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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 Oct 13. 2021

마추픽추에서 만난 잉카의 아이들

철없고 부끄러웠던 나의 모습

마추픽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 지금은 마추픽추를 여행하고자 하는 모든 여행자들은 페루 레일을 이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여행할 당시에는 버스로 아주 저렴하게 마추픽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쿠스코에서 약 6시간 버스로 이동 후 산타마리아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 1시간 이동하고 산타 테레사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30분 정도 이동 후 이드로 일렉트리카에서 도보로 2시간가량 이동하여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 도착하는 매우 힘들면서도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루트를 택한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비용 때문이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우리에겐 젊음과 튼튼한 다리와 열정이 있기에 그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해낼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산타마리아행 버스가 있다는 소식에 나와 한국인 일행들은 새벽같이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7시 버스는 없고 8시에 출발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우리가 타고 갈 버스를 보니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라 매우 낡고 금방이라도 퍼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꼬불꼬불 산길을 달렸고 비포장 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던 덕분에 서서히 엉덩이에 마비가 올 때쯤 뒤쪽에서 뭔가 작게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아주 잠깐이었고 주위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길래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그냥 넘겼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는 도로변 한쪽에 마련된 간이식당에 정차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남미 여행을 하며 수십 시간을 버스를 타지만 우리나라 휴게소처럼 제대로 갖춰진 곳을 본 적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이 식사를 다 마치고서도 출발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길래 물어보니 자동차 뒷바퀴가 터져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아까 내가 들었던 소리가 타이어 터지는 소리였단 말인가! 그 소리를 듣고도 한참을 그렇게 달렸는데...



버스 기사에게 대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는 없고 그저 웅성거리며 누군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등장한 한 버스. 그 버스는 우리를 보더니 세워서는 버스에 임시로 보관 중인 스페어타이어 하나를 떼어주는 게 아닌가!! 쿨하게 타이어 하나를 내려주고는 쿨하게 출발하는 버스에 감사의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주고 간 스페어타이어가 우리 버스 타이어보다 작다는 것. 다행히 이 버스는 본래 바퀴 한쪽에 타이어 두 개를 끼우는 그런 버스였는데 터진 타이어는 하나. 결국 바꿔 낀 게 기존 것보다 작아서 땅에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타이어는 교체했으니 그냥 출발하는 게 아닌가.


저기요. 이봐요. 이렇게 그냥 출발해도 되는 건가요?



아니 어차피 바꾼 타이어가 작아서 땅에 닿지 않는대도 출발하는 상황이면 그냥 아까 펑크 난 상태로 가는 거랑 뭐가 다르지? 싶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그걸 따지고 들 입장은 아니어서 그냥 콩알만 해진 간을 붙잡고 그렇게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원래 6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몇 시간이나 지체된 탓에 느지막이 산타마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접선한 호객꾼이 디렉트로 이드로 일렉트리카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작은 봉고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그렇게 산길을 내달렸다. 계속되는 오르막에도 봉고차는 쉬지도 않고 쓱 잘도 올라가는 게 운전의 달인처럼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이드로 일렉트리카. 그곳에서부터 도보로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이동해야 했다. 처음 출발은 매우 순조로웠다. 마치 강원도에 온 것 같은 익숙한 풍경을 느끼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갔다. 침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하니 1시간 반 정도면 된다고 했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걸었을 즈음 또다시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 30분쯤 남았으려나 싶어 물어보니 1시간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30분쯤 더 걷고 만난 사람은 45분쯤 남았다나. 아구아스 깔리엔떼가 이사라도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점점 희망고문에 지쳐갈 때쯤, 안 그래도 지체된 탓에 날은 저물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고 등에 멘 짐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 길을 만약 혼자 걸었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낯선 산길에 나 혼자 걸어간다는 건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에겐 일행들이 있었고 그 일행들 덕에 함께 으쌰 으쌰 하며 힘을 북돋아주며 그렇게 걸을 수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길 위에서.. 한참을 걸으며 어느덧 도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길가에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길을 물어보기 위해 다가가니 자기를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한 숙소에서 호객행위를 위해 나와있는 소년이었다. 아니 우리가 올 줄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일행이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어두워진 상황에서 쉽게 남을 따라가기엔 위험부담이 컸지만 성인 남자도 아닌 앳된 소년이었고 무엇보다 날이 저물어 눈앞의 길조차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에(남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로등이 없다) 당시에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곤 그 소년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년의 말에 따르면 15분만 가면 호스텔이라고 하더니 15분이 지났음에도 그제야 동네 어귀를 지나고 있었고 입구에 있는 수많은 호스텔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적당히 가까웠으면 괜찮은데 계속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힘듦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너무나 힘들어하는 날 위해  내 짐을 들어주었는데 여행하며 절대 남에게 나의 여행 짐을 부탁해본 적 없는 나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3번의 다리를 건너고 골목으로 들어가서야 겨우 도착한 호스텔. 다행히 방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자 오는 내내 소년에게 짜증을 냈던 일들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렸고 힘든 나머지 다른 호스텔은 없나 두리번거리는 내 눈빛을 감지했는지 연신 나의 눈치를 보던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길에서 여행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기특한 아이였는데 말이다.

"Lo siento(미안해)"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부엌을 이용해도 좋다는 선한 얼굴의 주인아주머니 허락으로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라면 물을 끓이는 사이 주인분의 딸이자 소년의 여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무나 예쁘게 생긴 아이였는데 말은 어쩜 그리도 차근차근 예쁘게 하는지. 물론 거의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말투만으로도 뉘앙스를 알 것만 같았다.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스페인어로 나는 한국어로 티키타카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는데 아이가 본인이 먹고 있던 계란 음식을 내밀었다. 괜찮다는 우리에게 연신 건네주며 먹으란다. 한입 베어 먹었는데 세상 꿀맛. 그럼에도 계속 먹으라며 주었지만 어린아이의 식사를 빼앗아 먹는 것 같아서 겨우 아이를 달랬다. 어쩌면 그리도 붙임성이 좋은 아이인지 무엇인가 주고 싶다는 생각에 오는 내내 만들고 있던 팔찌를 손에 채워주었다.


"너 가져. I give you"

아이고. 스페인어로 선물이 뭐더라? give가 뭐더라?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떠오를 리가 만무했다. 보고타에서 앙헬라한테 스페인어를 배울 때 졸지 말걸. 후회가 몰려오는 가운데 아이는 그 큰 눈을 깜빡이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Tu muy bonita, porque yo quiero..... give tu" (너 너무 예뻐. 그래서 이거 주고 싶어)

영어와 스페인어가 말도 안 되게 섞어서 얘기했지만 역시나 못 알아듣는 눈치.

"내가 너 주고 싶어. Tu bonita, asi yo give tu."

요리하던 주인아주머니께서 내가 말하는 걸 보시더니 곧 상황을 이해하시고는 아이에게 가서 속삭여 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Gracias(고마워요)"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이해한 아이가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우리 일행들은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라면은 완성됐고 순식간에 해치운 우리는 이제 마추픽추 티켓을 사러 가야 했다. 우리를 안내해준 소년에게 물어보니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그 지도 좀 줄 수 있느냐 하니 우리와 함께 가준다며 먼저 앞장서 걸어가는 게 아닌가. 아까 짜증을 낸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다시 한번 사과하고 이름을 물으니 "하이메"라고 했다. 어릴 적 즐겨보던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에서도 하이메가 있었는데... 하이메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이가 이만큼이 들었음에도 왜 이리 철이 없는지. 너무나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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