업계는 노동력 부족과 채산성을 이유로 ‘값싼’ 이주노동자 인력 유입을 늘리면서도 이들의 안전과 구조적인 대비에는 무신경했다. 예컨대 울산 현대중공업의 조선소에는 30여 개국 출신의 이주노동자 약 1만 명이 일하고 있지만, 위험 표지판도, 영상으로 이루어지는 안전 교육도 한국어로만 제공된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대상 산업안전교육 역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교육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전체 산재 사망자 수가 꾸준히 감소한 데 반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와 그 비율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용자의 협박으로 신고하지 못하거나, 한국의 법과 제도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산재 신청 방법과 관련된 권리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가 더 잦을 것임을 생각해 보면 위험의 외주화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충실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로 제공되는 부실한 교육과 비닐하우스 숙소, 위험에 노출된 노동 환경에 이주노동자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 교육의 개선, 기숙사 투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 제도 개선과 적극적인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편집위원 석규 | ksk030306@naver.com



동성 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19년 결혼한 소성욱-김용민 부부에게 소성욱 씨를 김용민 씨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고 안내했고, 이후 2020년 2월 소성욱 씨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공단 측은 같은 해 10월 피부양자 등록은 ‘업무 착오’였다며 자격 인정을 무효화하고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했다. 이에 불복해 부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1심은 결혼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보고 원고 패소로 판단했지만, 2023년 2월 2심 재판부는 사실혼의 배우자와 동성 결합의 상대방은 사실상 동일하다며 공단의 피부양자 자격 박탈을 ‘차별’로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2024년 7월 18일, 대법원이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라는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성 사실혼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부부에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동시에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며 법률혼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대법원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지금도 국민연금법은 수급권자가 사망할 경우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실혼 배우자에 동성 배우자는 제외한다. 동성 부부에게는 법적 가족에게만 주어지는 공공임대주택도 그림의 떡이다. 부부 합산 소득이 인정되지 않아 대출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권리는 여전히 세계 주요 국가들에 비해 후진적이다. ‘G7’ 7개국은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동성혼을 합법화했고, 지난 2019년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한국 역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와 법원이 제도 정비, 법제화에 먼저 나서야 한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세력은 반발하고 있다. 개신교 대형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산하의 보수 일간지 국민일보는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커플의 권리를 인정한 것인데 사회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결론”이라며 “사회적 혼란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2]. 한국교회총연합은 “한국 사회의 정서와 사회질서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비판했다[3].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반대하든 동성 부부는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를 그저 법적으로도 인정하는 것이 기존 가족 질서를 붕괴시킬 ‘전염병’ 같은 것이 될 수도 없다. 국회는 이미 존재하는 동성 부부와 성소수자 시민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그리고 모든 시민의 평등한 일상을 위해 혼인평등법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은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자명한 진실이 대법원의 판결로 드러났다면, 이제는 국회의 입법으로도 증명되어야 할 시간이다. 사랑은 결국 이길 것이다.


편집위원 석규 | ksk030306@naver.com


[2] [사설] 동성 동반자 건보 혜택… 사회적 혼란 어떻게 감당할 건가 (2024.07.19.). 국민일보.

[3] 한교총, 대법원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에 관한 논평 발표 [보도자료] (2024. 07. 19.). 한국교회총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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