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건축 짝사랑 쟁이

by HanA
대학로의 랜드마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예술 극장 싸인물. 예술과 근대 건축가 김수근의 만남으로 마로니에 공원과 문화 클러스가 형성



'서산시대'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살풋 설레었던 적이 여러 차례 있다. 첫 번째 글을 보내고서 글에 가미(加味) 할 사진을 요청받았는데, 마침 그 주에 갑작스레 화장실을 들렀다가, 습관처럼 몇 컷 찍은 이쁜 건축물 사진이 있어 이 정도면 되려나 하고 전송하였다.(하! 나두-1 [방주교회-이타미준])

이렇게 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그날의 일상 사진이,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게 인쇄되었다. 내 글에 보태어 내 사진까지 출력물로 남는다는 점은, 자기애가 참으로 강한 나에게 있어 지금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능력치를 쓰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부스터(booster)를 쓴 스포츠카에 탄 마냥 기분이 둥둥 뜨기까지 했다. 예상외의 결과물을 볼 때마다 과거의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연재가 이어지면서, 공부 핑계로 놀아대며 목적 없이 찍어 둔 사진 기록이 때때로 글을 쓰는 촉매제가 되어 주기까지 한다. 앞으로 써 나갈 글의 꼭지를 적어 둔 메모에는 키워드와 감성팔이 할 만한 사진 정보가 모둠을 이루고 있다. 간혹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out)'에서의 핵심 기억처럼 남은 추억 속의 '그 사진'을 찾기 위해 외장하드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참 예뻤던 추억의 구석구석을 밤이 깊도록 훑던 어느 날이었다. 모든 가사가 나의 감성을 불태워 준 노래가 화르르 떠올랐다. '어느 작은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프리지아 꽃 향기를 내게 안겨 줄 그런 연인을 만나봤으면' [칵테일 사랑-마로니에].


이 노래는 마로니에 공원을 지척에 두고 6년을 살았던 나에게, 우체국이라는 장소성에 달달하고 애틋함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매년 봄마다 프리지아 한 움큼을 사게 했고, 탁자 위를 장식하는 가성비 좋고 수려한 오브제는 매년 봄맞이 루틴이 되었다.


여러 나라에 다양한 기능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느끼고 기억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어느 작은 우체국'이라는 키워드처럼, 최면처럼, 무조건 반사처럼 작용하여, 슬며시 주저앉아 부드럽게 마음 쉬게 하는 존재는 없었다. 내가 좋으면 그것이 남에겐 하찮거나 중요하지 않을지언정, 내게는 속 깊이까지 좋은 것이다.


사실 건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자아의 복합적인 감성 라인업으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내로라하는 각양각색의 작품을 여럿 답사하였음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대학로 뒷길에 있는 어느 건축사 사무소의 한옥을 개조한 20여 평짜리 하이브리드 건물이다. 그 건물을 보러 수십 차례 찾아갔었을 정도로 전율이 깊었다. 웅장하고 거대하고 유서 깊은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소소하고 다정하며 정감 있는 건축물도 있다. 양 쪽 다 훌륭하겠지만, 어느 쪽이 더 감동적인지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감성 게이지를 확인했을 때나 가능할 것이다.


가끔은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거나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라는 조건을 떨쳐내고, 남이 세워 둔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솔직하게 좋아하기를 추천해 본다. 자연인이 아닌 이상 매일 접하는 건축물이니, 건축에 대해 안목이나 식견이란 건 별다른 거 없이 본인의 취향을 잘 인지하는 것이라 주장해 본다.


한때는 태풍의 눈처럼 가장 핵심에서, 그리고 한동안은 슬며시 뒷짐 지고 멀리 서서 있었지만, 이래저래 건축 언저리를 떠돌다 보니 건축하는 사람 치고 로맨티시스트 아닌 사람 없어 보인다. 사람 좋으라고 하는 학문이 건축이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도 느끼지만 역시나 나의 건축 짝사랑은 참 골이 깊다. 고백하자면, 별이 총총한 새벽 기운에 써 내린 사랑고백 글이다.



서산시대 연재 중인 최하나 건축 칼럼 니스트의

'하나두 건축' 기사 교열본 입니다.


출처 :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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