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호스텔 앞에서 난 작은 버스에 올라타고 투어 여행사로 향했다. 바로 내가 잠시 머물렀던 퍼스를 떠나기 직전 퍼스 주변의 관광지들을 돌아볼 수 있는 몽키미아 투어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시드니에서 어학원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멜번 - 애들레이드를 거쳐 시드니의 반대편 퍼스로 이동해 온 이유는 호주의 해안가를 따라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다윈이나 캐언즈는 가지 못하고 결국 퍼스에서 마무리 짓고 다시 앨리스 스프링스. 지구의 배꼽 울룰루 여행을 떠나야 했는데 그냥 그렇게 서호주 여행을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커서 부랴부랴 잡게 된 투어 일정이었다. 투어 여행사에서 3박 4일 동안 타게 될 작은 버스에 오르기 전, 가이드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자신은 와짜(Wazza)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함께 여행을 하게 될 가이드라고 했다. 그 후 몇 가지 개인 정보를 적어야 하는 종이를 건네주었는데 그중에서 "Kin"이라고 적혀 있는 빈칸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 물어보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여행하다가 캥거루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연락해줘야 하는 사람을 적으면 돼"
와짜는 그렇게 유쾌한 친구였다. 낯선 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가 느꼈던 어색한 마음들이 조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들리게 된 곳에서 캥거루가 어떻게 뛰어다니는지 알려주겠다며 캥거루 흉내를 내기도 하고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 우는 소리도 내며 조금씩 투어 멤버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얼음벽들을 허물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가이드였다. 투어 일정 동안 우리 투어 멤버들은 함께 점심도 준비하고 와짜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면서 생각보다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와짜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우리들을 위해 직접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악기인 디저리두를 불어주기도 했다.
우리 투어팀은 아일랜드에서 온 4명, 일본인 커플, 홍콩에서 온 2명 노르웨이에서 온 3명에 나까지 모두 12명이었는데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맥주를 먹으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특히 병따개가 없어 난감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숟가락으로 병을 따주었더니 엄청난 신기술인냥 한병한병 딸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3박 4일은 더 짧았다. 특히 와짜하고는 3일 차 되는 날에 몽키미아에서 헤어져야 했는데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일정을 가진 일행들과 몽키미아까지 여행하고 다시 퍼스로 내려가야 하는 일행들이 나뉘어 다른 투어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투어 버스가 오기로 되어 있는 휴게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헤어짐을 앞두고 와짜는 우리에게 지니고 다니는 에보리진 지도를 보여주었다. 모양은 호주의 지도였지만 지금의 도시가 그려진 지도가 아닌 에보리진의 옛 지도였다.
"에보리진의 문화도 호주의 일부분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에보리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바로 교육 때문이야. 호주인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줘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는 교육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인 것이야. 적어도 여기에 모인 우리들 만큼은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 검은 피부의 에보리진이 있어. 그리고 브리즈번으로 갔어. 다른 여행자가 그에게 물었어.
<여행 중이야?>
<아니 난 내 형제를 만나러 왔어.>
<여기에 너의 형제가 사니?>
<응, 바로 너희 모두가 나의 형제야.>
다른 여행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왜냐면 그와 피부색도 다르고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우리는 형제야. 그 사실은 분명해. 왜냐면 너의 피부가 검든, 희든, 노랗든, 파랗든 그 속에 흐르는 피의 색은 빨간색 동일한 색이야. 우리 모두가 동일한 색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형제인 것이야. 너희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마음속에 새겨주었으면 좋겠어. "
와짜는 호주 내에서 에보리진이 겪는 차별대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그의 임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해주었던 모든 말들이 가슴속에 남아있지만 에보리진처럼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한국인으로서 그의 역사관이 특히나 공감이 갔다. 말을 다 마친 와짜는 우리에게 에보리진의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불러줄 노래는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건강하게 무사히 다녀오라는 내용의 노래야. 비록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그 의미를 느껴보길 바라."
와짜는 차에 있던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호주 원주민 언어로 불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가사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와짜의 진심을 가득 담아서 불러주는 노래라 그런지 더 심금을 울렸다.
"두번째는 대지(Mother Earth)에게 불러주는 노래야. 대지는 많은 오염에 각종 개발들로 아파하고 있어. 하지만 대지(Mother Earth)는 우리를 있게 한 기본이야. 그리고 이 노래는 단지 대지(Mother Earth)만이 아닌 집에서 너희를 걱정해주시는 엄마에 대한 노래이기도 해. 너희가 이렇게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너의 집에서 언제나 너를 위해 기도하고 걱정해주시는 엄마 덕분이야. 너의 엄마를 떠올리며 들어봐."
와짜의 두번째 노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부르고는 있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 전해져 눈을 감고 듣는 중에도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는 호주 원주민 엄마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우리의 전통 자장가야. 또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노래이기도 해."
이렇게 마지막 노래까지 우리에게 불러주었다. 노래를 들으며 바라본 모두의 얼굴은 알 수 없는 표정 속에서 벅차오르는 무엇인가를 애써 감추는 듯 보였다. 노래가 끝나고 그 벅차오르는 감정 탓인지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와짜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그때쯤 우리가 탈 버스와 가이드가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우리에게 앞으로의 여행이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기원해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가이드 와짜와의 일정은 끝이 났다. 와짜의 세 곡의 노래는 세계일주라는 여행을 앞둔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인 것 같았다. 여행 기간 내내 멤버들을 위해 항상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이렇게 멋진 메시지까지 가슴속에 새기게 해 준 멋진 최고의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