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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노사이드, 사과

[시선; 여름에서 봄을] 편집위원 해진


“독일의 역사적, 윤리적 책임감을 깨달으며 우리는 나미비아와 희생자 후손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 그 시절의 사건들을 우리는 지금의 전망과 잣대로 이제 공식적으로 명명하고자 합니다. 바로 제노사이드입니다.”[1]


독일 정부는 2015년, 나미비아 주요 부족 대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 5월 28일, 공식 사과와 함께 나미비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상에 나섰다. 이 배상은 1조 4500억 규모의 인프라 투자, 보건 의료 지원 등의 경제적 보상이 주를 이룬다. 


독일은 1884년부터 1915년까지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했다. 1904년, 나미비아의 원주민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반기를 들자 독일 식민 정부는 당시 군사 행정 총독 폰 트로타의 이름으로 이들 전원 몰살을 명했고, 그 외에도 강제 노동 동원, 집단 수용소 수감 등 독일의 탄압은 식민 지배 내내 지속되었다. 이후 1915년, 독일은 이 탄압의 바통을 당시 영국령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넘기고, 독일계 이민지만을 남기고 떠났다.


현 독일 외무 장관 하이코 마스는 이러한 자국의 만행을 왜곡 없이 드러내야 한다며 당시의 학살과 탄압을 제노사이드라 스스로 규정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실질적인 배상을 약속하였다. 식민 국가가 피식민 국가와 포괄적인 배상 합의를 맺은 것은 유례없는 행보였으며, 잘못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단어를 사용한 식민지 국가의 자발적인 사과는 분명 희귀하고도 유의미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 당시 헤레로족의 토지가 독일 이민자들의 개인 대규모 농장이 된 이래 현재까지도 나미비아인은 토지를 되찾지 못하고 열악한 거주지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계 이민자들과 나미비아인은 거주지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극과 극의 계층을 이루고 있다. 사실 나미비아의 주요 부족들이 독일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토지 개혁 사업에의 자금 지원으로,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식민지 시기에 빼앗겼던 자신의 토지를 되찾는 것이다.


식민 국가의 공식 사과와 국가 차원의 배상은 분명 선구적이며, 다른 식민 국가들, 나아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국 정부[2]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스 장관의 사과문이 그 글자의 무게만큼 나미비아인들에게 전해지기는 할까. 나미비아 국민들이 대체 무엇을 뺏겼는지, 그 약탈이 현재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쳐왔는지, 독일 정부가 살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겠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너무나도 부족한 회복을 기다린다.

 

편집위원 해진 / jnnnterm@gmail.com



[1] 2021년 5월 28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의 발표를 번역한 것이다. 〈BBC〉의 “Germany officially recognizes colonial-era Namibia genocide”와 〈뉴시스〉의 “독일, 백년전 나미비아 식민지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스스로 인정”을 참고하였다. 제노사이드는 ‘집단 학살’을 뜻한다.

[2]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은 퐁니 퐁넛 마을에서 베트남 민간인70여명을 학살했다.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베트남인은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함께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은 단 한 번뿐, (그러나 이도 매우 낮은 수위에서 이루어졌다) 공식 배상을 약속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국가정보원(베트남전 참전 당시 중앙정보부)는 당시 학살에 관련된 참전 군인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단 ‘15글자’만을 공개했다. 자세한 내용으로는 〈고대문화〉 140호의 “기억의 잔재 속에서 침묵 된 목소리를 들을 때”와 아래 참고자료를 참고하라.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호롱 (2020.06.). 기억의 잔재 속에서 침묵 된 목소리를 들을 때. 고대문화 여름 140호, 116-128.

기사 및 온라인 자료

독일, 백년전 나미비아 식민지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스스로 인정. (2021.05.28.). 뉴시스. Retrieved from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528_0001457480&cID=10101&pID=10100 

민변 “국정원, 베트남전 학살의혹 정보 15글자만 공개”. (2021.04.09.). 뉴시스. Retrieved from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409_0001401702&cID=10201&pID=10200 

“베트남전 학살 기록 공개” 판결 … 진실 드러나나?. (2021.03.26.). MBC. Retrieved from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130401_34936.html 

‘피해자가 베트남인이라고 한국 정부 책임 면제될 수 없어’. (2021.05.16.).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5187.html 

학살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독일의 식민지배 ‘배상’ 시도. (2021.04.02.). BBC NEWS 코리아. Retrieved from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6613103  

Germany Officially Recognizes Colonial-Era Namibia Genocide. (2021.05.28.). BBC NEWS. Retrieved from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5727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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