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가을에서 여름을] 편집위원 해진
지난 8월 15일,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2001년, 아프간 내 알카에다 세력 소탕을 위한 미국의 개입 이후 20년 만이다.[1] 그러나 ‘돌아왔다’는 탈레반과는 대조적으로 민중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아프간을 떠나려 한다.
이들의 두려움은 1996년부터 5년간 지속되었던 탈레반 집권기 시기의 공포 통치가 반복되리라는 예측에서 비롯한다. 당시 탈레반은 정권 장악 직후에는 사회 안정화 정책으로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예술 활동 금지, 여성의 사회 활동 금지, 불시 검문, 즉결 처형 등 강압적인 통치를 폈다. 20년 만에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지도부는 재집권을 맞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이슬람 율법 기반의 통치를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연일 탈레반 대원의 폭력을 목격하는 아프간 대중들은 잔혹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탈레반 수뇌부가 행여 진정으로 변화를 원할지라도, 이들은 개별 탈레반 대원들의 돌발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2] 더불어 미국이 사라진 아프간이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등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집결지가 된 현재, 그들 간의 주도권 다툼과 테러 또한 수시로 발생하리라 예측된다.[3] 지난 8월 26일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공항 테러로 이러한 예측이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대중들의 아프간 탈출은 더욱 절실하다.
그들의 절실함을 인지했는지,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8월 26일 한국 협력자 아프간인 390명을 탈출시켰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미국을 도와 여섯 차례에 걸쳐 아프간에 군대를 파견했고 지역재건사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당시 협력한 아프간인들은 서방 세력의 부역자라는 이유로 탈레반에 박해받을 위험에 처했기에, 한국이 원인 제공국 중 하나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들을 박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난민’이 아닌 한국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는 ‘특별기여자’의 지위로 입국시켰다. 한국에 기여했거나 그럴 능력이 있는 자들만 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별기여자’ 아닌, ‘특별기여자’일 수 없는 아프간 민중 일반은 한국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일까.
그러나 한국 또한 과거 난민국으로서 600만의 피란민이 발생한 6.25 전쟁 당시 국제사회의 조건 없는 도움을 받았다. 또 소위 ‘선진국’으로 성장하며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으며, 실제로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국제사회 내 우리나라의 역할과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뜻이다. 더욱이 한국은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아시아 최초 난민법 시행국으로서 난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까지 지니고 있다.
난민협약의 중요한 정신은 자비를 베풀어 특별한 몇몇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떠밀린 사람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특별기여자’ 아닌 ‘난민’ 아프간 민중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책임을 실현해야 할 때다. 이것은 요청이 아닌 요구다. 아프간 민중을 구하라.[4]
아프가니스탄과 주변국의 지도이다. 아프가니스탄 영토에 해당하는 부분이 빨간색 선으로 둘러싸여 밝게 강조되어 있고, ‘아프가니스탄’이 그 중앙에 쓰여있다.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중심으로 1시 방향에 타지키스탄, 이후 시계 방향으로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영토가 있다. 각국의 영토 위에는 해당 국가의 국가명이 쓰여 있다. 그림 설명 끝.
[이미지 제목] 아프가니스탄 지정학적 위치 (출처: 구글 지도 이미지 캡처)
아프가니스탄(본문 상 아프간). 지정학적으로는 북동쪽의 중국, 이후 시계 방향으로 인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다시 중국 옆의 타지키스탄까지 6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대략적으로 중국와 이란 사이에 있다. 민족 구성으로는 대부분이 수니파 무슬림인 파슈툰(Pashtun)족과 타지크(Tajik)족이 전체 인구 약 3800만명 중 69%를, 대부분이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Hazara)족, 그 외의 종교를 가진 우즈벡(Uzbek)족, 투르크멘(Turkmen)족 등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위원 해진 / jnnnterm@gmail.com
[1] 미국은 2001년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으로 잠입하자, 탈레반 정부에 그의 인도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요청을 거절하자 이후 빈 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2001년 아프간에 미군을 파병한다. 이후 미국은 약 20년간 아프간 내에서 대(對)테러작전과 국가 건설 및 안정화 정책을 펼친다.
[2] 대면 설파에서 SNS 홍보 등으로 대원 모집 체계가 이전과 달라졌고, 다른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과의 조직원 포섭 경쟁 과정에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결정체계 자체도 상향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3] 중동전문가 장지향 센터장 “이슬람 급진세력 해방구 된 아프간 … 지옥문 열렸다” (2021.08.29.). 경항신문.
[4] 여건상 아프간을 떠날 수 없는 대중들도 있다. 탈레반과 아프간 내 분쟁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국제적인 관심과 경제적 지원 또한 매우 중요하다.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정태식·이철우 (2008). 탈레반을 통해 본 예언자적 이슬람 개혁운동에 대한 일고찰. 담론 201, 11(1), 69-97.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찬호 (2021.08.29.). 중동전문가 장지향 센터장 “이슬람 급진세력 해방구 된 아프간… 지옥문 열렸다”.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08291003001
아프간에 부활하는 ‘샤리아법’… 여성 인권 우려되는 이유 (2021.08.19.). BBC News 코리아. Retrieved from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8256340
이상언 (2021.08.17.). [이상언의 ‘더 모닝’] 아! 아프가니스탄, 이곳은 버림받은 땅입니까?.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29111#home
이영경 (2018.06.30.). 유엔난민협약 가입한 한국 ‘책임분담률 0%’ 손 놓고 있지만 혐오 정서는 더욱 커져.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806300600015#c2b
이일 (2021.08.31.). ‘390명의 특별기여자’ 그 기이한 용어의 비밀과 파장.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0443
이종섭·김윤나영 (2021.08.19). 이슬람법 통치 선언한 탈레반 “아프간 여성의 역할은 율법학자가 결정”.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10819111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