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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Oct 06. 2024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사향 박하 향처럼 저릿하다

   젊음은 그냥 있어도 눈이 부십니다. 젊은이의 말은 토픽이 되고, 행동은 혁명이 되죠. 분노는 중력이고, 좌절도 에너지로 환원됩니다. 영혼의 혈관 속으로는 무지개 빛깔의 피가 흐르죠. 사랑과 욕망에 올인해서 파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주는 그의 집입니다. 그래서 젊음을 탕진한 어른들은 젊은이를 시기하기도 하죠. 풋내기들! 그건 부럽다는 말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젊음은 신도 통제 불능입니다. 그런 싱싱한 젊음이 시나브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글프고, 안타깝게.


  영화관에서 오래된 앨범의 사진을 보듯 <대도시의 사랑법>을 봤습니다.  공평하게 쏟아지는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허용된 사랑. 그러나 어떤 사랑은   실재하지만 실제는 미망에 빠져 헤매는 중이기도 하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슬픈 꿈을 꾸는 건 누군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덴 그 어떤 이유도 없기에 사랑을 잃은 자는 슬픈 꿈을 인공호흡기처럼 달고 버텨내고 있죠. 기쁨보다 고통이 더 크다 할지라도 운명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고, 그게 존재의 이유죠. 상대가 선택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으니 더 그렇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젊은 시절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이니세이션 스토리입니다. 20대 초, 푸릇푸릇한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 두 사람이 땅콩껍질 속의 연인이 아니라 찐친이 된 건 영혼의 주파수가 같고, 생활비를 줄이겠다는 실용적 태도에서 정당성을 띱니다. 재희와 흥수가 연인이 될 수 없는 건 애초부터 성적 취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희는 이성애자이고, 흥수는 동성애자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소모적인 성적 트러블을 겪을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죠.

  그게 가능해?

  극적 논리보다 현실적인 감정에 충실한 입장에서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캐릭터를 간과하면 영화는 뉴스나 논픽션이 됩니다. 관객은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감성을 갖는 게 기본이고, 그럴 때 영화의 재미는 두 배가 됩니다. 어쨌든 재희와 흥수의 충동적이고, 재기 발랄한 캠퍼스 라이프와 광란의 이태원 클럽 정복기가 현란하게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재희를 통해서는 짜릿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고, 흥수를 통해서는 가슴 저미는 동성애의 스토리가 이중주로 진행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사랑과 동성애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나 깊이 같은 건 아예 없습니다. 흑백논리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딜레마적인 질문 따위도 찾아볼 수 없죠. 그냥 사랑의 액션과 현장만 있을 뿐입니다. 그 욕망의 색깔이 너무 생생해서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 사회의 규범과 관성을 거스르고 자유분방하게 살던 재희도 20대가 저물어갈 무렵 점차 레디메이드 같은 생활인으로 변해 갑니다. 흥수도 군대를 가고, 대학졸업을 하고, 작가입문을 준비하게 되죠. 마그마처럼 뜨겁게 끓어오르던 젊음의 흔적은 흑백사진처럼 변해갑니다. 취직과 결혼을 하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거죠.

  그래서 오프닝 씬에서 재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웨딩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 씁쓸한 표정이 이해가 됐습니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이 허물을 벗고, 생활인으로 변신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변함없이.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느낀 점

  첫째, 흥수와 수호(종휘)의 관계에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과 <결혼피로연>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가 야외에서 격정적인 키스를 할 때, <결혼피로연>에서 웨이퉁(조문선)과 사이먼(미첼 닉텐스타)이 침대 위에서 어린아이들처럼 깡충깡충 뛰며 놀 때, <해피투게더>에서 여휘휘(양조위)와 하보영(장국영)이 격하게 말싸움을 할 때, 난망한 사랑에 빠진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걸 이젠 조금 이해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은 아수라가 됩니다. 흥수의 사랑은 소중한 선택입니다. 어떤 여자가 아무 남자를 사랑할 수 없듯이 흥수의 사랑도 아무 남자가 아닌 마음이 가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 선택을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만큼 유치한 폭력도 없습니다. 흥수의 캐릭터에 신뢰가 가는 건 자신의 사랑과 사회적 관습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를 병으로 여기고 있는 어머니(장예진)의 시선과 수호 사이에 놓인 칼날 위를 걷는 게 포즈는 아닐 테니까요. 흥수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드는 대사와 유머가 넘치는 장면들이 적지 않아 보는 내내 즐겁습니다.

  흥수가 군제대를 하고, 재희와 만났을 때 검은 정장차림의 모습을 보고 하는 대사.

  “보람상조냐?”

  재희가 취직을 한 뒤 직장에서 회식을 할 때, 술 취한 재희한테 민준(이상이)이 밤늦게 여자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고 하면서 데려다주겠다고 했을 때, 재희가 남자들이 집에 일찍 들어가면 여자들이 위험할 일이 없다고 맞받아치자 내뱉는 대사.

  “천재인데!”

  재희네 부서에서 단체로 노래방에 갔을 때, 부장이 꼰대 같은 일장 연설을 하려 하자 술에 취한 재희가 마이크를 잡고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을 부르자 부장 왈.

  “나, 쟤 싫어.”



  셋째, 흥수 모(장혜진)의 캐릭터가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아들의 동성애가 병이라고 여기고 신앙에 의지해 그걸 고치려는 모정은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성경을 필사하고, 아들을 이해하려고 티모시 샬라메가 출연한 동성애 영화인 <Call Me By Your Name>을 보러 가고, 흥수가 재희를 만나자 “난 네 병이 나을 줄 알았어.”라고 안도의 표정을 짓는 장면은 다큐의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피를 흘리며 욕조에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 손목의 동맥을 끊어 자살한 것으로 착각해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119에 신고를 하지만 복분자를 과음해서 그게 피처럼 튀었던 걸 뒤늦게 알고서 허탈한 표정을 짓는 흥수와 부스스 깨어나는 흥수 모의 표정이 대비되는 씬에 포복절도했습니다. 진지함과 유머의 밸런스가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넷째, 우유팩 스케치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보통의 우유팩을 그렸지만 유일하게 구겨진 우유팩을 그린 아이. 교사의 칭찬을 받지만 또래 아이들한테는 왕따를 당하는 아이러니. 나와 다르면 그걸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건 소아기적인 피해의식이며, 집단적 폭력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과잉의 교차편집과 이분할 씬은 몰입에 방해가 되고, 이야기의  흐름을 산만하게 만듭니다. 극적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에 끊임없이 교차편집과 이분할 씬을 쓰는 건 MSG의 과다 사용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족 –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일 수 있어?”

  소통과 배려는 행방불명되고, 늑대 같은 본능만 득실거리는 현실에서 그래도 찐친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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