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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Oct 25. 2022

너의 이름은

도시 지역

강남구 삼성동 전 한국전력 부지. 빼곡한 빌딩 숲 사이에 잠시 비워진 땅이다. 분명 엄청난 건축물이 지어질 테고, 그 건축물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 갈지도 기대가 된다.



도시건축에는 건물명·상호·컨텐츠·상품에 이르기까지 어느 영역에서나 브랜드 파워로 활용도가 좋은 마케팅 요소가 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기는 어렵지만 한번 쌓인 지역의 이미지는 문화적 성향을 띠며 오래도록 각인되는데, 이것은 사람의 감성까지 자극하는 공감각적 '지역성'으로  구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남'이라는 단어는 으리으리한 빌딩 숲과 온갖 고급스럽고 유명한 것은 모두 모여있는 강력한 장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같은 물건도 같은 음식도 그곳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한다.


얼마 전 수년 만에 고급 번화가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번 일정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어쩐지 그럴듯한 기억으로 남았다. 치기 넘치던 시절에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주기적으로 여러 지역을 누비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 참 안 변한다고 하지만, 동네도 사실 참 안 변한다.


인지도의 의미를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압구정 터줏대감인 모 아파트는 건설사에서 자체 브랜드로 네이밍 교체를 시도했다가 무산된 적 있다. 특정 호칭의 네임 밸류를 인정한 것이다. 오래 사용한 그 이름은 많은 이가 가치를 높이 사며, 대명사처럼 고착된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기에 굳이 혼선을 야기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명동의 뒷골목 반지하 틈새 공간에서 출발한 라면 상표가 있다. 매장 출입구가 낮아서 저절로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고, 좁디좁은 바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서 라면 끓이는 열기를 온몸에 코팅하며 매운 라면을 먹는 곳이었다.


즐겨 찾는 골목이었지만 다른 것은 무엇이 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그곳은 그저 라면 골목이었다. 작은 라면집이지만, 인지적 공간이 확장되어 주변에까지 본인의 이름을 갖게 한 예시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일어나는 존재 인정의 과정은 건축에도 오롯이 적용된다. 이용자 사이에 애칭이 생겨나고, 자꾸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존재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건축물은 규모나 입지에 특징적 요인 등으로 '인식'될 때 랜드마크로 거듭난다. 건물은 쓸수록 닳지만, 지역은 이용객이 많을수록 유명세가 채워진다.


건축주와 상담하다 보면, 종종 특출 난 건축물을 갖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거대하거나 적어도 주변에 비해 몸집이 큰 규모라면, 아니면 기존에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다면 조금은 수월한 조건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눈에 띄는 외관으로 치장하듯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 등 갖가지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어렵지만 확실하고 지속성이 좋은 방안은 건축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치 있으면 된다. 활력 있는 사람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축 공간은 꽃이 되고, 향기마저 내뿜으며 지역에서 굴지의 이름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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