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특집] 편집위원 민철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한산한 5월을 보내고 있는 교정, 구석구석에 주먹을 불끈 쥔 현수막들이 나부낀다. 그것들을 따라 천천히 중앙광장을 향해 걷다 보면 이윽고 현수막들의 중심에 닿는다. 본관 바로 앞의 천막 두 동이 그것이다. 그 좁은 곳에서 넓고 푸른 교정을 바라보며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들의 목소리를 고대문화가 담았다.
- 우리들이 없는, 텅 빈 학교에서
최근 들어 학내 노동조합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지난 3월 ‘어떤’ 노조가 천막 농성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노조가 중식 집회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본교 미화 노동자의 시급이 130원 인상되면서 ‘그’ 노조의 집회는 끝이 났다. 여기까지의 소식을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올 일 없는 학교의 소식에 꽤나 민감하다 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본관 앞의 천막은 걷힐 생각이 없다.[1] 130원으로 부족하다는 것일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또 다른 주장이 남아있는 것일까? ‘어떤’ 노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고려대학교 노동조합 2지부’ 지부장, 황성관 씨를 만났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려대학교 2지부 지부장 황성관입니다. 2지부는 처우개선, 차별 철폐를 목표로 2018년도 10월 25일 날 창립이 됐습니다. 2지부 조합원의 대부분은 무기계약직과 계약직, 프로젝트 계약직 소위 말하는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노동조합은 30년 동안 활동을 해온 노동조합입니다. 여기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냐면, 민주노총 총연맹이 있고요, 그 산하에 산업별로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전국대학노동조합입니다. 이는 편제로 나뉘어서 운영이 되는데요, 그중 하나가 고려대학교 지부, 고려대학교 2지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지부입니다. 그러니까 민주노총 산하에서 ‘고려대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총 세 개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세 가지가 분열된 것이 아니고 같이 가기 위한 발걸음을 하고 있다고 이해해주시면 되고요. 저는 그중에서 2지부의 지부장 황성관입니다.
2021년, 학교에서 일어난 쟁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황성관 씨가 속해 있는 고려대학교 직원노조의 천막 농성이다. 학교와 직원노조는 지난 해부터 근무 처우 개선과 차별적 수당 지급 시정을 두고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이후 진행된 조정회의까지 결렬됐다. 이에 3월 4일부터 직원 노조는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에 속해 있는 고려대학교 미화노조의 쟁의다. 미화용역업체와 학교 측은 이들의 시급을 2020년과 같은 수준인 9,260원(2021년의 최저시급은 8,720원)으로 동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그들은 같은 달 23일부터 중식 집회를 시작했고, 상기했듯 시급 130원 인상으로 협상이 타결되어 현재 집회는 끝이 났다.
여러 쟁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저희(직원 노조)가 하고 있는 쟁의는 하나고요. 저희는 노동 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단체 행동 할 수 있는, 헌법 상의 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고요.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 본관에 천막을 친 이유, 피켓을 든 이유, 교육부 집회를 하는 이유, 교직 집회를 하는 이유가 있겠죠. 첫 번째로 비정규직 철폐입니다. 비정규직 철폐, 다시 말해서 차별 철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정규직화를 해달라’와 ‘차별을 없애 달라’는 다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정규직화를 해달라가 아니고요, 차별 받고 싶지 않다 입니다. 저희가 놀면서 차별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지금 2지부에는) 수십 년간 학과 조교, 행정 조교로 일하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불만이 있으면 진작 노조가 활동을 했겠죠. 그런데 이러한 불만은 최근에 불거졌습니다. 염재호 전 총장이 직원의 이원화를 통해서 힘없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그 비정규직에게 과한 업무를 부담시켰습니다. 그래서 2018년에 생겨난 게 노동조합 2지부입니다. 직원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어 있는데, 정규직은 400명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이 900명에 다다른다면 믿어지십니까? 두 배 이상의… 원래 두 배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염재호 전 총장 때 정규직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저임금 노동 착취가 시작된 것입니다.
고대 청소노조 측은 시급 130원 인상으로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공공운수노조와 우리의 쟁의는 좀 다릅니다. 저희는 직고용 노동자들의 조합으로,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거죠. 공공운수 노조는 학교에서 하청을 준 회사와 이 분들 간에 노사분규가 일어나서 그래서 학교와 협의를 해서 학교가 조금 주고 회사에서도 조금 주고 해서 일단락이 된 상황입니다. 사실 그것도 선생님들 그렇게 일 많이 시켜 놓고 130원 올린 것도 웃기죠. 본질적으로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이 있는지요?
우선 연차 수당을 인정 안 합니다. 경력을 인정을 안 한다는 거죠. 그건 명백한 노동 착취입니다. 근데 이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또, 연차. 정규직은 1년 근속을 하면 하루씩 연차를 받아요. 비정규직은 2년 근속 하루 연차. 그런데 이게 근로기준법상 위법사항은 아닙니다. 근데 같은 구성원이에요. 복지잖아요. 이런 차별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공로상을 왜 정규직만 주죠? 그래서 노동조합 생겨나서 바뀐 것이 비정규직도 이번에 (공로상 수상 대상에) 포함이 된 건데, 근데 학교의 입장은 ‘우리가 개선했다, 안 줘도 되는 걸 줬다’ 이거에요. 이건 잘못된 걸 바꾼 겁니다. 그런데 같은 상이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다르죠.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정성에 가깝습니다. 휴직 관련해서도 정규직은 아프면 쉴 수 있거든요. 그리고 통상 임금을 줍니다. 근데 우리는 아프면 쉬는데 돈을 안 줘요. 또 출산을 하면 우리 선생님들이 쉬죠. 정규직은 18개월, 비정규직 12개월 쉬어요. 그래서 결국 학교가 6개월을 연장해 주겠대요. 근데 연장된 6개월에 대한 수당은 지급할 수 없답니다. 이게 뭡니까?
그다음에 평가요. 저희는 연봉 평가를 하는데, 평가 이후에도 연봉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오르지 않는 연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갑질할 건 다 하고 연봉 인상은 없고. 정규직은 주차비 공제가 되거든요. 비정규직은 주차비 공제를 안 해줘서 현금을 납부를 해야 된대요. 근데 그걸 못 내서 야근하다가 차단기가 안 열리는 그 수모. 그 자괴감. 그거 고치는 데 19개월 걸렸습니다. 다음에 명찰. 계급제도 아니고 비정규직은 두 줄 정규직은 한 줄. 비정규직들은 무조건 은행에서 받으래요. 정규직은 은행에서 안 받아도 된대요. 그러면 두 줄이라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잖아요. 그런 식으로 구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이 밖에도 재직 증명서 발급부터 시작해서 장기근속, 교직원 공제까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수차례 면담 요청도 하고 간담회도 하는데, 정규직과 스펙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협상이 잘 안 됐죠. 이런 처우를 해주는 게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간단한 예로 지금 저는 (노동조합 업무 때문에) 직무 면제를 받고 있는데, 지금 그 공석에 4차 면접 이탈(미달)이 났습니다. 4번째 채용 공고를 냈는데도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얘기거든요. 그만큼 처우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이죠.
과연 우리 학생들이 학점만 잘 따면 될까요? 그런 부분까지도 학생들에게 알려서 이러한 저임금 노동 착취가 계속 자행되고 있고, 이에 더하여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분노할 만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의 미래이기도 하니까요.
-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이들은 대단한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 요구 사항들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너무 당연한, 그래서 얼핏 사소하다고 느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절박했으며, 직접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노조와 학교 간에 교섭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성관 씨에 따르면, 노조는 차별 시정의 진정성만 보인다면 점진적 해결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13차례의 논의 내용을 백지화하면서 교섭 결렬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조정신청을 통해 의견 차이를 극복하려 했으나, 학교 측은 최초의 제시안을 고집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들은 천막을 치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우리들의 목소리가, 텅 빈 학교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회의 많은 것이 변하거나 멈췄다. 학생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면 수업이 불가능해지면서 학생 사회의 많은 활동이 멈췄고,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표출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숨막히는 비대면을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에 학생 사회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과연 돌아갈 곳이 있긴 하냐는 힘 빠지는 질문에도 의문 부호가 따른다. 기실 학생 사회의 수동성은 코로나19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고대문화는 지난 봄 139호부터 겨울 142호까지 이른바 학생 사회의 위기를 지적한 바 있다.[2] 그렇다면 가까운 학내 문제를 두고 ‘우리’는 실제로 어떻게 반응해왔는가. 그에게 마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생 사회가 예전에 비해서 소극적이 됐고, 그런 부분에서 학교에서 투쟁하시는 분들이 힘이 빠질까 우려가 됩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많이 변했죠. 관심이 없고, 소극적이에요. 시끄럽다고는 해요. 그런데 그분들께서 “외침에 대한 불평은 아닙니다. 오해는 말아주세요. 밤새우고 공부하고, 아침에 자야 하는데 그렇습니다” 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대부분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근데 그 이유가 비단 학생의 잘못만은 아니겠죠. 이 사회가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그렇게 배우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거거든요. 근데 이 사회가 작게는 고려대학교에서 쟁의가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깝죠. (저희 중식 집회에) 타 대학 사회학과, 사회교육과 학생들이 연대해주고 있어요. 도저히 자기는 가만히 있지 못하겠대요. 공부 좀 하라고 얘기하는데, 자기도 온라인 강의 들으면서 하더라고요. (웃음)
학생들의 지지가 없는 쟁의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비수를 꽂죠. 그렇게 되면 저희는 못 합니다. 저희도 학생들에게 죄송한 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파업을 하면 그 피해를 누가 받겠어요. 그런 부분이 학생들에게 죄송하죠. 동시에 같이 싸워야 된다. 이런 부분이 있고요. 왜냐하면 이게 비단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인가 이건 아니거든요. 과거에 여러 학사 업무 등의 최종 결정은 정규직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사무실, 조교 선생님들은 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원하는 부분은 본부 부서나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가서 요청을 해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이 최저시급을 받는 저희에게 넘어왔습니다. 2016년부터 염재호 전 총장부터 특히 그랬죠. 당연히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이나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권리를 못 받고 있겠죠.
왜 학생들이 적극적이 되어야 하나요?
그래야 바뀌죠. 변화가 되죠. 학교의 주인이 누구이냐는 것을 학교 (측)에서 느끼게 되고, 정말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학생이구나 생각하게 되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과 교수와 직원이에요. 거기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해야 하는 게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있기에 교수가 연구할 수 있고, 우리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학생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이에요. 학생의 교육, 강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근데 최저시급을 줘요 단순히 놀고먹겠다는 게 아니라 일한 만큼 달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8시 30분에 출근을 하거든요? (밤) 11시가 되어도 일이 안 끝나요. 거기에는 갑질도 포함이 되어 있고요. 학교는 계급이 아니에요.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교섭을 할 때도 학생과 직원과 학교가 동등하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지금 안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고려대학교는.
- 그리고 학교는
지난 4월 6일, 고려대학교 중앙방송국 KTN은 황성관 씨와의 대담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삭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한 학우가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의문을 제기하자, 영상 제작 국원은 학교 측에서 연락이 와서 임시로 비공개 전환하였다고 밝히며 학교와의 면담 이후에 조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영상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본 지는 KTN측에 영상 공개 가능 여부와 학교 측의 연락 내용 및 연락 발신 부서를 물었으나, 모두 답변이 불가하다는 답신을 받았다. KTN의 경우 학내 중앙방송국으로, 제작과 송출 전반에 있어 학교 측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더하여 고려대학교 직원임용 및 노동조합에 관련한 사항을 전담하는 부서인 총무처 인력개발부에 전화하여 이번 쟁의와 관련한 학교 측의 입장을 물었다. 협상 결렬 등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학교 측은 “현재 노조 협상 중이고, 학교의 의견이 나가는 것이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협상을 통해서 노조와 잘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며,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다 답이 있다” 정도로 답하며 말을 아꼈다. KTN 관련해서는 본 부서와 관련 없다고 밝혔다.
- 마지막으로 당신은
지난한 봄비가 내리던 주말, 오랜만에 정경대학 후문을 지나며 대자보를 읽었다. 두 대자보가 특히 눈에 띄었다. 〈아직도 안녕하지 못하십니까??〉라는 대자보와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여전히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가 마치 서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나란히 붙어 있었다.[3] 그만큼 내용도 상반되었는데, 전자는 세월호 추모사업이 정경대학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하였다. “정경대학의 이름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업에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반면 후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 연대하며 “학생사회가 기꺼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이 두 대자보의 시비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목소리들의 명백한 대비는 현 학생 사회의 달라진 모습을 여실히 대변한다.
2002년 고려대학교에서는 노동절 행사의 일환으로 ‘학내 청소노동자 실태 파악’이 학생들 주도로 실시되었고, 지금의 고대 미화노조가 설립되었다. 또 2009년에는 10년간 노동자 식대에 포함되었던 학내 폐지 대금을 용역 업체가 가져가겠다고 밝히자,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맞서 결국 미화 노동자 측이 승리했다. 이러한 변화는 행동하는 노동자와 노학연대를 주장하는 우리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됐다. 이번 직원 노조 쟁의도 마찬가지다. 아마 당신도 본관 앞의 천막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했거나 깔끔한 졸업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시위가 시끄럽다고 느끼거나 공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고려대학교의 노동자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어떻게 일 할 것인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은 안녕했는가?
끝으로, 황성관 씨의 말을 남기며 보도를 마친다.
열심히 공부하세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니 응원해달라!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 그 후의 이야기
그리고 천막은 사라졌다. 여름호가 마무리되어가던 중, 노조와 학교 간에 협상이 ‘잠정 타결’된 것이다. ‘잠정’이라는 말에 혹 잘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우려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성관 씨의 목소리가 밝아 안심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본 협상을 통해 그간 불가능하던 노조의 단체 협약이 가능해졌고, 급여 체계 개선을 위한 TFT 도입이 합의되었다(2023년 3월 도입 예정). 차별에 대한 부분도 대거 수정이 되었다. 그러나 황성관 씨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셨다. 특히 이번 투쟁이 간부와 일부 조합원만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 그렇다고 했다.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전하자, 황성관씨는 또 고맙고 여전히 미안하다며 웃으셨다.
그들은 “우리가 이겼으나, 우리만의 승리는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도 애초부터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었으며, 고려대학교 구성원 모두가 승자라고 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만일 그들이 그냥 물러났으면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졌을 것이다. 이번 고려대학교 노동 쟁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나는 이번 투쟁이 결승선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으면 한다. 노동을 존중하는 학교 그리고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긴 경주의 출발선 말이다. 우리 역시 그 트랙 위에 서 있다. 운동화 끈을 조여야만 한다. 더 멀리, 더 오래 달리기 위해서. 끝.
누군가는 그냥 물러서라고도 합니다. 혹은 적당히 하라고도 합니다. 타협할 수도 있었겠죠. 몇 개의 조항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늘 그랬듯 또 흘러가겠죠. 우리의 권리인줄도 모르고 그저 주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갈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는 속으로 병들어갈 것입니다.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한숨짓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려야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겉으론 강해보여도 약합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학교와 맞서 싸우는게 두렵습니다. 겁도 없이 맞서는게 아닙니다. 무섭고 두렵지만 누군가는 해야하기 때문에 일어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투쟁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없이 하나되어 싸웠습니다. 그리고 쟁취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겼으나 우리만의 승리는 아닙니다. 애초부터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구성원 모두가 승자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냥 물러났다면 결과적으로는 구성원 모두 패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이번 투쟁은 우리 투쟁사에 한획을 그은 특별함이 있습니다. 1지부만으로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지부만으로도 힘에 부쳤을 것입니다. 1, 2지부가 하나로 뭉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함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거져 얻어지는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전문부터 시작하여 100개에 가까운 단체협약 조항 하나하나에 우리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들은 사라지겠지만 후배직원들이 이어받을 단체협약에 우리들의 발자취를 남기게 되어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습니다.
이번 투쟁은 여기서 끝나지만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존중 고려대학교를 위한 첫발을 이제 막 내딛었을 뿐입니다.
〈勞動尊重(노동존중)〉 전문
-고려대학교 노동조합
편집위원 민철 / a40034136@gmail.com
[1] 2021년 5월 27일부로 협상이 잠정 타결되어 천막은 철거되었다. 다만 서술은 현장성을 위해 그대로 두었다. 이후의 서술도 마찬가지.
[2] 본 지의 봄 139호에는 “우리에겐 학생회론이 필요하다”가 겨울 142호에는 “뉴-노멀, 뉴-위기, 뉴-학생회”가 실렸다. 전자는 코로나 이전부터 우려되던 학생사회의 문제를, 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학생사회를 담았다.
[3] 두 대자보의 전문이 4월 17일자로 페이스북 페이지 ‘정대후문 게시판’에 실려 있다. https://www.facebook.com/kuboardrecord/posts/286880527003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