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만남

독자와의 만남 1회차


총 여섯 분이 신청해 주신 이번 독자와의 만남은 6월 3일 18시 30분에 진행됐습니다.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활동하시는 이프 님과 수민 님, 여학생위원회와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석순》의 재윤 님, 대학원생노동조합 민상님, 전 고대문화 편집장이신 상민 님, 동덕여자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목화》의 예인 님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고대문화》 154호와 154.5호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책 전반 평가


재윤: 전반적으로 무거운 내용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민상: 편집회의 이전에 다른 주제로 세미나를 한 상황이니까, 계엄 사태에 대해 정치적 논평을 하고 글을 쓸 때 통일적 시각을 갖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무기력함이나 패배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던 것 같고요.

이프: 윤석열 관련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중간에 방향을 바꾸셨다고 하니 현상 기술이나 인상을 넘어서 어떤 얘기를 하기에 물리적 여력이 부족했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많이 써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후: 글을 쓰는 당시에는 계엄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탄핵 인용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했고요. 다른 성원들도 이 상황과 적절히 거리를 두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급박함이나 긴박함이 글에 담겨 있는 게 좋은 면이기도 하면서, 앞서 민상이 말해준 것처럼 비평적으로 거리두기에는 실패했을 수도 있겠다. 물론 불가능하기도 했습니다.

상민: 지금은 계엄이 터지고 반년이 지났지만, 책을 만드실 때는 일어난 직후였을 거잖아요. 보통 이렇게 시급하게 바뀌는 상황의 경우면 화보로만 넘어갔을 것 같은데 특집으로 선정하시고 글도 6개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너무 고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특집 3과 4, 5와 6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도 느껴졌는데, 꼭 고대문화가 단일한 주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확신을 못하겠어서…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소한 것일수도 있는데, 표지에 적힌 “포획된 멧돼지”의 경우는 칼럼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모르고 표지만 보면 윤석열을 그렇게 지칭하는 것으로 보일 위험이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또 역시 사소한 것이지만 표지의 키워드들이 글의 내용들을 다 담아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보고 독자들이 글을 고를 것 같은데 ‘냉소주의자’나 ‘브랫 패션좌파 나토’ 같은 것은 사실 글의 내용을 온전히 전달하는 키워드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편집실에서


유진: <편집실에서>는 제 마음이나 감상을 얘기하는 글인데, 평소에 거창한 생각을 안 하는 편이라 어려웠어요. 담백하게 사회나 고대문화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상민: 이해와 납득이 뭐가 다르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물론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했습니다. 제 삶의 기본 기조가 ‘그럴 수 있지’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마저도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이 글이 ‘납득’이 됐습니다.

이프: 다른 사람의 삶을 보거나 공존의 차원에서 납득과 이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독자가 처음에 읽는 글이니까 이런 이해를 공통으로 쓰인 글일 수 있겠다.




시선


이프: 전반적으로 사실관계를 읽고 잘 파악할 수 있게 정리가 잘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강 노벨상 수상 글에서 “고통에 깃든 생명을 발견하는 글쓰기를 시대가 부르고 있다”를 어떤 의미로 쓰신 건지 궁금했어요.

서연: 기존에 노벨상을 받은 책들도 여전히 인간의 슬픔에 접근하지만, 한국인이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참극을 문학의 힘으로, 문학으로 씀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의미였습니다.

재윤: ‘와 되게 교지 같은 글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상민: 형식적인 면에서만 이야기하자면, 계절을 앞에 붙이는 것이 예전에 계간지일 때는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의미가 있나 싶어서 코너 제목에 대해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현재는 편집방식이 좁게/길게/세로로 되어 있는데요, 한 기사에 한 단락일 때는 읽기 편한 것 같은데 지금의 분량일 때는 이런 방식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시선에서는 각주도 최소화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수민: 한강이랑 제주항공 내용이 뒤에도 나와서 소재가 겹친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민상: 이번에는 글에서 자기 색깔과 주장을 많이 보여준 게 매력이기도 한데, 오히려 짧게 쳐내고 더 많은 목소리를 넣는 식으로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화보


이프: 발언문을 급하게 적은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더 보충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를 깔끔하게 잘했다.




학내


정후: 특집을 <윤석열>로 바꾸기 전에도 어느 정도 기획했던 글입니다. 그때는 학생회라는 공간이 얼마나 탈정치화됐는지, 그 내부에서는 어떤 논리로 활동을 정당화하고 인식하는지 쓰려고 했는데요. 갑자기 계엄이 터지고 총학생회로서의 행동도 일어났는데, 스스로도 총학 내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되는 구나 라는 생각에 많이 무기력함을 느꼈던 개인적 감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민상: 정후가 그 자리에 있었던 만큼 반드시 나왔어야 하는 글이죠. 이 글의 가치는 거기서 오는 것 같아요. 아카이빙, 내부에서 바라보는 짜침, 관료주의적인 태도. 마지막에 너무 무기력해서 진짜 함들었구나….

정후: 쓰면서 염두에 둔 게 학생사회에 이런 사람들만 있지 않았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내부는 이렇게 돌아간다는 기록의 필요성도 느꼈고요.

이프: 학생총회 했을 때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문제 삼아야 할 부분을 잘 정리한 것 같아요. 다만 4번에 “2020년대의 학생사회를 기록하며”가 내용이랑 잘 맞는 소제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재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지 고민이 들어요. 내부의 자정작용이 있으면 좋겠네요.

상민: 제가 150호에 썼던 <학생사회에 새솔이 날 수 있을까요>에 달린 RE였는데요, 사실 이 글을 보고 모종의 책임감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좀 책임 회피를 하자면 저도 이 글을 쓸 때 학생회에 들어간다는 선택지를 진심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정말 들어가셨다니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면 글의 성격이 애매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적으로는 객관적인데, 어느 순간 화자가 확 드러나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 순간들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아예 전체를 그런 톤으로 가져갔어도 좋았겠다 싶어요.

교지를 할 때 뾰족한 해법이 있길 바랐지만 없는 것 같고,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요. 윤석열이 당선되며 운동권에 다시 기회가 오는 일 같은 것도 없었고… 이번에 여위/소인위 보면도 항상 두려워했던 상황인데 결국 일어나고 하는 걸 보며 착잡한 마음입니다.

민상: 총학과 그 아래 결부된 단과대/과반 학생회와 같은 시스템 내에서 이런 운동단위가 버티는 게 의의가 있겠지만, 지속 불가능하거나 공력을 요하는 상황이 계속될 때 학생회에서의 운동 혹은 시민 운동 자체의 포맷이 바뀌어야 하는 때가 왔나.

이프: 제도 자체가 많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준을 받아야 하거나 의결권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고 한 공간에 있을 때 그 폭력적인 분위기. 회칙상 문제없다는 말로 모든 게 정당화되잖아요. 비논리를 논리로 설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총회를 여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뭐든지 이걸 준수하는 것만 중요하고, 절차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버리는 과정이고.




특집 여는 글


은희: 계엄 사태에 대해서 12월 3일부터 실무 마감 전까지 최대한 타임라인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서 정리했습니다. 최대한 개인적 의견보다는 어떤 사건이나 객관적 기록 자체에 집중했고요. 앞의 글은 지금 보면 아쉬움이 남는데요. 실제로 탄핵된 이후의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아서. 그때는 탄핵이 될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 글이라도 희망차게 마무리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프: 여는 글이 아쉽다고 생각하신다면, 윤석열이나 그가 자행했던 것들이 그 사람이 유독 이상해서 나타난 게 아니고 파면되더라도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서. 근데 그 상황에는 이런 말이 필요했을 수 있겠다.

상민: 함께 실린 사진들이 모두 성원들이 찍은 건데 다 찍으신 분이 다르더라고요. 고대문화가 이 시국에 함께 했다는 게 기록으로 남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이 각주들이 전부 다 빠져도 될 것 같았어요. 디테일한 부분一 도착했다, 진입했다 一이런 게 아닌 이상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종고 송부 이후 교정교열을 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타임라인에 적을 것들이 생겨났을 텐데, 그것을 보충할지 말지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라면 무리해서라도 탄핵 인용까지 타임라인을 추가했을 것 같은데, 또 여기 실린 글들이 언제쯤 쓰인 글인지를 명확히 해두려면 지금처럼 타임라인을 멈추는 방식도 좋다고 생각이 되네요.




특집1 인간의 이름으로 ()에 반대한다


혜원: 인간의 이름으로 무엇에 반대한다는 글이에요. 그 무엇이 글을 읽으면서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윤석열 혹은 전쟁입니다. 두 개가 얼마나 닮아있는지 말하고 싶어서 괄호를 쳤고요. 실제로 윤석열이 어떤 비겁한 스탠스를 취했고, 남북관계라는 정세를 쥐고 극우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던 걸 담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까 사전적 의미의 전쟁과 직접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 치중한 게 아쉬워요.

민상: 윤석열과 함께 우리가 어느 때보다 전쟁에 가까워졌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저도 돌이켜볼수록 섬뜩합니다. 그러나 러우 전쟁과 팔레스타인 학살과, 윤석열이 전유한 ‘남북관계’를 단순히 ‘냉전 이후’에 놓기에는 더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았나 합니다. 지금으로선 러우 전쟁과 팔레스타인을 어떤 ‘특이점’ 이후에 놓고, 그 전쟁과의 거리감에 안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테마파크가 된 “전쟁”의 스릴감만을 남길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현대 불량국가들이 펼치는 이 유사-냉전, 사이비냉전의 ‘사이비스러움’을 더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틱톡이 이스라엘 군사주의의 핵심 기제가 되었듯이, 이 ‘사이비스러움’과 적나라함이야말로 네타냐후와 푸틴, 그리고 윤석열을 가로지를 수 있는 수행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평적인 개입은 이곳에서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글이 결말에서 급격히 회귀하는 ‘휴머니즘’은 이 불량함의 역사성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서구가 주변부의 전쟁을 ‘즐기는’ 역사적인 수단으로서 인도주의라는 폭탄과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프: 전쟁은 무엇보다 인간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성에 호소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글에서는 윤석열과 전쟁을 연결짓고 있지만, 여러 전쟁의 현황 및 과정을 정리하거나 윤석열의 '악행'을 정리한 것 이외에 글에서 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상민: 마지막까지 읽고 제목을 보면 괄호에 들어갈 말이 전쟁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는 했어요. 글의 내용과 별개로 특집 여는 글에 주르륵 이어졌던 계엄 관련 타임라인 이후 처음 마주하는 글로서는 조금 힘이 빠지지 않았나 싶어요. 중간쯤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특집2 윤석열 그리고 노동자: 껍데기는 가라!


이프: 글을 읽으면서 제목에서 “껍데기는 가라!”를 언급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쓰는 이가 노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노동을 천시하고 탄압했을까요? 탄압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또, 노동조합조차 구성할 수 없는 환경의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권하에서 어떻게 일하며 살아왔을까요? 윤석열과 노동자라는 대주제 하에 놓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글의 전반적인 내용이 윤석열이 조장한 노동조합 혐오와 법안 거부 등의 현안 정리에 그칠 뿐, 실제로 노동자들이 어떤 투쟁을 하고 있는지 그 현장에 관한 내용이 부재합니다. 무엇보다 글에서 제시하는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이며 노동이 삶의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당연한 전제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민상: 이 글이 호명하는 ‘노동자 민중’이 과연 오늘날의 상황에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이미 노동과 민중은 신자유주의 에토스에 의해 분절 당했고, 우리가 우선 공론장에서 마주치는 것은 ‘백골단 구사대’보다는 동료 노동자와의 알력다툼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분절은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숭고한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 사이의 분별, 계급 등 전통적인 우익의 수사학마저 스스로 초월합니다. 우린 ‘민중’, 혹은 ‘다중’의 내장이 겉으로 노출되고, ‘껍데기’가 내장으로 말려들어 간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독자로서 저는 마지막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보다 정치한 설득이 필요한 상황이 답답하긴 하지만, 지난 탄핵 광장에서 우리가 만난 희망들을 그러기 위해 액자화해 제시하는 것들이라도 보강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특집3 내란과 헌법


이프: 대한민국 헌법과 24년 12월 내란까지를 잘 정리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살아 숨쉬는 실천'이 위헌적 친위 쿠데타를 막을 최후의 보루라는 글쓴이의 말과는 다르게 글의 마무리에는 구체적인 '실천'의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대안을 제시하기에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어 이해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민상: 잘 정리된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승만이 1952년 내렸던 ‘국헌 문란’이라는 개념이 헌법에 정착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여기서 느꼈던 것은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유’, ‘헌법 체제’가 지정학적 시차를 두고 허약한 토대 아래 전유되고 남용되어 온 한국 정치의 계보학 같은 것이었는데요, 이것이 글의 결말에서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자칫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제언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그래서 더 아쉬웠습니다. 글의 문제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고요, 계엄 사태에서 귀환한 유령들과는 별개로 그 광장에 도래해있던 것들로부터 벼려낼 수 있는 실천이 어떤 종류의 것일지 숙고하는 과제가 독자로서 글을 읽고 난 후에 남았습니다.




특집4 제6공화국의 종말


윤석: “모든 민주공화국은 민중의 바리케이트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글인데요. 거기에 첨언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의의다.’ 라고 남겼을 것 같아요. 공화국과 체제라는 건 그 밑의 계급의 역학관계에 의해서 구성된 구성물이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헌법적 가치 위에서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체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리케이트라는 건 결국 대로에 투쟁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놓은 구조물이잖아요. 우리는 그 바리케이트를 지키지만, 그리고 결국 넘어서고, 부수고, 새로운 바리케이트를 만들어내야 하죠. 끊임없이 점거하는 그 과정에서 바리케이트가 의미가 있거든요.

6공화국은 글에서 쓴 것처럼, 5공에서 대통령 직선제와 바꾸어낸 불완전한 항쟁의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항쟁에서 잊어버렸던 가능성들이 많고. 12.3 계엄을 통해 윤석열을 몰아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운동의 역사 위에서 우리가 좀 더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고요.

상민: 개헌에 대한 관점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특집3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탄핵 인용 이후 잠시 개헌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유야무야되었던 사태가 이 두 특집 글들로 예견되었지 않나 싶네요. 특집 글들 중에서는 제가 가진 기존의 생각과 가장 비슷해서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의 부분은 사실 완전히 비워져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방향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석: 다섯 번째 문단으로 기억하는데, 단지 헌법뿐만이 아니라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이프: 말씀하신 의도대로 흐름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서 잘 읽었습니다.




특집5 광장에 모인 사람들


민주: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청년 세대가 겪는 일도 달라지고 있을 텐데, 어떤 흐름으로 바뀌고 있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대와 집회를 연결 지었고요. 이 글을 쓸 때에는 일련의 사안들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광장 이후의 사람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해 보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해요. 글을 쓸수록 세대를 나누기가 모호해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쉽습니다.

이프: 이번 사건들을 겪으며 광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첫 번째 장에 있는 투쟁이나 광장에 나오는 것에 대한 생각들에서 좀 더 고민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투쟁을 정의한다거나, 광장에 물리적으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에 좋고나쁨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읽히는데, ‘광장이 능동적으로 정보를 얻고 주체성과 연결될 수 있는 장소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고. 광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물성이 지닌 공론장으로서의 가치 부여를 좀 더 고민했으면 좋았겠다. 광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곳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고려를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세대별로 나눠주셨는데, 전반적으로 세대를 나눈다거나, 그 세대의 특징을 기술할 때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세대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권력 정치의 용이함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을 그대로 차용해서 가져올 때 생기는 애매함이 있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진영이나 세대로 딱 나눌 수 없기도 하니까. 주장이나 문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혹은 용어가 명확하지 않다거나 인용한 문구까지 달려가는데, 인용한 부분과 그 달려가는 부분이 맞지 않는다거나. 그리고 여기서 진보와 보수를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걸 통상적으로 언론이 말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독자가 읽어야 하는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체 없는 자유”라는 표현도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자유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 왜냐면 어떤 자유는 실체가 없는데 어떤 자유는 굉장히 실체를 갖고 있기도 하고. 이 사람이 쫓는 자유는 뭔지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단어를 사용해서 주장하고, 인용을 할 때 더 고민하고 정확하게 쓰면 많이 보완될 것 같아요.

민상: 계속 지금 여기 광장에 모인 우리 / 저기 다른 광장에 모인 그들 / 혹은 광장에 나오지 않은 그들을 변별하면서 글이 작동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윤석열의 계엄 이후 만난 새로운 광장과는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실재하는 광장에 모여서 정보를 직접적으로 수용한다고 하면서 광장의 개념화를 시도하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저들도 광장에 너무 나와서 진짜인지도 모를 정보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런 시대에서 광장에 대한 신뢰가 작동할 수 있는지? 그 기점은 이미 한번 넘은 상태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만하임의 코호트 세대 구분을 중심으로 진행하는데, 이런 소박한 세대 구분은 이번 광장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서부지법 난동 같은 건 포괄하지 못하잖아요. 여기서 ‘Z세대만의 특징이다’라는 것도 2000년대 후반이나 2010년대에 88만원세대 이야기하면서 이미 다 했던 얘기들이고. 오히려 기성세대가 IMF 이후에 청년 세대에게 투사해 왔던 시선들이고. 그런 부분에서 성찰이 좀 더 필요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인용되어서 정치의 미학화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편집회의에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더 나은 인용을 찾아가야 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성세대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규정한 자유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부터 누구보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들이잖아요. 좀 더 설명이나 논쟁이 받쳐 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이프: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광장과 우리와 광장이 다르다기보다는, 정말 광장에 모이는 형태가 비슷해서. 우리가 광장에 나와서 느끼는 스펙타클을 그들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고민들을 기반으로 글을 쓰면 좋았을 것 같아요.

상민: 저도 세대론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여기서 특히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예 광장 세대에 집중하면 좋았을 것 같고요. 하지만 광장의 주체라고 했을 때, 아주 크게 잡아서 ①민주당과 조국혁신당, ②민주노총이나 시민운동, 그리고 ③Z세대 응원봉 개인기수일 것 같은데요. 이 글이 정확히 어떤 집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해지는 서술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파편화된 개인이었다가 연대하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설명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무엇보다 젠더라는 벡터가 빠진 게 제일 납득이 안 됐고요. 말씀하신 ‘파편화된 개인’이 Z세대의 표상이긴 한데, 그중에서 왜 누구는 광장에 안 나오고 누구는 나오는지 이 글이 해명하고 있지는 못하지 않나. 근데 다음 글에서 젠더가 나와서 상호 보완하는 걸수도 있고요.




특집6 ( )을 위한 냉소


은희: 계엄 이후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서 나오는 냉소주의적인 반응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쓰면서는 자료의 출처를 고려대학교 에타로만 한정 짓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이걸 정말 디시인사이드 같은 곳까지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하는 냉소주의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제했고요. 다른 대학의 커뮤니티도 참고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현실적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프: 에타 중심으로 사례랑 글이랑 잘 연결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계엄 사태에 대한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는 부분이 냉소주의 자체보다는, 냉소주의자들이 극우의 논리를 구사하는 예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얘기하면 너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민상: 냉소주의에 관한 분류를 깔끔하게 잘해서 편하게 읽히는 글이에요. 다른 학교 에타 얘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고려대 에타만 봐도 충분히 병들어있으니까… 훌륭한 샘플 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에서의 경험을 패배로 인식하고, 그 패배 경험이 이번 광장에서 냉소주의와 경계선이 모호한 극우주의의 부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까’ 이런 게 재밌는 진술들이었어요. 이런 진단을 더 도전적으로 질러봤어도 되지 않았을까? 에타는 저희만 볼 수 있고, 저희만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니까 독점권을 갖고…

상민: 적극적 냉소주의의 예시가 이준석 같은데, 냉소주의라는 네이밍이 맞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꽤나 현시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게 냉소라고 부를 수 있나 싶었고요. 그리고 내부적으로 계급적인 부분도 차이가 있을 것 같고요. 에타 분석을 하면 계급이나 지역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로 뭉뚱그려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더 자세히 보면 좋았겠다 싶지만 분량이 어렵긴 하죠.




특집 닫는 글


하영: 아직 마무리된 사안이 아닌데 특집은 닫아야 하니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광장에서 느낀 것들을 써봤고요. 사실 집회나 광장에 나갈 때 효능감이나 희망을 느낀 적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나가는지, 혹은 왜 나가야 하는지 쓰고 싶었습니다.

상민: 특집 전체에서 제일 좋았어요. 너무 공감이 돼서.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고 그 사이에 있겠다는 말이 너무 좋은 것 같고,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해요. 광장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문단도 너무 좋았고요. 왜냐면 계엄이 터지고 자주 들리던 말이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뻔했다” 같은 것이었거든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되게 생경하게 느껴졌는데 제가 봤을 때는 윤석열 당선 이후부터 계엄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사회 분야가 많았고… 이주민, 성노동자, 비인간동물 같은 존재들은 대통령이 누구든지 항상 계엄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일 것이니까요. 그런 부분을 짚어주셔서 기뻤습니다.

이프: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는 게 콘클라베 생각이 났는데, 그 대사에 공감을 많이 해서 여기도 공감이 많이 됐어요. 직접 세계의 가능성을 본 경험이 없었으면 그냥 낙관적인 글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게 아니고 뭔가 트이는 부분을 봐서 쓴 글이구나.

민상: 닫는 글 덕분에 특집 뒷맛이 좋았던 것 같아요. 완벽한 순간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되게 기분 좋은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남태령 같은 곳에서. 희망 한번 차보자! 그때가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짜침들을 잊지 않고. 잘 읽었습니다.




Re;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투쟁: 생존 너머의 삶


유진: 고대문화 전 성원인 수민 님이 용주골 투쟁의 근황을 써주셨어요.

상민: 계속 RE가 달리고 있는 시리즈잖아요. 그걸 쓰는 성원들이 계속 바톤터치를 하듯 달라지는 이 흐름도 좋아서. 반연간지로서 좋은 기획인 것 같아요. 지금 미아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목요일 아침마다 집회가 있으니까… 오시면 인사해요. 글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실제로 이번호에 미아리 투쟁을 다루는 글이 실렸다. - 편집자 주)

이프: 이 의제에 관심이 있어서 쭉 봤는데, 설득하려면 삶의 차원에서 계속 낮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공간, 몸, 삶, 돈 이런 것들, 그런 차원에서 적절한 이야기고요. 최근에도 학교 단체 중에 미아리 관련 연서명 한 것에 대해서 ‘왜 창녀들한테 돈 주는 걸 찬성하냐’ 식의 비난이 있었는데. 이 얘기가 설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주 낮은 삶의 차원에서의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민상: 이번에도 굉장히 설득력 있게 잘 써진 것 같고요. 파주시가 어떤 관료 기술을 사용하면서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행태가 반복되는지, 구조적 차원에서도 잘 짚어줬고. 총체적으로 잘 짚어준 글. 용주골에 대한 그동안의 고대문화 글 중에서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글인 것 같아요.




칼럼1 민주동덕에 봄은 온다: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인터뷰


유진: 편집회의를 하면서 동덕여대 이야기를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고, 교지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해서 동덕여대 교지에 연락을 했습니다.

예인: 동덕여대 교지 편집장입니다. 저도 탈정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당시 아직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아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 상황에서 답을 하다보니 저도 탈정치에서 못 빠져나온 것 같아요. 답변하면서 구성원 간 생각 차이도 있었고, 그런 점에서 많이 망설여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윤석: 중요한 건 어떻게 유려하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지금 당장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연: 상황이 상황이라 당연히 그 자리에서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못한 건 너무 알 것 같아요.

예인: 정치권 관련해서 질문 주셨을 때도 말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다시 붐업되고 있잖아요. 맛터나 길티 아카이브라든가. 시위 초반에 에타에 메르스 갤러리 글들이 계속 올라왔거든요. 거기 올라온 걸 강령처럼 따르는 거예요. 이거에 대해서도 좀 더 잘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도 아쉬워요.




칼럼2 리뷰: 국가에 의해 허락된 좌파 음악 ⟨brat⟩


정후: 초반에는 브랫이 어떻게 소수자 의제를 착취하는 음악인지 비판적으로 보려고 했는데요. 글을 쓰다 보니까, 이게 꼭 나쁜 건가? 제가 어떻게 가치판단을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결국에는 예전부터 힙스터리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꼭 대중성 말고 다른 걸 개발하는 게 분명히 유의미하면서도 그것 자체를 자신의 패션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어서 힙스터리즘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브랫을 가지고 그 힙스터리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로 글이 전개됐습니다.

이프: 글의 내용이나 주제에 대해 배경지식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정후 글로 처음 접했어요. 첫 번째는 소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그냥 글을 쭉 읽을 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에요. 또 좌파적이라는 게 무엇이 좌파적이라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번역해서 인용된 부분들을 더 적확하게 쓸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충분히 소화해서 자기 말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용을 위한 인용이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정후가 말한 것처럼 소수자성을 쉽게 흉내내고 정체화한 이후에 패션 아이템처럼 걸치고 소비할 수 있다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렇다면 이 글에서 이게 나쁘다고 말하는 건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도록 착취하는지? 의문스러웠어요. 또 힘겨루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체제와의 긴장을 말하는 건지 구체적 얘기가 궁금했어요.

상민: 사실 ⟨brat⟩ 앨범을 들으면서 이게 좌파적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해서 제목에서 궁금증이 들었어요. 근데 이 글에서 정작 ⟨brat⟩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이 엄청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게 꼭 필요한 것일까? 많은 각주와 인용들이 내용 이해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본론에 가기 전까지 피로를 많이 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사실 두 번 읽고 나서야 이해를 했는데 이게 결국 ⟨기생충⟩ 얘기구나 싶었어요. 이 영화도 반지하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명성을 얻고 상품으로 소비되었잖아요. 그래서 ⟨brat⟩도 그런 맥락이구나 하고 이해…를 했다기보다는 납득을 했습니다. 왜냐면 정작 ⟨brat⟩이 왜 좌파적인지/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웠고, 한 예술 작품이 어떤 운동만은 아니잖아요. 저는 ⟨기생충⟩과 봉준호가 재수없는 것과 별개로 ⟨기생충⟩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실패라는 규정은 이것을 어떤 운동으로 보고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은데 그다지 동의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정도로 한 예술 작품을 파고드는 글은 리뷰라는 꼭지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상: 좌파적인 어떤 정파 사이나 이런 것들이 자리 잡지 못한 어떤 되게 저조한 욕망들이나 무기력 같은 것들을 좀 더 분리해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정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가짜 쾌락과 진짜 쾌락을 변별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맨날 쇼츠 내려다보면서 이게 환상인 걸 알면서도 계속 그 환상으로부터 쾌락을 얻으면서 시들시들해지는 저조한 주체성이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집중했다면, 우리가 처해 있는 저항-순응 사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 하이퍼 팝을 권력이 점유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경제적으로 바라보는데, 그 현상 자체는 너무 오래된 거잖아요. 그래서 결론을 더 나아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 점에서 너무 생산자 입장에서도 써져 있다는 게 이 글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 청취되고 있는가의 현장을 좀 더 바라봤다면, 저항이나 대항적인 청취가 일어나고 있었는지 더 바라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결국 권력과 권력 바깥의 담론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굉장히 오래된 내러티브밖에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정후: 일단 좌파나 가짜 쾌락을 언급한 건, 제가 원래 마지막에 그걸 다 무마시키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진짜 좌파 같은 것도 없고 진짜와 가짜가 더 이상 구분되는 시대도 아닌데 그걸 계속 구분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더 면밀히 분석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아요.




칼럼3 우리의 ‘ ‘ 교육은 안녕하십니까


유진: 우리나라의 특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해서 나아가 특수 교육에서 통합 교육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글입니다.

이프: 전반적으로는 잘 읽었는데요. 살짝 덜컥하고 걸렸던 건, 처음에는 특수 교육이 교육 문제가 아니라 특수교육 문제로서만 다뤄진다고 시작하는데, 특수 교육이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만 다뤄져서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뒤에 내용이랑 살짝 배치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지금의 교육에서는 비장애인 중심 교육에 장애인을 끼워 맞추는 구조로 된다는 말들이 중점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162p에 평등과 상호 존중 같은 게 교육 환경에서 밀려난다고 되어 있는데, 이건 학생들을 모아놓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의 기능도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상민: 저도 사실 잘 모르는 문제라서 차근차근 어떻게 특수교육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어줘서 좋았습니다. 다만 제도 중심으로 설명하는 글이라서 해결책도 장애학적 시선 없이 제도 중심으로만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후반부는 걱정과 정반대라서 완전히 동의하게 되었어요. 오히려 당장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민상: 저도 제도적인 원천이나 최근 이슈가 되었던 사건을 잘 모았다고 생각해요. 상민이 말한 대로 걱정과 다르게 층위를 오가며 전체적으로 결론을 잘 지어준 것 같아요. 다만 의문이 남은 건 ‘능력주의가 잘 들어맞는 건가?’이긴 해요. 사회 일반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섞여서 최근에 등장한 능력주의가 조금 더 역사성이 있는 비장애중심주의와 딱 들어맞진 않는 것 같고. 이게 더 잘 들어맞으려면 능력주의가 비장애중심주의나 특수교육이 만나는 사례가 있으면 더 정확히 이해했을 것 같은데, 이것만으로는 ‘능력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뭐지?’ ‘이것만으로 오픈할 수 있는 게 뭐지?’라고 할 때 불안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능력주의를 비장애중심주의로 읽으면 잘 납득됩니다. 너무 무기력하지 않게, 설명만 하다가 끝나지 않는 글이라 잘 읽었습니다.

수민: 교사를 D로 칭하다가 C로 칭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 교정 볼 때 더 신경을 써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칼럼4 남미새학개론


유진 제 글은 최근에 남미새라는 말이 굉장히 유행하는데 남미새로 포섭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미새를 구성해 가는지에 대해 어떻게 의미 변화가 있었는지 써보려고 했었고요. 아쉬운 점은 제가 너무 현상 포착에만 멈춘 것 같아요. 이렇게 포착하기만 한 게 결론까지 이어져서 꽤나 얄팍한 결론이 되지 않았나 싶긴 한데요. 사실 전 이 책에서 제 글이 제일 가벼운 글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분들도 잠깐 쉬어가는 식으로 읽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프: 남미새의 인지와 프레이밍을 1기→2기→3기로 표현하셨는데 시간순인지? 변화 양상을 기수로 표현한 게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이 글에서 남미새 전반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데, 무조건적 추종이라는 게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여미새에서 시작해서 남미새로 언어를 개념화하고 있다 보니까 글을 읽을 때 2기 시점부터 남성 혐오가 여성 혐오로 전이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애초에 단어 자체가 그런 단어 아닌가? 시점을 짚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었고. 남미새를 배제함으로써 연대와 결속을 추구하는 의도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 개념에 원래 관심이 있었어요. 어떤 현상을 말하고 싶은지는 이해했지만, 이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남미새면 안 된다고 말하는 느낌? 전유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남미새가 길티한 이유에 대해 말할 때 근거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원래 관심 있던 주제라 재밌게 읽었어요.

유진: 저는 이게 시간순으로도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하고, 여성 혐오가 더 짙어지는 순서라고도 생각하는데. 사실 저도 예컨대 은희가 적극적/소극적으로 나눴듯이 더 언어적으로 정의하려고 했는데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해서 뭉뚱그림 속에 제가 숨었던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상민: 저도 1, 2, 3기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기수를 나누는 거에 공을 많이 들인 거에 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이제 기혼녀 아들맘 이런 구분 자체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비난하는 층위에 따라서 구분을 해도 되지 않을까 이게 순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일단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좀 동의를 하는 부분이 어쨌든 저는 사실 이게 글 제목을 봤을 때는 남미새를 하는 그 사람에 대한 심리, 그런 거에 대한 걸 줄 알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약간 남미새를 타자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다시 읽어보니 결국에는 그냥 남미새 혐오가 그 자기혐오다라는 느낌으로 읽혔거든요. 그렇게 보는 게 맞을까요? (네네) 그래서 남미새를 타자이 자기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정정하게 되었는데 다만 자기혐오라는 부분에 모두가 해당할지는 조금 의문이기는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봐도 여자들조차 여자를 너무 미워하고, 남자는 너무 다 선해해 주고 그런 게 분명히 있기는 한데 그게 다 자기혐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또 그래서 저는 정말로 ‘남미새’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좀 궁금했던 것 같아서 보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민상: 결론에서 네 안의 결핍을 직시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 결론에서 충격적인 인터넷 글에 대한 충격적인 인식을 시도하잖아요. 그래서 결말까지 충격적인 읽기가 동반되면서 주장했으면 더 돋보였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터넷에 남미새 관련 글들이 모이는 과정에서, 짜치고 모순을 인정하지 않는 글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기에 짜치고 길티한 말이지만 동시에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도 가져오면서 주장했으면 마지막에 더 활기차게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유진: 그때 제가 스스로 굉장히 소진되어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내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성원들한테 좀 명쾌한 답을 얻고 싶어서 물어봤더니 성원들도 ‘이것밖에 답이 없어 그냥 미새로 끝내요’라고 답해서 그냥 저는 미새가 됐습니다.




칼럼 5 ‘인간성을 넘어’一 비인간과 공존하기


하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느낌을 받아서 쓰면서 길을 참 많이 잃었던 글이에요. 이것저것 연결 짓고 싶었는데 잘 안된 것 같기도 하고. 동물이 어떻게 착취되고 어떻게 죽임 당하고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사실 그런 부류의 얘기를 좋아하진 않아요. 필요한 얘기인 것과는 별개로 그런 것만을 이야기하는 거를 좋아하지 않아서 마지막에 생추어리 얘기도 더 해봤던 것 같고. 근데 명쾌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이프: 잘 읽었고 좋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맞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거랑 별개로, 결론에 가서는 우리가 유해한 현실을 인정해야 된다는 게 결국 무해하기 위해서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면서 마무리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 앞에서의 비판이 무뎌지는 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렵지만, 현재의 공존 형태들까지 비판했을 때 그다음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공존에 대한 얘기가 갑자기 끊겨버린 느낌? 제가 맞는 말이라고 했던 게 윤리적으로 맞다는 생각인데, 그런 점에서 결국 인간성을 넘는 게 어떤 건지 글에서는 잘 상상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별개로 매끄럽게 잘 읽히는 글이었어요.

상민: 저는 반대 의견인 것이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것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점점 글이 넓어지는 거예요. 도시에서 시작을 해서 도시의 비둘기를 다루고 도시와 야생 사이의 축산 동물을 다루고, 인간이 없는 야생에 대한 논의까지 가서 ‘야생’이라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짚어주는 흐름이 너무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글을 시작할 때 무안공항 철새 얘기를 짚어주신 것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이 글의 서두로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고요. 저도 이 참사가 정말 안타까운 사건인 것과 별개로 관련 뉴스를 보며 이 철새들도 인간에 의해 죽은 것인데 그냥 자연재해처럼 다뤄지는 것에 대해 조금 불편함이 있었거든요.

또 이어지는 생추어리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다만 서술적으로 봤을 때는 조금 분량이 많다거나 예시 분량이 많다는 느낌이 있을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이 글의 참고문헌에 있는 숙영의 무해한 비건은 없다 라는 글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글은 선언문처럼 쓰여 있는 글인데 이 글은 좀 더 친절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이런 비거니즘이나 동물권 글을 봤을 때 가지게 되는 의문을 너무 잘 다뤄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민상: ‘나가며’가 인상적이었어요. 이 글은 설득하려고 하고, 그거 인간 중심주의적인 거라고 조목조목 짚어주잖아요. 근데 ‘나가며’를 읽으면서 ‘아 진짜 구토하고 절규하면서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하영이 비인간 동물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쓴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영이 인간으로서 비인간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직까지 이런 걸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그래서 다음에 글을 쓴다면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떻게 그 상태에서 변화가 가능한지 듣고 싶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유해함이라는 환상 대신에 유해함이라는 현실을 가져간다고 할 때, 사실 우리도 결국 인간 동물이니까 인간 동물로서의 바운더리를 벗어날 수 없잖아요. ‘그 벗어날 수 없음에서 어떻게 우리가 더 나은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지?’라는 건 또 다른 결론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상민: 근데 저도 ‘나가며’가 없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었는데 이런 게 항상 고민이 되는 부분이잖아요. 그냥 깔끔하고 종합적이게 결론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 스스로가 이 종합적인 결론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도 하잖아요. 절대 다수의 매체에서는 그런 불신을 숨기고 깔끔한 결론을 제시해야 하지만 고대문화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비건 생활을 4년 정도 했었다가 지금은 못 하고 있는데, “그날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먹었을 때. 다시금 토해내고 싶었지만 역시나 참았습니다. 그게 최선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괴로움과 수치를 감당하는 것이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한 애도의 전제입니다.” 라는 문장에서 큰 공감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칼럼 6 세계를 껴안는 힘


서연: 처음에는 노벨상 수상에 맞춰서 수상한 작품을 중심으로 쓰려고 했었는데, 쓰다 보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중에 방향을 틀었던 글입니다. 그냥 제 머리에 있던 이야기를 쓴 글이라서 좀 더 친절하게 썼으면 좋았겠디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프: 말씀해 주신 것처럼 어떻게 읽으셨는지 쓴 거라서 내용이 맞다 틀리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읽었고요. 다만 문학을 읽고 얘기할 때 오히려 단어의 모양 자체가 좀 모호할 수 있어요. 좀 더 단어의 의미가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지점이 살짝 아쉬운 부분들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유진: 서연이 진짜 순수 피지컬만으로 뽑아낸 글이라서 정말 신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제 글에 대한 피드백에 제가 답변했을 때도, 어떤 모호함 속에 스스로 숨어버린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요. 저는 저만의 무언가를 만들지 못해서 혹은 모호함을 숨기고 싶어서 인용구 뒤에 숨어버리는 일도 매우 많았거든요. 근데 글에서는 그런 거 없이 피지컬만으로 뽑아낸 것 같아서 정말 대단해요.

민상: 전체적으로 작품 선정부터 팬레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비평적인 엄밀함이나 개념의 엄정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근데 처음의 기획은 좀 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말했을 것 같아서, 그게 지금 이 글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궁금한 점도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한강의 초기작에서 옛날에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이런 데서 정말 투쟁해야 할 부분에서 환상으로 후퇴해 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실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아예 후퇴해 버려서, 개인적으로는 ‘아, 아름답다. 그렇지만 납득할 수는 없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그 지점에서 더 들어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금 작품 선정도 정치적이지 않고 역사에서 조금 발 빠져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희랍어 시간』 같은 경우에는 초역사적인 시간 속에서도 읽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노벨상 이후에 되게 이상주의 맥락 속에 놓이게 된 텍스트인데, 그런 복잡한 관계에서 읽을 때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이프: 인용이 많이 없다는 건, 어떤 배경이나 작가나 시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보다는 시 자체를 스스로 읽었다는 건데. 당연히 단어가 상징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런 점들이 쭉 나왔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분석했다는 점이 대단하지만 그래서 궁금한 지점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서연: 원래는 데리다랑 한강을 같이 엮어서 쓰려고 했는데 중간에 길을 너무 잃은 거예요. 어쨌든 『데리다와의 데이트』를 읽고 이 글을 쓴 거라서 중요했습니다. 근데 제가 너무 미숙한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인 것이나 역사를 쓴다는 게, 제가 더럽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 글은 진짜 말씀하셨듯이 땅에 하나도 발 붙이지 않고 그냥 위에서 얘기하는 글이 된 것 같아요.

이프: 내가 다른 걸 참고하지 않고 텍스트만 분석해서 얘기하는 건 퍼즐을 맞추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걸 분석해서 퍼즐을 맞춰내는 과정인데, 그건 사실 엄청 어렵고 안 맞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그 작품을 해체해서 다시 퍼즐을 만든다면 완전히 맞출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꼬문생각


유진: 글 전반에 대한 감상을 나눠주셔도 좋고, 좋았던 글이 있으면 얘기해줘도 좋아요.

이프: 항상 꼬문생각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저도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부담 없는 지면이고 그 사람들의 블로그 읽는 것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었어요.

민상: 제일 재밌는 지점이 기고한 사람들이 지면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어. 근데 그게 진짜 재밌는 것 같아요. ‘아 여기가 어디요?’ 비장해지거나 엄청 내밀한 얘기를 펼쳐놓는 것처럼요. 이 지면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진짜 재미있는 지점이에요..




소감


유진: 제가 편집장이었으니까, 성원들 개인 글의 피드백이기도 하지만 제 피드백이기도 하기 때문에 좀 떨렸는데요. 유의미한 피드백을 많이 받고 또 감상들도 솔직하게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정후: 저희의 글을 편집위원들 말고 독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는데 이번 자리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하영: 글을 쓸 때는 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나와서 책으로 보니까 부족한 게 많이 보여서 오면서 너무 많이 떨었어요.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연: 이번 특집이 정신이 없는데 그 순간에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잘해 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책으로 나와 보니까 막상 아쉬운 점이 많은 체제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독자와의 만남에서 들은 게 진짜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이라서 앞으로 고대 문화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은희: 저도 서연 말에 정말 동의하고요. 이번에 정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제가 오프라인 독자와의 만남을 처음 하는 거라서 떨렸는데,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윤석: 이캠에 고대문화가 많이 나가고 있어요. 윤석열로 특집을 한 게 잘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학내를 딛고선 세계를 변혁하는 대형 언론 아닙니까? 늘 변혁을 꿈꾸는 언론이면 좋겠습니다.

상민: 고대문화라는 공동체에서 보냈던 시간이 3년 정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소중하고 저에게 크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질척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질척일 수 있을 때까지 질척여보겠습니다.

민상: 질척이는 거죠. 저는 머리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도 기억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 많이 모이니까 진짜 편집회의 한 것처럼 돼서요. 이미 발행이 됐는데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나.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정확하고 필요한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프: 저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어서, 고대문화를 계속 읽기는 했는데 이렇게 뜯어 읽은 건 처음이었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맨날 책으로만 읽다가 쓰신 분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신기했어요. 다음 호가 기대가 되네요.




교지 분량 및 여건 상의 한계로 독자와의 만남 2회차 기록은 온라인으로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QR코드를 통해 해당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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