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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동덕에 봄은 온다 :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인터뷰

[칼럼] 편집장 유진


지난해 11월, 동덕여자대학교(이하 동덕여대) 학측이 학생들과의 논의 없이 남녀공학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분노한 학생들의 폭로를 통해 동덕여대 이사장의 가족 경영으로 인한 배임과 횡령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은 대학 본부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저항하며 시위를 이어나갔으나, 대학 본부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를 포함해 시위 일체를 업무방해로 규정한 가처분을 신청할 뿐이었다.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은 소모적인 논쟁에 맞닥뜨렸다. 유언비어가 횡행해 점점 부풀려졌고, 이에 따른 무차별적인 혐오가 동덕여대를 향해 쏟아졌다.


한 달 후인 12월 3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발발하면서 동덕여대에 쏠린 관심은 일순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광장으로 나가 함께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고, 이에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역시 동덕여대에 찾아가 힘을 보태기도 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하나의 투쟁이 다른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혐오를 딛고 더 큰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해 냈다.


이에 《고대문화》는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목화》에게 동덕여대의 재학생이자, 대학언론인 교지로서의 현 사태에 대한 심경을 질문했다. 나아가 본 교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다시금 동덕여대 사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연대를 도모하고자 인터뷰를 싣기로 결의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얼마 후인 2월 10일, 법원이 동덕여대 학측의 ‘본관 점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입춘이 갓 지난 시점에서 지친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다시금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이 부르짖은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에 대답해 줄 수 있길 기원한다. 민주동덕에 봄은 온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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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동덕여대 학내 근조화환 시위 ©《목화》

동덕여대 학생들이 시위를 위해 건물 앞과 계단에 근조화환을 나열해두었다. 계단에 있는 근조화환 옆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바닥에는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공학 결사 반대" 문구가 락카로 써져 있다. 그림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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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진행된 학생들의 침묵 시위 ©《목화》

동덕여대 운동장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있다. 그림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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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본관 앞, 학생들이 항의의 뜻으로 학교 점퍼(이하 과잠)을 반납하는 ‘과잠 시위’ ©《목화》

동덕여대 본관 앞에 항의의 뜻으로 학생들이 펼쳐놓은 각양각색의 과잠들이 놓여 있다. 사진 중앙에는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림 설명 끝.




1. 동덕여대의 학내 구성원으로서, 학교 측의 공학 전환 시도 사태가 처음 발발했을 때 어떤 심경이셨나요?

에브리타임에서 학생들의 증언으로 시작된 고발이 이후에 총학에서 학측에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라, 처음에는 실체화된 사건으로 문제 인식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했던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학측의 비민주적 불통 행정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고발이 자주 이루어졌었기에 이번 사건이 이전 사건들과는 다른 규모의 사건임을 인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강한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불통 행정을 겪어왔기에, 아마 교내에서 학교 본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학생 신분의 한계를 타 대학교 학생들보다 훨씬 강하게 느끼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학내 구성원들도 이런 분노와 체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 에브리타임에서 학생들의 증언으로 고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내용과 대략적인 전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대다수의 게시글은 현재 삭제되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게시글이 게시될 때부터 ‘바로 삭제’나 ‘1분 후 펑’과 같이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거나 특정이 될 우려가 있어 잠시 올리고 삭제하겠다고 밝힌 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만 그 증언들이 구체적이고, 동일한 발언을 들었다고 말한 게시자가 2명 이상 나타나는 등 신빙성이 있었고, 이에 총학에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결과 그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에브리타임 게시글을 찾아보면 고발 아카이빙 자료가 있을 수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차례 유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온라인상에서 시도했었기 때문에 다시 자료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초기, 11월 6일 오후-11월 7일 오전 경(불확실)부터 강의 중에 교수님이 “몇 년 뒤 학교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거나, 교직원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학생들이 사적 대화에서 “남녀공학 전환이 추진될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이를 에브리타임 게시글로 게시하였습니다. 글들이 게시되자, 다른 인원들이 본인 또한 들은 바가 있다며 동조하는 게시글을 올렸고, 다양한 상황들의 증언을 올렸습니다.


위 내용은 당연히 확실히 검증이 완료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맹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게시글들이 다량 삭제되었고 검색으로 찾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어 기억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위 내용과 유사하게 증언과 고발들이 에브리타임 게시글로 여럿 작성되었으며, 그 공통점들은 ‘학교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들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학생들이 총학생회에 제보하여 사실 검증을 하고자 하였고, 11월 7일 19시 24분경 총학생회의 사실 확인 입장문이 게시되며 실제로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안의 전개가 다급하게 이루어진 경향이 있으나, 대략 이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3.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지로서 어떠한 글을 담아내고, 또 활동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사건 발생 당시 이미 원고를 마감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54집 교지에 글을 추가로 싣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대신 포토에세이에 학내 시위를 주제로 대자보, 과잠 시위, 화환 시위, 집회 사진 등을 사진으로 남겨,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학생들의 투쟁과 연대를 교지에 담았습니다.


또한 사태 초기에 교내 및 타학교의 언론 기구로부터 연대 성명을 받아 성명문을 게시하고 교지 이름으로 대자보를 부착했으며, 교내 집회에 개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향후 발간할 교지에도 투쟁의 당사자로서, 왜곡 없는 시선으로 학내 투쟁을 기록하고 지적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현 상황에 대해 학내 언론 기구로서 비민주적 본부에 대한 저항 행위에 끝없이 동참할 것입니다.


4.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교지의 활동 방향성이 바뀌거나 영향을 받은 점이 있으실까요?

우선 ‘목화’는 여성 교육 기관의 언론 기구로서 여성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화는 목화로서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다만, 이번 사태와 더불어 전반적인 활동을 되짚어 보았을 때 저희의 행동이 소극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저희 스스로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지 운영에 필요한 활동비라든가, 발간 과정에서의 검열이 이루어진 것처럼 발간의 주도권이 학측에 있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모르겠으나, 올해 발간될 55집에서는 검열에 굴하지 않고 더욱 과감하게 관련 내용을 적어내야겠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5.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만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인데, 지금 이 시점에 학내 구성원으로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꾸준한 연대와 관심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앞으로의 이루어지는 집회에 참여해 주시길 바라고, 온라인에서는 학내 사건과 관련된 보도, 그리고 인스타그램과 X(구 트위터)의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 계정[1]에 올라오는 소식 등에 귀 기울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동덕여대 학생 탄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연대〉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동덕여대에 연대하실 수 있으며, 한명 한명의 참여가 소중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개인적 공간에서도, 연대의 목소리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6. 동덕여대 재학생 측에서도 지속적으로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대중이 있는 광장으로 나올 마음과 용기를 어떻게 낼 수 있으셨나요?

‘동덕여대생’이라는 정체성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윤석열 탄핵안 의결 1차 시도 당시 열린 국회 앞 집회에서,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여성 의제를 거론한 발언자를 향했던 비난과 야유의 목소리를 잊기 어렵다고 말한 위원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정체성을 밝혔을 때 낙인찍히고, 비난당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데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와 약자를 혐오하는 이들이 옹립한 권력자를 탄핵하려 모인 민중들의 장에서도 혐오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여성혐오관이 동덕여대를 가장 거세게 비난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은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동덕여대에 연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빗발치고,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자리에 평등이 나서는 광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처음 민주동덕 깃발을 들고 탄핵 집회에 나서기 전까지는 많은 우려와 걱정, 회의 속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으나, 막상 직접 나가서 경험했던 것은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였습니다. 이러한 연대를 기반으로 우리는 ‘우리’로서 안심할 수 있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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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시위 목적 및 의의에 대하여〉로 연결되는 QR코드 ©NAVER



7. 학내 투쟁 초기에 소위 ‘정치권’이나 ‘운동권’과 엮이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흐름인지, 변화했다면 어떤 과정으로 변화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지난 1월 29일 X에 업로드된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ddw_s_union)’의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시위 목적 및 의의에 대하여〉라는 입장문을 읽어보시고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위 입장문이 현재 재학생 전반의 심정을 대변하고, 투쟁에 관한 전반적 태도가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타당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비나 호오를 떠나 그간 이루어진 선택들은 학생들이 내린 당시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알아주십시오.


여전히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전보다는 더 수용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비민주적 학생 탄압을 파훼하고 독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남녀공학 전환에 저항하는 것 이외의 의제를 기피합니다. 그 외의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모든 행위를 자·타의적으로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지난 학생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폭력들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본교 학생 외에, 동일 내지 유사한 문제 사안을 공유하는 타 여대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직접적 연대 활동마저 정중히 거절했던 바 있습니다. 당시 사유로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주체가 되지 않고, 그 주체성이 흐려지거나 전이되는 것에 우려가 있었으며, 또 학교 본부의 ‘외부인 출입 금지’ 방책을 위반할 소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일례로, 여성의당에서 또한 사건 초기부터 정문 앞에 연대 현수막을 게시했으나 요청하여 철거한 바 있습니다. 학교 본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빌미나 여지를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방어적 자세였습니다.


당연히 학내에도 다양한 사상을 가지고 다양한 의제에 투신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다만 그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어 온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행보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이와 별개로 앞서 언급한 입장문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아직까지도 의제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학생들을 불링하는 인원이 존재합니다. 단일 의제와 학생들의 순수성을 외칠 수밖에 없는 것과 그 한계는 학생들도 체감하고 있는 바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양한 연대체들의 연대를 기쁘게 수용하고 있으며, 사안을 국회 교육위 안건으로 상정하려는 노력이 커짐에 따라 비록 기자회견은 무산되었으나 민주당과도 접촉하고 여성의당의 현수막 또한 제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2월 9일에 진행되는 시위에서는 타 단체의 연대 공연도 함께 진행하는 것을 미루어보아 전반적인 태도는 초기와 달리 더 포용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 교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고, 아직도 그런 ‘엮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에 얽매여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배척적인 태도를 가진 인원이 과대표되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정규 학기가 끝나고, 비상계엄 이후로 학생들이 타의로 해산하게 되며 학교라는 공간적 구심점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의 탄압이 학생의 인권마저 유린하며 극심해지고 있는 실정인데다가, 사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과 커뮤니티 및 특정 정치인들에 의해 매도되며 본교 학생들만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사안으로 확대된 영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복합적 상황 속에서 외부 연대체에 대해 이전보다는 더 수용적인 방향으로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인지됩니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현재 우려하는 지점은 학교의 독선적 탄압이 아닌, 연대 없는 무관심입니다.


8. 타 여대에서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윤석열 탄핵 집회에 가셨던 분들이 동덕여대 집회에 가기도 하고, 전장연에서 동덕여대에 연대하기도 하는 등 일련의 연대들이 이어졌는데, 이에 대한 감상이 궁금합니다.

그간 학생들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학생 개인으로서도, 그리고 학생이라는 단체로서도 동떨어진 외딴섬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위 초반부터 타 여대를 비롯하여, 많은 단체에서 손을 뻗어주셨습니다. 특히 같은 20대 여성들로부터의 연대에서는 비슷한 처지와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타 여대 또한 학내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저항할 때, 그 저항의 기폭제 중 하나로, 동덕여대가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입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의 손을 잡아주신 많은 분께서 서로의 고통과 슬픔, 의지를 마주 보고 연대해 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장연도, 전농도 그렇습니다. 전장연과 전농의 시위와 투쟁은 동덕여대를 비하하는 같은 방식으로 격하되고 조롱당해 왔습니다. 전농에서 동덕여대에 “강자의 억압에 맞서는 약자의 무력은 폭력이 아니라”며 언급해 주신 바도 뜻깊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학생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형태로, 다리를 놓고 기꺼이 다가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9. 현재 총학의 임기가 끝났는데, 구심점으로서 활동을 주도하는 단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활동이 진행되고/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앞서 언급한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이 주축이 되어 시위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또, 비대위가 총학의 뒤를 이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시위를 주도하는 재학생 연합 외에도 학생들 개개인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카드뉴스를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팀(STOP)[2]이나, 졸업생 연합 등 단체가 아니더라도 개인으로서 끊임없이 활동을 전개하는 인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10. 현재 기술된 질문 이외에도, 고대문화의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추진으로 인해 작년 동덕여대생들은 살로 다가오는 위협과 원색적인 혐오, 비난, 조롱, 그리고 날것의 충격과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동덕여대생만이 경험했을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편향된 언론 몰이와 극단적 여성혐오 집단 신남성연대의 위협, 학생들이 폭력 속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지만 방임했을 뿐인 교육부, 그리고 학생들의 안위를 지켜주지 못했던 경찰까지. 사태가 진행되며 나타났던 상황들은, 비단 동덕여대생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 그리고 소수자라면 공유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분위기이자 깊이 뿌리박힌 혐오의 잔존이었습니다.


혹자는 이미 여성 인권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상황에서, 여성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에 불만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는 누군가가 여성지 진열대에 못을 뿌려 두기도 했고, 작년 딥페이크 사태가 수면으로 떠올랐을 때에는 전국의 공학이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의 그림자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대에서만큼은 이름 석 자를 당당히 내걸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 사태 피해 학교 목록에 우리 학교의 이름만은 없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안도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동덕여대의 투쟁을 통해, 다시 한번 이 사회의 혐오를 인식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한 학내 민주주의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편집장 유진 | gamjabat_@korea.ac.kr



[1] 인스타그램과 X 모두 @ddw_s_union로 아이디가 동일하다.

[2] 인스타그램 @stopdwu에서 카드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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