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호 (상)

[꼬문생각] 영채, 소은, 이프, 영, 은희, 해솔

시골쥐 대학생의 상경생활 안내서


안녕 서울… 내게 방한칸만 내주엇고 단한번도 집인적은 없던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여… 그래도 그 다채로움과 익명성만큼은 정말로 그리울것이야… (내일모레도 가긴 하는데)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 줄여서 차씹도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약 18년을 지방에서 살았으며 올해로 서울에 상경한 지 3년째가 되는 나는 이 게시물의 모든 말들에 정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이건 철저하게 서울로 올라온 시골쥐 관점에서 쓴 나의 상경 생활 일기이자 안내서이다.


1. 택시는 안 돼!


서울로 상경한 이후 가장 당혹스러웠던 하루를 꼽는다면,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며, 돈이 들더라도 시간을 아끼려면 꼭 택시를 타야 한다.’라는 나의 상식이 무너진 날이다. 서울에서 택시의 정의는 ‘돈과 시간의 등가교환, 지각할 것 같을 때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 아닌, ‘편하게 여유 부리고 싶은 날의 소비’였다. 나는 실제로 본가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탔으나 결국 열차를 놓치고 두 시간을 날렸다…

지방에는 지하철이 없으며, 시내버스의 평균 배차간격은 25분이다. 버스의 현황 안내 전광판은 따로 없다. 나는 중학생 시절 버스 시간표를 줄줄 외우고 다녔으며, 빡빡한 학원 스케줄 속에서 버스가 한 대씩 올 때마다 수십 개의 플랜 B를 생각하며 수십억 개의 가능 세계를 만들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도착하는 지하철과는 달리 버스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시각에 정류장에 도착한다. 카카오맵으로 1시간 걸리는 거리가 단 30분 만에 주파될 때도 있다. 이건 카카오맵의 오류라기보다, 사람이 없어 모든 정거장을 패스하고 나만의 택시가 되어주는 시골 버스의 특이점이다.

이런 대중교통을 가진 나의 고향에서 ‘자가용은 필수, 급할 때는 택시’라는 공식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아마 나와 같이 서울로 상경하게 된 모든 사람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빠른 것은 지하철이다. 명심하도록 하자. 만약 지하철을 놓쳤다면, 그 자리에서 카카오택시를 켜 택시를 부르는 것보다 메신저를 켜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일 것이다.


2. 내 말투가 이상하다고?


나의 출신을 말하자면, 나는 경상북도에서 내 대부분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 맞다. 피곤하면 ‘졸리다’ 대신 ‘잠 온다’를 쓰며, 고등학교 시절 현우진 강사의 2의 e승 발음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판서만 보고 필기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오빠야’를 애교의 의미로 사용한 적 없으며, 서울 토박이 남성이 사근사근 서울말 쓰는 건 나에게 심쿵 포인트가 아니라 오글 포인트다.

처음 보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내 말투의 근원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것도 지친다. 냅다 외치고 싶다. 내 말투가 이상하다고?!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당연히 내 말투가 다르다고 고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최근에 고객 응대 알바를 하다가 고객님께 화내지 말라고 매니저님께 주의를 들었을 땐 정말 서러웠다…. 맞다. 우리는 조금 더 품을 들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 서울의 압도적인 인구와 인프라 속에서는 소수의 특이점이 된다. 그러나 기죽지 말 것! 우리에게 서울이 또 다른 세계인 것처럼 그들에게 우리도 새로운 세계일 것이다.


3. 나의 집은 어디인가


다시 돌아와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게시물의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내게 방한칸만 내주엇고 단한번도 집인적은 없던..’ 이 문장은 몇백 년 후에 고전시가로 수능특강에 나와도 될 만큼 음률과 감동이 느껴지는 명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학교 근처의 방 한 칸에 거주하며 단 한 번도 서울의 내 자취방을 집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3년, 대학생 시절 2년 도합 5년을 기숙사생으로 지냈다. 대학교 기숙사는 고등학교 기숙사와 많이 달랐다. 우선 나를 받아줄 만큼 모집 정원이 많지 않았다. 나의 대학교는 거리로는 수도권/비수도권으로 1순위/2순위를 나눌 뿐 나머지는 성적순으로 기숙사를 선발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거주지를 따라 우리나라 최남단 제주도가 주소지로 등록이 되어 있었는데, 지하철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인천 거주 동기와 동일 순위를 받았다. 결국 나는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지 못했고 한 학기 동안 한 시간 거리의 학사에 살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숙사에 들어가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단과대학 전체에서 단 3명 뽑는 낡은 기숙사를 선택하거나, 그보다 더 모집 정원이 많지만 4층을 엘리베이터 없이 다녀야 하고, 대학의 설립과 같이 지어져 다 낡아 벽에 금이 가 있는 기숙사의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학의 성비는 1:1에 가까워졌으나, 기숙사의 여학생 티오는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 애초에 여학생을 고려해 주기 이전에 학교는 대학가 부동산의 ‘우리 집 세줘야 하니 기숙사 절대 반대!!’에 무력했다. 복도에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식당에서는 라따뚜이가 요리해 주는 기숙사에서 나는 1년을 버티고 나왔다.

3학년,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된 시골쥐 대학생은 결국 ‘집’을 구하기로 결정한다. 나는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와 함께 방을 보러 다녔다. 부모님과 동행하는 게 디폴트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부모님이라는 보호막 없이 내가 2년 동안 살아야 할 집을 보러 다니는 건 생각보다 서러웠다. 하루 내내 같이 다녀준 은희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학교 가까이에 작은 방을 구해 살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가서 집밥을 먹고, 자취방이 감당하지 못하는 옷가지들을 두고 온다. 가끔 자취방에 친구들을 불러 맥주를 마시며 시원한 밤에는 창문을 열고 책을 읽는다. 내 집이 되어줄 순 없었지만 내 첫 자취방은 내게 안정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물론 매달같이 나가는 월세와 등가교환 하긴 했지만! (…)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 다채로움과 익명성만큼은 정말로 그리울것이야..’

서울의 단점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장점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 1일 뿐, A 아파트 203동 10층 사는 이번에 서울로 대학 갔다는 딸내미가 아니다. 아직도 상경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서울은 새로운 땅이자 성공의 땅일 것이고 서울은 결국 이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서울에 와보지 않았다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카더가든의 「명동 콜링」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평생 택시가 지하철보다 빠르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서울에 온 뒤, 내 말투가 화내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온전히 나 스스로가 내 삶을 영위하는 생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천만 명 서울 인구 중 1인일 뿐이며. 이 익명성에 기대어 조금 더 내 의지를 따라가도 된다고 마음먹게 됐다. 서울이 아니었으면 과연 가능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살면서도 이곳은 나에게 집이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에게는 돌아갈 장소가 있다. 그 사실은 내 마음을 온전하게 한다. 난 내가 이런 말투로,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살아갈 사람이라서 좋다. 시골쥐의 상경 생활은 생각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우리’라는 카테고리로 모일 때 개인은 더 강해진다. 모든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쥐들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외롭고 차갑게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안내서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러니까 모든 시골쥐들아! 우리 모두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가끔가다 지하철에서, 사람 많은 카페에서 익숙한 말투가 들리면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시골쥐구만~! 같이 파이팅 해요.’ 라는 응원을 한 번씩 건네 보자. 물론 마음속으로.


영채 | neurmreurm@naver.com



참고문헌


기타 온라인 자료

hm (2024.09.25.). 안녕 서울… [X 게시글]. Retrieved from https://x.com/d1cifk/status/1838929303993737517





그래 나 예민하다


프랑스에서 친한 교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너는 아주 예민하고, 그건 행운이라는 걸 알아야 해.”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예민’이라는 단어는 늘 부정적인 의미나 의도를 동반하기에 ―대충 연상해 봐도 “너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정도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당황스러운 표현이었다. 이어 따라붙는 이유라 함은, 예민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수용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유달리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는데, Highly Sensitive Person, 줄여서 HSP다. 한국어로는 초감각자나 초예민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고 하는 HSP는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기질적으로 예민하다. 나는 HSP들을 ‘일평생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원시 시대 생존 특화’ 사람들로 비유하곤 한다. 빛이나 소리, 냄새에 남들보다 민감하고,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된다. 영화의 잔인한 장면은 애써 피하고, 늘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도 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었어?”하는 생각이 든다면 도서관에서 HSP를 다룬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HSP라고 해서 모두가 비슷한 성격인 건 아니다. 사람마다 예민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HSP는 타인의 감정 때문에 지나친 피로를 느껴서 사람과 만나는 걸 아예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마음을 빨리 눈치채서 호감을 쉽게 따는 초외향인이 될 수도 있다. 태어날 때 성질은 비슷한데 발현 양상이 이토록 다르다니, 포켓몬스터 진화 같다…


나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서 내가 가졌던 ‘예민함’에 대해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친구들이 싸우면 당사자보다도 내가 더 오래 괴로워한다거나, 프랑스 공원에서 내게 자신의 부인이 되어달라고 한 늙은 백인 남자의 욕망을 일주일 넘게 곱씹던 게 모두 기질 때문이었다니! 여태껏 내 미숙함 문제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HSP 사이에서 꽤나 공유되는 특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예민함 때문에 마냥 괴롭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빨리 ‘쎄함’ 필터를 느낀다든지, 노력하지 않아도 감성적인 영화에 펑펑 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이런 예민함은 미술, 음악 등 창작의 영역으로 자주 발휘된다고들 하는데, 일단 내 경험만 두고 보면 놀랍게도 사실이다. 같이 졸업 전시를 하는 친구들이랑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그림 그리는 사람은 무조건 HSP거나 ADHD임”이었고 우리는 모두 그 두 경우나 둘 다에 해당했으니까. 내가 예민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고마웠다.


HSP가 자신을 더 이해하고 진정시키기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주로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는,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일상 반경을 조성하고, 나 자신에게 거리를 두며 게임 캐릭터처럼 여기라는 것이다. HSP들은 자주 순간적인 상황의 감정에 압도되곤 하는데 스스로와 일정 거리를 둠으로써 이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내 꿀팁은 주변 친구 중 가장 덤덤한 친구 한 명을 머릿속 한 켠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사소한 일로 감정이 과잉될 때마다 ‘어라 그런데 그 아이라면 여기서 이 정도까지 슬퍼했을까?’하고 가만히 생각한다. 그럼 그 친구가 주로 “엥… 아무 생각 없었는데…” 하는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지기에 금방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이제 교수님의 말처럼 예민함을 행운 정도로 생각한다. 너 때문에 어렸을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깨나 고생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음 내 인생 공허했다. 이 글을 읽는 HSP들도 그대들의 예민함을 더 알고 더 아낄 수 있길 바란다. 예민함과의 동거, 나쁘지 않다.


소은 | soeun04299@naver.com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책상과 의자가 있는 집이 가지고 싶었다. 지나가다가 아무렇게나 들여다볼 수 없게 문이 닫히는 방이 있는 집. 아무 때나 일어나서 씻어도 민폐가 아닌 집.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울 수 있는 집. 옷장이 있는 집. 내가/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집에 가고 싶었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그런 집이 없었고 또 없어서, 자꾸만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러다 “저주와 마법이 말에 염원을 담는다는 제조과정을 공유한다”[1]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데려간 학생회관 207호에는 바라던 모든 게 있었고 나는 거기를 멋대로 내 집 삼았다. 언젠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노란색 이불을 덮고 누워서 크게 울고 크게 웃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다. 이 소원은 가끔은 마법처럼 또 가끔은 저주처럼 이뤄져서, 3년쯤 되는 시간 동안 많이 울고 많이 웃어야 했고 농담처럼 혹은 대가처럼 끊임없이 울고 웃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내 집은 나를 이야기꾼으로 키웠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 멈추지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었으므로 가능한 가장 낮은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찮고 더러운 것들만 말 그릇에 골라 담았고 깨끗하고 세련된 이야기들에는 침을 뱉었다. 집을 나서면 내 옆을 지나가는 아무 귀에나 흘러 들어가도록 언제나 못된 놈들을 거꾸로 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크게 웃어댔다. 내 이야기가 단 한마디도 아름답지 않기를 바랐다.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 아름답지 않아도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내 집에 오는 사람들 모두를 사랑하려고 했다. 그 사람들은 자주 내 이야기에 등장하고 나는 그 사람들을 오래 끌어안는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내 집에 초대하고 싶고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 속에서 나만큼이나 많이 울거나 웃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집을 떠났다. 학생회관 207호는 이제 영영 없고 나는 거기에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나에게도 마땅히 시작해야 할 새로운 이야기가 있음이다. 떠나는 날 울지 않았던 것은 내가 거치고 나를 거친 사람들 모두가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내가 이야기꾼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 집이 아닌 어디에서라도 우리는 만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다음 이야기가 하고 싶다.


이프 | soihere18@gmail.com


[1] 이다미 (2023). 자르기 또는 말하기. 고대문화, 151호, 꼬문생각.



참고문헌


단행본

마틴 맥도나 (2024). 필로우맨. 서민아 (번역). 을유문화사.

논문 및 저널

이다미 (2023). 자르기 또는 말하기. 고대문화, 151.5호.

음악

이랑 (2016). 신의 놀이 [노래]. 신의 놀이 [앨범]. 포크라노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멜랑콜리아 (2011)


내가 자는 동안 세상이 망하길 바라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 지난한 시기를 지나는 중이지만. 내일 당장까진 아니더라도, 한 일주일 뒤에는 정말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자꾸만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을 억지로 부여잡아 일주일을 버는 데에도 슬슬 지쳐갈 무렵, 이 영화를 만났다.


웃기는 영화다. 냅다 지구부터 멸망시키고 시작한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 뒤로 곧 종말을 맞을 풍경이 느리게 흐른다. 고조된 음향이 영화관을 가득 메워 슬슬 귀가 아파질 때쯤, 거대한 푸른 행성이 지구를 향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한다. 그리고, 충돌한다. 오프닝 시퀀스의 황홀한 충격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잠 못 드는 밤마다 침대 위 천장에 습관처럼 그려온, 모든 것들의 장례식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나에게 종말과 해방은 때로 동의어로 읽혀서 둘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런 사적인 이야기를 차치하고도 시각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시작이자 끝이다.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부 저스틴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일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전제처럼 받아들여지는 이런 식의 가정은, '그래야 마땅하다'는 강요와도 등치되는 탓에 수많은 반례들에게 폭력적이다. 행복이 정상성이므로 불행한 저스틴은 자연히 비정상이 된다. 너를 위해 마련한 골프장이 딸린 수억 원짜리 대저택이야. 너를 위해 모두가 여기 모였고, 심지어 네가 늦는대서 두 시간씩 기다리기까지 했어. 너를 위한 날이야. 그런데 너는 왜 행복하지 않아? 클레어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목소리가 겹쳐 회오리치듯 저스틴을 강타한다. 저스틴의 우울은 파티로부터 완벽히 쫓겨난다.


내면의 일부를 잃었는데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나. 쫓겨난 반 쪽짜리 저스틴은 이내 온갖 기행을 저질러 파티 밖에서도 파티를 망친다. 케이크 커팅식 직전에 뛰쳐나가서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반신욕을 하는 건 약과다. 오밤중에 혼자 골프장 투어를 하질 않나, 불과 몇 분 전에 자기를 승진시켜 준 직장 상사에게 쌍욕을 퍼붓고 회사를 관두겠다 선언하더니, 그 회사 신입사원과 대놓고 관계를 한다. 어쨌든 효과는 굉장했다. 파티는 파토났고 하객들은 전부 떠났으며 그나마 저스틴 눈치를 보던 남편까지도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사실상 파혼 확정이다. 한 마디로 X 됐다.


나는 하도 상황에 이입해서, 넌 어떻게 된 애가 겨우 그것 하나 못 참느냐고 저스틴에게 속으로 백 번도 더 쏘아붙였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아. 내가 내게도 이러는구나. 저스틴의 우울은 적어도 그 자신에겐 '겨우'가 아니었다. 잠시도 제쳐둘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라는 일종의 아우성에 가까웠다. 나는 어떤 활자도 읽히지 않아 과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나를 의지박약에 구제 불능이라며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내 무기력에 가세했다. 발아래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의 끝은 항상 자기 파괴였다. 어차피 내일도 멀쩡할 세상 내가 등지면 그만인데, 음? 세상이 대신 무너져 준단다. 멜랑콜리아(우울)가 멜랑콜리아(거대한 푸른 행성)를 환영할 수밖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이해 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미트로프에서 담뱃재 맛이 난다는 저스틴의 말에 비록 나는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어도, 미트로프가 어떤 음식인지 모르니 인지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멜랑콜리아라는 공평한 공포 앞에서 저스틴의 멜랑콜리아도 드디어 이해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들 제 두려움도 어찌할 줄 몰라 절절매기 바쁘다. 그러니까 타인으로부터 순도 백 퍼센트의 이해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거다, 지구 최후의 날조차도. 멜랑콜리아를 온전히 이해받길 기대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참 스케일 크게도 한다 싶다.


지극히 허무주의적인 내용임에도 한껏 위로받은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얼까 곱씹어 봤다. 저스틴의 손 때문인 것 같다. 불안에 떠는 클레어를 향해 기꺼이 뻗은, 그리고 종말의 순간에 그와 다정히 맞잡은 손. 너와 나의 고통은 다르므로 나는 너에게 평생 이해받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미 무너져 본 적이 있는 내 세계는 너를 끌어안을 수 있다. 푸른 멜랑콜리아 행성은 지구를 흡수하듯 환한 빛을 내며 저스틴과 클레어 위에 포개어진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멜랑콜리아가 찾아왔을 때 서로의 손을 꽉 붙잡을 수만 있다면. 부디 우리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영 | pshlhi@naver.com



참고문헌


Lars von Trier(라스 폰 트리에) (2011). Melancholia(멜랑콜리아). Zentropa Entertainments.




나의 폐급시절 회상기


한화이글스가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정말 다행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 전반기 1위가 노태우 정권 때였다고 하니 나 말고도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 대부분이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광경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순위표 제일 높은 곳에 올라서도 마음이 계속 불편한 건… 왜일까? 다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10연승을 달려도,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99.9%를 찍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러다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언제 다시 수직 낙하해도 실망하지 않도록, 남들이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어도 상처받지 않도록. 매주 새로운 팀을 만날 때마다 “요즘 이 팀 기세가 무서우니 스윕만 안 당해도 성공한 거다.”라며 듀가나디 짤처럼 부들부들 떠는 건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그림 1].png [그림 1] 바보 같은 나의 모습 ©짤쓸사람(@bdemgmr)


그리고 나의 이 한심한 패배 의식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과장 조금 보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화이글스의 리빌딩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588689967. 차라리 비밀번호였으면 좋았을 이 숫자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의 한화이글스의 순위를 정리한 거다. 2018년 잠깐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다음 해에 다시 9위를 기록. 2020년에는 정규시즌 10위를 기록한다. (참고로 현재 KBO에는 10개 구단이 있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팀들이 선언하는 것이 있다. 바로 ‘리빌딩’이다.


‘리빌딩’은 팀을 물갈이하여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연말 팀 내 베테랑 선수들과 코치진들을 대거 방출한 한화이글스는 2021년 시즌을 앞두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카를로스 수베로)을 영입하며 본격적인 리빌딩 작업에 들어갔다. 수베로 감독은 ‘실패할 자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베로 감독과 함께한 2년 동안… 정말 제대로 실패했다. 2년 모두 정규시즌 10위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2022년에는 남들이 포스트시즌을 가네 마네 할 동안, 한화이글스는 100패 달성을 두고 자신과의 싸움이나 하고 자빠져 있었다(다행히 46승 2무 96패로 100패는 면했다).


2024년 한화이글스는 류현진 선수의 복귀와 안치홍 선수의 FA 영입을 앞세워 리빌딩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달라졌다고 믿었다. 이번에는 정말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달라진 듯했다. 개막 10경기에서 8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1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한화이글스는 자기들이 연어라도 된 듯 작년의 성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4월에만 6승 17패를 기록하며 수직 낙하했고 끝내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연히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다. 연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데 왜 이 팀은 순위를 거슬러 내려가는 것인지. 결국 나는 또 속은 것이다!


그래도 올해는 정말 다른 듯하다. 50경기 정도만 남은 지금까지도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시리즈 진출은 몰라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거의 확정이니까. 그럼에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던 건 이 성적이 과연 리빌딩의 성과인지, 아니면 외인 뽑기와 자본 투자의 결과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강해진 게 맞을까? 그 지난했던 실패의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성장의 밑거름으로 남았나?


이 모든 의심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이 점차 ‘위닝 멘탈리티’를 찾아가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내가 애꿎은 패배 의식에 허덕일 동안, 선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인터뷰에서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가 않다’고 말한다(실제로 현재 역전승 1위 팀이다). ‘금방이라도 다시 역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팀이 강해졌음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런 선수들을 믿어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미… 미… 미친놈아, 니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끝.


추신. 전국에 계신 야구팬 여러분. 그래도 우리 나댈 수 있을 때 한없이 나대면서 삽시다.


진짜진짜 끝.


은희 | a0520choi@naver.com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고유라 (2023.05.12.). 단 한 문장에 쫓겨난 수베로 감독, 한화 리빌딩 얼굴마담만 필요했나. SPOTV NEWS. Retrieved from https://www.spotv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5923

이상학 (2025.04.04.). ‘1위→10위’ 이렇게 중간이 없는 팀을 봤나, 1년 전과 정반대… 예측불허 한화, 개막 10G만으로 알 수 없다. OSEN. Retrieved from https://www.osen.co.kr/article/G1112538035

KBO, https://www.koreabaseball.com/Default.aspx, 접속일 2025.07.30.




아침은 밉고 밤은 차가워서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리운 순간들이 있다. 온몸이 그 구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 그럴 때마다 (지금은 끊었지만) 담배를 줄줄 피우거나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어느 날부터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구멍이 내 몸과 마음을 집어삼켜 잠들 수도 없을 때, 알코올이 구멍을 몰아내길 원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마시고 나면 잠들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분’에 불과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아침이 찾아왔고, 잠들 수 없는 밤은 아침을 따라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렇게 나는 밤을 끌고 다니는 아침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보다도 아침을 더 미워한 까닭은, 어쩐지 그 밤에 동질감을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아침이 떠나버린 그 자리에 남아버린 것만 같아서. 그러니까 밤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양이, 아침이 떠나버린 것 같아서. 밤은 단지 공백의 시간일 뿐인 것 같아서. 그걸 알아차린 날부터 ‘잠들기 위해’ 술 마시는 일을 멈추었다. 도수 높은 소주를 빨리 부어 마셔버리고 취기에 기대어 잠들지 않기로 했다. 술을 아예 끊겠다는 다짐은 아니었다. 단지 맛있는 술을 찾기 시작했을 뿐이다.


와인은 너무 비싸고, 칵테일은 쉽게 마시기 어려워서 패스. 소주는 그냥 이제 마시기 싫어.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남은 후보는 맥주와 막걸리 정도. 맥주는 탄산 때문에 배가 금방 불렀지만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막걸리는 맥주만큼 배부르진 않지만 (역시 내 입맛에) 너무 달아서 조금만 마셔도 물렸다. 그렇게 나는 맥주를 내 반려로 정했다. 맛있는 술을 찾기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고급 수제 맥주를 마신다거나(가끔 그러고 싶긴 하다), 모든 종류를 사서 한입씩 맛보는 사치를 부린 것은 아니었다. 집 근처 24시간 편의점 가판대에서 4캔에 만 원 조합으로 대충 눈길이 가는 맥주를 조금씩 사고, 맛없는 것도 꾸역꾸역 한 캔을 비워버리면서 취향을 찾았을 뿐이다.


그렇게 잠들지 ‘않는’ 밤을 맥주와 함께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고 싶은 날에는 영화 〈맘마미아2〉 (2018)를 틀었다. 물론 영화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단지 신나는 노래가 멈추지 않고 들리길 원했을 뿐이다. 뭐라도 해서 효능감을 얻고 싶은 날에는 사지 않고 책장에 넣어둔 책들을 다시 꺼냈다. 역시 책을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一 7권 정도를 5분씩 돌아가면서 읽는 것도 독서라면 읽긴 했다. 단지 뭐라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 모든 밤마다 맥주를 마셨다.


책도 영화도 다 지겨워진 어느 새벽에는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역시나 가방 속에 맥주 두 캔이면 충분했다. 집 안의 모두가 잠 들었을 때 조용히 나가서, 해가 뜨기 전에 살금살금 돌아오는 식이었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정자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어둠은 세상 모든 걸 가려버려서. 그 순간만큼은 나의 구멍은 무언가의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어둠 속의 실재(實在)였다. 그렇게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감각했다.


여전히 아침을 저주한다. 아침이 물러날 때까지 감당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벅차서. 여전히 그 구멍은 뼈가 시릴 만큼 차갑다. 하지만 구멍이 없는 나를 더 이상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그 차가움과 함께 사는 법을 찾아본다. 맥주 두 캔으로 살짝 올라오는 취기一 다행히 술에 아주 강한 편은 아니다. 그리고 나보다도 더 거대한 세상을 집어삼킨, 구멍보다도 더 거대한 밤만 있으면. 그럼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누구나 저주하는 대상 하나쯤은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아침을 저주하고 밤을 지내다 보면, 그 어둠에 기대어 존재하다 보면, 정말로 괜찮아지는 순간이 올 것만 같아.


해솔 | forestgre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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