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문생각] 은희, 수민, 하영, 민주, 혜인, 소은, 서연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당장 노동청에 신고해야 할 것 같은 이 문장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웹소설 제목이다. (모든 웹소설이 그렇듯)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김솔음이 괴담이 존재하는 세계로 떨어진 뒤에도 직장에 출근하는 내용이다.
작중에서 김솔음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스포일러 방지) 인간의 몸을 잃어버린다. 시간 감각도, 감정을 느끼는 법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방법조차 그에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린다.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내가 알던 ‘그 배’인가? 외형도, 인식 체계도, 감정도 잃어버린 저 존재를 우리는 ‘김솔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본인조차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독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너는 내가 알던 김솔음이 맞다’고 답한다. 겉모습이 달라지고,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조차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만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변해버린 99가지보다 변하지 않는 1가지가 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사물도, 미지의 존재도 아닌, 인간 ‘김솔음’에게 확신을 담아 말한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라고.
은희 | a0520choi@naver.com
나는 40부작짜리 고장극 <경경일상> (卿卿日常, 2022)에 등장하는 여자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씹덕같은 세계관 설명은 다 생략하고 넘어간다. 내가 영업할.. 두 여자는 6소주의 정실 부인(원영)과 측실 부인(이미)이다. 처첩 레즈물임. 동시에 그들은 신천이라는 국가의 소주와 결혼하기 위하여 선발된 여인이기도 하다. 남존여비 사상을 귀하게 여기는 신천에서 원영은 6소주를 제대로 된 관직에 올려 이혼한 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관직을 맡길 원하고, 이미는 6소주의 정실 부인이 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완벽주의자인 원영은 신천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모두 잘 해내려 한다. 하루는 원영이 연줄이 아주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연을 날리는데, 이미가 옆에서 지켜보다 연줄을 가위로 잘라버리곤 말한다. “연이 말을 안 들으면 그냥 날려 보내요. 가끔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또 원영은 이미의 스승이 되어 많은 것이 서툰 이미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연꽃 같은 존재가 된다. 그들은 “언젠가 내가 낡은 법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세상의 편견에 맞설 수 있게 되면 더 많은 여인을 보호해 주고 싶”다고 말하고, “당신과 나 그리고 세상 모든 여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둘은 차별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여성들의 원(願)에 응답한다. 여성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여성도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넘어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여기까지 심호흡 백 번 하고 썼으니 이젠 정신 놓고 마음껏 떠들어보겠다. 경경일상은 아주 유명한 처첩 레즈물이고 츤데레광공X햇살아방수다. 딱딱하고 엄격한 원영 군주가 이미 애교에 살살 녹아서 점점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경경일상 포타가 왜 없는지 의문일 지경이다. 또 경경일상에는 여자들만 1n명이 나오는데 모두가 이미의 애교에 녹아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역하렘물 같기도 하다. 아니, 하렘물인가? 몰라 다 여자인데 어떡해. 나도 낄 거임. 우리 무리얌~☆ 너도 낄래?
수민 | jellyfishtokill@gmail.com
성질머리 있는 파란색 외계생명체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티치를 처음 봤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스티치를 꼬옥 안는 상상을 하곤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따라하며 우쿨렐레 연주를 하고, 여섯 개의 다리를 자유자재로 숨길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잇몸이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 스티치.
스티치는 나의 가장 첫 번째 친구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어딘가에 놀러가는 날에도, 책을 읽을 때도. 그 모든 순간 내 옆에는 언제나 스티치가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놀고 책을 읽었다(물론 스티치는 책 읽을 때만큼은 딴짓 했을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현실 세계의 친구를 사귈 때까지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 이후에는 스티치가 바퀴벌레라는 허위사실에 맞서 스티치가 어엿한 은하 연방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1. 누군가 스티치는 바퀴벌레 아니냐고 물으면 억울하다고 화내기
2. 스티치는 바퀴벌레가 아니라 ‘외계 생명체’라고 큰소리치기
물론, 바퀴벌레면 뭐 어때? 나는 스티치가 바퀴벌레든 러브버그든 뭐든 아무 상관 없다. 스티치는 은하연방에서 태어난 외계 실험체 626호이자, 나의 가장 첫 번째 친구니까!
하영 | choibook04@naver.com
처음 <진격의 거인 1기>(2013)을 제대로 접하게 된 건 우리 팀 투수가 주먹으로 자기 심장을 치는 세레모니를 하는 장면을 봤을 때였다. 그 세레모니가 웃겼는데 왜 웃기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게 된 진격거는 나에게 생각 이상으로 좋은 느낌을 줬다. 쉴 틈 없이 절망, 더 절망, 최종 절망, 진짜 최최종 절망이 나오고 인류에 희망 따위는 없다고 보여주는 이 세계관이 너무 통쾌했다.
거인의 존재는 함께 멸망하자는 ‘다죽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들에게 ‘다죽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조사병단은 이렇듯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거인에 맞선다. 방벽 밖을 조사하는 이들은 불가피한 거인과의 조우에서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이때 전투에서 죽지 않은 단원들은 죽은 동료를 버리고 나아감으로써 인간성을 버리는 대가를 치른다. 작품을 보다 보면 거인과 싸우고 희생을 감수하고 자기 심장을 바치는 이유가 계속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 말이 볼수록 너무 질린다. 하지만 이 질리도록 절망스러운 작품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카사는 어린 시절 자신을 살린 에렌과 함께하기 위해 조사병단이 될 것을 선택한다. 최강의 전투력을 보여주는 그녀는 사랑이란 결코 약함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잠시 치워두자는 서사에 지친 내게 네가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싸우라는 메세지가 더 와닿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싸워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건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 세계는 잔혹하니까..
민주 | mjmjlee05@naver.com
카우보이가 너무 좋다. 그들은 퀴어하다(위의 표를 참고하자). 그런 의미에서, 〈윈체스터 ‘73〉 (1950)은 완벽한 카우보이 영화다.
〈윈체스터 ‘73〉은 한 카우보이가 사부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의 원수-남성은 언제나 그보다 한 발짝 앞에 있어, 그의 심장은 타들어 가고 욕망은 무기한 연기된다. 추격과 좌절, 목마름을 견디며 그는 몇 년간 원수-남성에 닿을 날만을 고대하며, 광활하고 자유로운 서부의 평원을 헤맨다. 그래서 “이 모든 서사와 수난은 퀴어적 사랑의 메타포일 수 밖에!”라는 확신을 가지고 영화를 보다 보면… 약 1시간쯤 지나서 카우보이와 원수가 형제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의 사부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기어이 영화는 복수에 성공한 카우보이가 아름다운 백인 여성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퀴어적 욕망 투영에 실패했다는 것까지가 이 영화의 퀴어함 아닐까?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 서울을 배회하는 퀴어들, 우리도 사실 카우보yee haw..
혜인 | amekimhyein@gmail.com
동그랗고 세모난 보석 캐릭터들이 지구와 우주를 구하는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2013)에 푹 빠졌습니다…. 아동 애니로 변장한 대서사시는 왜 이렇게 좋을까요.
인간보다 훨씬 발달한 ‘보석’이라는 외계 종족이 있는 세계. 인간 아버지와 보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석(半人半石) 주인공 스티븐은 지구의 작은 마을에서 세 명의 보석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보석들은 스티븐의 엄마와 함께 지구를 ‘제국’으로부터 해방했고, 그녀가 죽은 뒤 스티븐을 함께 키우고 있는 거죠.
스티븐의 엄마를 포함해 모든 보석들은 제국 출신입니다. 제국은 가장 완벽한 보석인 다이아몬드를 위한다는 목적하에 보석들이 정해진 쓰임대로만 살아가는 행성이에요. 보석마다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고, 실수로 다른 계열의 보석과 퓨전이라도 하게 되면 ―둘 이상의 보석이 친밀함을 느낄 때 이루어지는 결합으로, 퓨전 시 기존의 보석들은 완전히 새로운 보석으로 재탄생합니다― 곧장 별종 취급을 받습니다.
반인반석이라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 스티븐은 새로 지구에 찾아오는 보석들에게 제국의 규칙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왜 다른 보석끼리는 퓨전할 수 없는지, 누군가 하는 명령을 평생 따라야 하는지 말이에요. 제국에서만 살아온 보석들은 처음엔 뭘 몰라서 하는 말이라 치부하지만,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며 깨닫습니다. 남이 강요한 규칙은 먼 우주에 있고, 자유롭게 퓨전할 수 있는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는걸요.
그렇게 스티븐과 만나는 보석들은 각자만의 이유를 찾아 지구를 집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은 지구의 사랑을 알려주고, 보석들에게 사랑을 배우며 천천히 성장해 나갑니다. 태어나고, 성장했다고 해서 고향 행성이 반드시 우리의 집일 필요는 없다고, 사랑을 배워나갈 행성은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스티븐 유니버스〉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은|soeun04299@naver.com
인간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일생을 쓰는지도 모른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캐릭캐릭체인지〉(2006)의 주인공 히나모리 아무 역시 그랬다.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 모습을 힘껏 사랑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마음의 알은 자신의 꿈과 미래를 상상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알에서 태어난 캐릭터는 자신의 꿈꾸는 모습을 닮았다. 마음의 알은 외부의 공격에는 거뜬하지만, 알의 주인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믿지 않을 때, X자가 붙거나 부서지고 만다. 중요한 건 가능성이다.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아무는 그런 마음으로 엉망진창인 자신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 안의 모든 가능성을 믿을 것이라 결심하는 가운데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이 피어난다. 그 사랑은 넘실넘실 흘러 다른 친구들에게도 닿는다.
소녀만화의 가장 좋은 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캐릭터의 마음이 타인에게도 확장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사랑의 확장. 그래서 가끔 내가 나를 의심하는 날이 오면 〈캐릭캐릭체인지〉를 본다. 아무 편이나 틀어 놓고 감상한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알에 X자가 붙으면 아무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 둬!”라고 외치고는 알을 정화해준다. 아이들은 마음의 알을 돌려받는다. 그렇게 네가티브 하트에 포지티브 하트를 더하는 아무가 부럽다가도, 아무의 손으로 정화된 알을 품게 된 아이들이 부럽다. 그 아이들은 이제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다. 꽤 새로운 마음으로.
이제는 초등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닌 시커먼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겐 많은 가능성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만나보지도 못한 수호캐릭터여, 아름다운 알이여, 하지만 여전히 생동할 나를 믿는다. 아무가 자신을 믿고 친구들을 믿어주었을 때처럼.
서연 | waveandwav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