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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의 포장마차

by Sir Lem

추억


"아줌마! 동인천 가려면 몇 번 타야 해요?"

"아저씨! 주안역 몇 정거장 남았어요?"


1980년대,

부모의 차를 타고 다니기가 흔하고 당연한 요즘 아이들과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래로,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들을 자주 돌아다녔다.

프라모델 사겠다고 버스로 20~30여분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는 씩씩한 아이이기도 했다.

교회나 학원의 단체 소풍처럼 어른들과 동행해야만 가능했던, 그래서 시장 쉬는 날 부모님을 졸라야 갈 수 있었던 수영장.

목욕탕 비좁은 냉탕에 아쉬워했던 어린 새싹의 갈증을 한껏 채워줄 드넓은 수영장.

드디어 우리끼리, 친구들끼리 가기로 약속했다.

하나의 미션과 같았다.

목적지로 데려다줄 버스 번호를 알아내야 했고, 도착 정류장 주변 건물을 외워야 했으며, 정류장에서 수영장까지의 경로를 어른들과 갔던 기억을 더듬어 그려야 했다.

다행히 부푼 설렘에 일찌감치 튜브에 바람을 넣고 걷는 아이, 수박 모양의 비치볼을 들고 이동하는 어른들의 익숙한 발걸음을 따라 우여곡절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파란 풀장의 반가운 락스 냄새는 온종일 놀아도, 폐장 시간을 앞두고도 질리지 않았다.

오랜 물놀이에 허기가 심해지다 보니 어른들과 함께 왔을 때 먹었던 풍성한 음식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로서의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다행히 인원수에 맞게 준비한 요구르트 덕에 원기회복할 수 있었다.

당 떨어졌다는 말의 의미, 당이 주는 효능이 뭔지 이른 나이에 깨달은 경험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동안, 그 누구도 지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같은 멤버로 꼭 다시 와야 한다는 주장과 다짐이 우정을 확인해 주고 힘을 불어넣은 까닭이다.


그래도 여전히 배는 고팠다.

수영장 안에서 파는 음식은 비싸니 나가서 사 먹자던 시장 서민의 아들들은,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핫도그, 청량음료의 유혹에 끝까지 의연했고, 결국 떨쳐냈다.

한참을 걸어 정류장 부근에 다다르자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고, 전원일치의 결정으로 그곳을 향해 달렸다.

어린 시절의 생기발랄함을 상징하는 대표적 몸동작은 달리기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참 다양한 이유로 달릴 일이 많았다.

특히 당장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시야에 들어올라치면 여지없이 달렸다.


천막 사이를 가르자 겹쳐지는 영상들.


네모 반듯한 풀장의 파란 물이 그러했듯,

네모 반듯한 철판 위의 빨간 떡볶이 역시 어린 영혼들에 충동을 일으켰다.


코를 자극한 풀장의 락스향이 그러했듯,

들통 안의 진한 어묵 국물 역시 어린 영혼들에 활력을 자극했다.


양은 쟁반 위에 진열된 노란 튀김은 핫도그를 압도했고,

얼음 담긴 아이스박스의 녹색 사이다 병은 벌써부터 혀를 간지럽혔다.


각자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세느라 분주했고,

회비를 걷은 총무의 고뇌는 진지했다.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숫자에는 아쉬워해도,

기대를 채워주리라는 맛의 확신은 여전했다.

우리는 그렇게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아줌마 어디 가셨지?"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

어린 날을 회상하자면, 인간의 삶, 어린이의 삶 3대 기본요소인 의식주 중 식을 담당하시던 분들 대부분은 아줌마, 여성이었다.

'아저씨 떡볶이 100원어치 주세요.'는 왠지 어색하다.

아줌마는 위대했고, 여성도 위대하다.


이미 몇 분이 흘렀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 정의로운 녀석들에게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다.

귀를 세우고, 네 모서리 갈라진 천막 틈을 번갈아 살피기만 할 뿐 대화도 없다.

잠시 후 정적을 깨는 인기척.

흙으로 된 땅을 긁는 슬리퍼 소리임이 분명하다.


드디어 뒤로 걷는 자세로 아줌마 등장.

흰 반죽을 담은 플라스틱 통이 뒤를 잇고,

엄마와 함께 그 무거운 반죽 통을 맞잡고 옮기는 내 또래의 여자 아이가 마저 입장한다.

우리를 살릴 두 여신.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당시, 그 나이에 듣기 힘든 존댓말.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았던 두 여인.


"어머! 기태야!"

"어! 아줌마! 민선아!"


형제


새까만 손톱 끝.

콧물이 마른 흔적과 때 묻은 손으로 콧물을 닦은 자국이 어우러진 흑백의 인중.

멍인지 때인지 분간이 모호한 얼룩진 양 볼.

까치마저 둥지 틀길 마다할 떡진 머리.

누가 아버지 생선 장수 아니랄까 봐 비린내 가득 품은 전신.

수영장은커녕 목욕탕도 안 가봤을 것 같은 꼬질꼬질한 형체의 형제.

9살 승태, 8살 승준이.


"수영장 가봤냐?"

"아니"


물어볼 필요 없었다.


'너희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마.'


말과 행동은 거칠지언정, 나는 늘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그들의 인생 첫 경험을 안겨 기쁘게 해 주려는 욕구를 품고 살았다.

그렇게 온화한 심성을 가진 인물로 여겨지길 바랐다.

내가 진심으로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내 선행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위선의 속물근성도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지금도 뿌듯하게 여기는 온전한 선행.

수단은 불온했으나 목적과 결말은 아름다웠던 그 사건.


녀석들을 데리고 얼마 전 친구들과 다녀온 수영장을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수영장이 목욕탕이 되어주길 바라는 기대도 일면 있었다.


"내일 가자. 집에서 제일 깨끗한 옷 입고 와. 알겠지?"


승태가 멍멍한 귀 때문에 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동생을 내려다보고 다시 날 쳐다본다.


"우리 돈 없는데?"

"형이 대줄게. 대신 내일 너희 둘 다 비누로 세수하고, 꼭 깨끗한 옷 입고 와! 꼭이야!"


깨끗한 옷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더불어 내가 그 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더욱 의문이었다.

말은 바로 해야겠다.


'훔칠 수 있을지'


부모님 몰래 우리 가게 한구석, 손님에게 거스름 돈을 내주기 위해 동전을 모아둔 돈통에서 훔칠 작정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6시에 청과도매시장으로 물건 하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7시쯤 일어나신다.

범행 시간은 6시 30분경.

알람이 있기를 하나, 그 시각에 일어나 본 적이 있기를 하나.

그저 하늘의 뜻이 함께 하기를 바랄 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라 하던데,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날의 완전 범죄를 통해 흐뭇하게 깨달았다.

제때 일어났고, 제 금액을 훔쳤다.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를 향하는 발걸음에서 피어오르던 흥겨움은, 형제를 만난 순간 냉기로 변해 온몸을 얼려버렸다.

머리를 안 감은 건지, 감긴 감았는데 빨랫비누로 감은 건지.

떡졌던 머리는 굳은 머리가 되었고, 상의로 입은 런닝에는 적갈색 핏자국이 선명했다.

둘이 맞춰 입은 반바지는 곧 스타킹으로 퇴화할 듯 낡았고, 슬리퍼 네 형제도 애들이 많이 지쳐 보였다.

세수만큼은 확실히 해 성의를 다하려 한 노력은 엿보이나, 멍과 때의 구분이 불명확했던 광대뼈 부위의 얼룩이 멍으로 판명됨으로써 난감함은 이를 데 없이 커졌다.


"안 되겠다. 여기서 기다려."


집으로 달려가 세 살 어린 동생의 런닝 두 장과 조각난 비누를 챙겨 왔다.

여름 성경학교가 한창인 교회 수돗가로 가 머리를 감기고, 형제가 입고 있던 런닝으로 물기를 닦게 했다.

잘 보이고 싶었던 여자 아이를 포함한 또래들의 주목은 안중에도 없었다.

여름 성경학교 개근상도 나 자신에게 내릴 선행상에는 못 미쳤다.

가져온 런닝으로 갈아입히고, 젖은 런닝은 요구르트를 담은 비닐봉지에 쑤셔 넣어 정류장으로 향했다.


"차 타고 가는 거야?"

"응"


둘 다 신이 났다.

높은 자동차에 올라탄 것이, 동네를 벗어난 외지의 차창 풍경이 그리도 신기한지, 해맑은 얼굴에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전후 사정을 감안하자면 애처롭지만, 그 자체로는 가슴 벅찬 장면이었다.


수영장 부근 정류장에 내려 두 가지 이유로 잠시 주저했다.

녀석들은 수영복이 없다는 사실, 튜브를 챙겨 오지 않았다는 자책.

일단 수영복은 그렇다 치자.

나야 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헤엄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수영장을 와봤을 리 없는, 특히 제 나이에 비해 유난히 작고 겁 많은 승준이를 데리고 풀 안에서 어떻게 놀아줄지 걱정이었다.

500원짜리 동전 아홉 개에 백 원짜리 동전들.

왕복 버스비에 수영장 입장료를 내고 나면 주머니에 남는 건 보람뿐.

돈 통에 돈이 줄어든 만큼 아버지 어머니는 더 힘드시겠지만, 좀 더 훔쳤어야 했다.

검은색 큰 대여용 튜브, 그 촌스럽게 생긴 튜브가 이리도 절실할 줄이야.

막막함에 사로잡힌 채 일단 수영장에 입장했다.

일정 간격으로 경계가 명확한 그늘막 하나를 비닐봉지와 녀석들의 런닝 네 벌을 펼쳐 찜하고,

물에 들어가기 앞서 국민체조를 시작했다.

체조 그 자체만으로도 어색한데, 팬티를 수영복 삼았던 형제를 향한 주위의 시선은 우리를 더욱 쑥스럽게 했다.

진지하게 해 볼 요량이었건만, 주위를 의식하며 키득거리는 형제의 웃음 바이러스는 나에게도 전염됐다.


"됐어. 이제 몸에 조금씩 물을 묻혀. 이렇게 해야 심장이 안 놀래는 거야."


방금까지 싱글벙글하던 승준이의 불안이 이제 막 얼굴 전체로 퍼졌다.


"승준아! 형 봐봐."


먼저 들어가 손바닥으로 수면을 쳐 승태에게 물벼락을 날렸다.

그제야 웃음을 되찾은 승준이의 손을 꼭 잡고 풀 안으로 안내했다.

넓은 풀 안에 몸을 담갔다는 것만으로도, 반복되는 물장난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형제.

그런 우리를 도착한 순간부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웃 그늘막 가족.

작은 우리에게도 부족해 보이는 요구르트를 홀짝거리던 광경에 아주머니가 참다못해 말을 건네신다.


"몇 학년이야?"

"저는 5학년이고요. 얘는 3학년, 얘는 2학년이에요."


튜브를 빌려주시고, 싸 온 음식을 나눠주시는 온정의 손길.

두 녀석에게는 익숙지 않은 가정 주부의 온기.


더 놀고 싶어도 체력이 달리는 승준이, 입술이 퍼란 승태를 데리고 나와 샤워실에서 씻겼다.

처음 입고 왔던 런닝으로 물기를 닦은 후 내가 가져온 런닝을 다시 입혔다.

수영장을 나서기 전, 이웃 그늘막 가족들에게 넙죽 감사 인사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족들 화답에 담긴 여러 감정은 형제를 향한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등에 쬐여오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며, 수영장을 나와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포장마차가 시야에 들어오자, 이내 현실로 다가올 일에 대한 상상은 더욱 구체화되고, 가슴을 넘어 머리에서도 맥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포장마차에 도착해 형제를 입구 앞에 세워두고 나 먼저 들어갔다.


"어머! 우리 기태 또 왔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기다리던 승태, 승준이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어 앞세우고 다시 들어갔다.


엄마, 민선이, 승태, 승준이

한때 가족이었던 네 사람의 상봉.


폭력


3년 전,

매년 추석 즈음 시장에서 열리는 척사대회는 많은 상인들의 참여로 인기가 많았다.

80kg 쌀 한 가마니, 신형 컬러 TV, 비디오 플레이어 등이 부상으로 준비된 큰 행사를 앞두고, 어른들은 연습을 핑계삼아 밤마다 모여 윷판을 벌렸다.

실상은 돈내기였다.

추정컨대 도, 개, 걸, 윷, 모에 각 1, 2, 3, 4, 5의 값을 부여하고, 두 번 던진 합이 가장 큰 사람이 판돈을 차지하는 방식이었으리라.

매판 우리 아버지의 싹쓸이를 기원해야 함이 당연했지만, 두 윷이 판때기에서 벗어나는 낙이라던지, 도가 나오는 등 첫 시도에서 글렀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응원했다.

민선이 아빠, 황 씨였다.

부부는 우리 가게 앞에서 생선을 팔았다.

지난겨울, 작고 마른 체구로 꽝꽝 얼어붙은 무거운 동태 더미를 간신히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치는 모습에서 느낀 측은함 때문이었을 터.

첫 시도에서 모가 나오며 기선을 잡은 민선이 아빠의 두 번째 시도.

다들 고만고만한 점수였기에 도만 던져도 황 씨의 승리였건만, 하필 윷 하나가 판때기 끝에 아슬아슬 걸리며 분쟁의 소지를 낳았고, 곧 웅성거림이 퍼졌다.


"낙이야 낙!"

"자! 이 판은 무승부!"


첫 판부터 내리 지다가 이제 한 판 이기나 싶었는데, 집단의 강한 입김으로 승부를 조작하려는 어의없는 사태에 민선이 아빠는 크게 분노했다.

어린 내 판단으로도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아이 X발 진짜"


윷을 집어던지고, 볏짚 윷판을 접어버리는 민선이 아빠.

이에 격하게 반응하며, 민선이 아빠에게 다가가 덩치를 자랑하듯 내려다보고 윽박지르는 아저씨들.

지켜보던 아버지가 장정들을 떼어놓고, 민선이 아빠의 손에 판돈을 쥐어주려 하셨다.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민선이 아빠는 그 손을 뿌리치고, 모두를 향해 욕을 내뱉으며 자리를 떴다.

자책 혹은 민망함에서였는지 누구는 땅에, 누구는 접힌 윷판에 시선을 가뒀다.

판을 이어가기 뻘줌한 분위기에 하나 둘 본인들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약자의 설움과 강자들의 부당함을 목격한 나 또한 씁쓸함을 가누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방 두 개 딸린 시장 안 과일 가게.

매일 저녁 무렵, 난 부모님과 손님 간의 흥정을 구경하기도 하고, 소일거리를 돕기도 하며 10시가 넘어 눈꺼풀이 무거워져서야 방으로 가 잤다.

하긴 그 시절 늦은 밤에, 숙제 미리 끝낸 어린이가 할 만한 거리가 뭐 있으랴?

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아까 그 일을 다시 곱씹는데, 시장에서 일어나는 싸움 특유의 소음·욕소리가 들려온다.

싸움 구경......시장 안에 사는 어린아이 입에 욕을 배게 한 원인 혹은 정황.

즉시 뛰쳐나가자마자 우리 가게 앞으로 몰려드는 구경꾼들이 시야를 반쯤 채웠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싸움이 아닌 일방적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이었다.

넘어진 아내를 발로 거세게 차며 욕을 토해내는 술 취한 민선이 아빠.


'민선 아빠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애들 보잖아'

서럽게 외치는 무고한 민선이 엄마.


종종 우리 가게 와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우시던 민선이 엄마의 슬픈 사연을 직접 목격했다.

그녀의 팔은 왜 그리 깊은 상처 투성이었는지, 왜 어느 날은 머리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는지 끄덕여졌다.


"젊은 색시가 나이 많은 인간 불쌍해서 시집와줬더니,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때리고 지랄이야. 왜!"


타박과 위로가 섞인 엄마의 호통에 황씨네 반복되는 폭력의 가정사가 담겨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까 윷놀이판에서 잠시나마 황 씨를 응원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어설픈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누르는 걸 보며, 더 강한 이들은 조롱으로 복수했고,

그 조롱에 꺾인 어설픈 강자는, 다시 가장 약한 이에게 분노를 되돌렸다.

정글 법칙의 악순환은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그날 이후 여러 차례 참혹한 가정폭력을 목도해아만 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모두에게 공손했던,

가족에 헌신했던,

날 보면 늘 반겨주던 민선이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가족에게 가혹했기에,

모두에게 무시당한 줄 모르는,

무도한 황씨는 담배를 입에 문 채 혼자 가게를 지켰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재회


누가 누구를 부르거나, 감정이 동반된 어떤 음색을 내는 일 없었다.

네 사람은 아무 소리내지 않았다.

서로에게 다가가 손길을 나누고 나서야 비로소, 북받치는 그것을 토해내는 큰 울먹임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예전에 물었던 적 있다.


"승태야! 승준이 눈 밑에 튀어나온 저거 뭐야?"

"아빠가 때려서 그래."

"귀 안들리는 것도?"

"응"


어깨에 불주사 맞아 튀어 오른 자국인 양, 피가 고인 듯 빨갛게 부어올랐던 눈밑 상처.

승준이의 그 상처를 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민선이, 민선이 엄마.

차마 엄마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차렷 자세로 목놓아 우는 승태, 승준이.

제 눈물, 제 감정도 주체하지 못하면서 동생의 눈물을, 자식의 눈물을 닦아주는 민선이, 민선이 엄마.

그리고 그런 모녀의 팔에 여전히 뚜렷한 크고 작은 상처들.

나쁜 가장이 본인 탓에 기인한 멸시의 스트레스를, 가족 상대로 야만스럽게 해소한 흔적.

차라리 본인만 없었더라면 단란했을 가정을 파탄 낸,

나쁜 가장 황 씨.

그러고도 멈춤 없이 두 자식에게 폭력의 맥락을 물려준,

나쁜 아빠 황 씨.


눈물 젖은 빵은 몰라도, 눈물 더한 떡볶이는 그날 먹어봤다.


따뜻한 고구마튀김은

내 가슴의 온기와 함께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 바스락거렸고,

무 들어간 어묵 국물은

시원한 결말과 함께 진한 추억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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