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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공간 해체

[시선; 가을에서 여름을] 편집위원 열음

'좋게 생각하자. 더 좋은 집으로 가려고 이사 가는 거라고 생각하자. 한 번만 더 이사 가자. 미안하다.'[1] 의연하게 기자회견을 마친 후 단상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연신 딸에게 사과하였으나, 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2014년의 어느 봄날 이후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광화문광장에는 노란빛의 물결이 끊이지가 않았더랬다. 꾸준하게 금실대다 보면 여태 바닷속에 침잠해있는 진상을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 절박함이었으며, 세월이 지나도 그날의 바다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모두의 다짐이었다.


그러나 지난 8월 5일, 광화문을 메우던 물결이 멎었다. 광장에 설치되어 있던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공간(이하 세월호 기억공간)이 해체된 것이다.


그 명분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였는데,[2] 서울시에 의하면 완공 이후의 광장에는 새롭게 조성될 보행광장으로 인해 구조물 설치가 불가할 예정이다. 이에 서울시의 최초 통보가 있었던 7월 5일 이후 한 달간 유족들과 시민 단체는 완공 후 추모 공간 재조성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며 서울시와 일곱 차례의 면담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유족 측의 요구를 끝내 거절하였다. 한편 그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시의 최종 입장을 전하겠다는 빌미로 유족을 사무실에 모은 후, 그 틈을 타 기억공간에 물품 철거반을 보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사기도 했다.


기억공간 해체에 대한 유족과 시민 단체 측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기억공간이 당초에 광화문 재구조화 착공 이전의 한시적 운영을 전제로 한 시설이었으며, 전임 시장 재직 기간에 이미 재구조화 이후 여타 추모 시설의 설치는 불가하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측은 “특정 시점이 되면 철거한다는 전제·합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마련되었던 천막 분향소의 철거 이후 그 자리에 들어섰던 반절 규모의 기억공간마저 해체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7년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꾸준히 거론되었던 것은 ‘광장’과 ‘시민’이었다. 2017년 5월 서울시는 광장 내 천막 설치의 위법성 및 보수단체 집회와의 형평성을 이유 삼아 세월호 천막 14동 중 3동에 불법 점거에 대한 변상금을 물렸고, 이에 천막 분향소는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구실 하에 보수 세력에 의해 더욱 거세게 공격받다가 결국 자진 철거되었다. 이후 유족들은 분향소를 대신해 기억공간을 건축했다. 분향소가 가졌던 항의 및 가시화의 성격을 모두 옮기지는 못했지만, 새로이 마련된 기억공간은 설계서부터 실제 공사까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조성되었으며, 골조 해체 직전까지도 때 이른 죽음들을 기억하려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시민의 공간’으로서의 또 다른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


유족 측이 철거가 아닌 자진 해체를 통해 기억공간의 골조라도 남기고자 한 까닭 역시 ‘시민’에 있다.[3]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며 시민 사회는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마저 붕괴될 수 있음을 경험하였고, 이는 사회에 공동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시민들은 국가로부터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광장으로 결집하였지만, 정작 서울시는 ‘시민 친화형 광장’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시민들로부터 광장을 앗아가는 모순을 보였다. 광장의 가치는 무엇이기에 우리는 매번 광장으로 모여들었던가. 지난 7년간 세월호 참사에는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피로감이 끈질기게도 따라붙었으나 유족들은 철거를 반복하면서도 광화문을 지켰고, 이는 비단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체된 기억공간의 전시물 등은 서울기록원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2024년 안산 단원구에 국가추모시설이 완공될 경우 이관할 것이라는 방침이 전해진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을 떠난 기억공간이 이전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서울시가 거듭 강조했던 ‘광장’과 ‘시민’에는 더 이상 세월호가 없다. ‘시민을 위한’다는 광장으로부터 쫓겨난 세월호 유족과 아직 참사의 트라우마에 매여 있는 이들은 급기야 서울시가 말하는 ‘시민’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이때의 광장이 진정 시민을 위한 것인지, 시민을 위한다는 광장에 왜 그날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노란 물결이 사라진 광장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다. 


편집위원 열음 / yeoleumse@gmail.com


[1] "애들에게 '한번만 더 이사가자 미안하다' 이랬어요". (2021.07.31.). 프레시안.

[2] 2019년 3월 서울시는 광화문 월대 복원과 녹색 교통의 실천, 시민 친화형 광장의 구현을 주요 목표로 삼아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는 “수많은 시민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막 부숴서 폐기물 처리하는 것은 마음 아프고 맞지 않겠다”며 철거가 아닌 해체를 통해 기억공간의 골조를 남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승주 (2019.02.27.). 세월호 투쟁은 단지 “기억”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자연대. Retrieved from https://wspaper.org/article/21703

김치연 (2021.08.05.).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작업 완료...광화문광장 떠나. 연합뉴스. Retrieved from https://www.yna.co.kr/view/AKR20210805128300004?input=1195m

오경민·강한들 (2021.07.14.). 철거 통보받은 ‘세월호 기억공간’…“추모에도 유효기간 있나”.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142109005

이민아 (2021.07.17.). 기억에 예의를 갖춰라. 한겨례21. Retrieved from https://news.v.daum.net/v/20210717100815381

이승훈 (2021.07.23.). 세월호 유가족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놓고, ‘기억공간’에 철거반 보낸 서울시. 민중의 소리. Retrieved from http://www.vop.co.kr/A00001586085.html

최용락 (2021.07.31.). "애들에게 '한번만 더 이사가자 미안하다' 이랬어요". 프레시안. Retrieved from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3011501235783?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허정원 (2021.07.22.). “시장 바뀌었다고” vs “박원순 때 합의”…'세월호 기억공간' 철거 입장 엇갈려. 중앙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1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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