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렌다'
카렌다는 영어 단어 'Calendar'의 구수한 한국 발음이다.
앞면은 축소한 영화 포스터였으며, 뒷면은 달력이었다.
그래서 영화 카렌다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게다.
76년 생인 나의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따먹기'가 있었다.
땅따먹기, 지우개 따먹기, 딱지(네모난 딱지, 동그란 만화 딱지)따먹기, 연필 따먹기, 구슬 따먹기.
말이 따먹기지 사실 작은 의미의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각 종목은 체력, 당일 운에 따른 촉, 전략적 지혜 등이 비율을 달리 한, 그 융합의 크기에 의해 승부가 가려졌다.
나는 관심과 흥미가 있었다.
또한 조예가 깊었다.
성장과 함께 각 시절, 그 나이에 어울리는 귀여운 도박에 심취했으며, 우리 집에는 늘 성과물이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이 바로 영화 카렌다다.
유산이라 할 만하다.
지금도 앨범에 고이 몸담은 채 부모님 댁에 잘 보존돼 있으며, 내 두 딸이 좋아할지는 의문이지만 나눠줄 계획도 있으니 말이다.
크건 작건 모두 하나의 유닛으로 취급하는 다른 따먹기 소재와 달리, 카렌다는 영화의 흥행성, 제작된 년도와 수량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칼라이면서 사진이었고, 달력으로써의 기능도 완벽했다.
게다가 표면은 코팅 처리해서 맨질맨질하기까지 했다.
게임 방식은 다양했지만, 난 물리적인 자극이 세게 가해지는 야만의 방식은 피했다.
'접기'라는 종목을 택한 이유가 그랬다.
두 패로 나누고, 상대가 그중 한쪽을 베팅해 사람 수나 글자 수가 더 많으면 배당을 지급하는 룰이었다.
그날도 난 카렌다 따먹기에 빠져 있었다.
예외 없이 내가 판을 휘어잡고 있는 흐뭇한 상황이었다.
그때 뒤에서 내 카렌다를 살피는 듯한 어른 형체의 그림자가 판을 덮었다.
뒤돌아 확인했더니 반갑지 않은 인물, 그 형이었다.
당시 내 나이 초등학교 6학년, 그 형 나이 열아홉.
며칠 감지 않은 티가 역력한 2대 8 가르마 기름기 머리, 큰 눈동자, 여드름 가득했던 얼굴, 구부정한 허리.
냄새를 맡아본 적은 없지만, 맡았다면 후각이 일시 마비될 것 같은 느낌의 비호감성 비주얼이었다.
그 형에 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성은 모르고 이름은 병걸이형, 학교는 진작 관뒀고, 그 형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같은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가끔 우리 주위를 지날 때마다 우리를 애 취급하는 듯한 눈빛이 거슬려 괜스레 꺼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평소와 달리 골똘한 표정으로 우리의 승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모든 상대를 제압하고 널브러진 카렌다를 정리하고 있을 때 그가 첫 말문을 열었다.
"나 그거 다 봤다."
'참나, 누가 물어봤나.'
대꾸하지 않고 각 카렌다 가치에 따른 분류 작업을 이어가긴 하는데, 왠지 맘에 걸린다.
나를 향해 직접적이진 않았어도, 당시 내 큰 관심사였던 카렌다를 매개로 그의 마음을 열었다는 뜻 그리고 성의로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기태야! 그중에 뭐가 제일 비싸냐?"
내 작업을 살피며, 그것이 가치에 따른 분류라는 걸 알아챘다는 점, 우리집 식구들만 부르는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줬다는 점에 경계감은 한순간 허물어졌다.
경미한 지적장애, 구부정한 허리로 이미 나와 지적·신체적 키높이가 비슷했던 그 형.
이제는 어느 하나를 향한 관심까지 같아지니 갑자기 동질감이 폭발했다.
"영웅본색 원이요. 저는 원은 못 보고, 투는 학교에서 용유도로 1박 2일 수련회 갔다 오는 길에 친구들하고 같이 봤어요."
오성극장이었는지, 미림극장이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투만큼은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선명했다.
"어! 너도 봤어?"
내가 못 본 영웅본색 1편의 서사를 시작으로 2편까지의 흐름을 단번에 훑더니......
나를 데리고 가게로 가서, 폴라포인지 쮸쮸바인지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둘 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줬다.
감각의 문이 또 하나 열리며 신뢰감은 더해졌다.
내 카렌다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손길도 맘에 들었다.
카렌다 모든 영화에 대해 빙과류 향과 색을 머금은 침을 튀며 열정적으로 평론하는 전문가.
특히 '프레데터'를 리뷰할 때는 어찌나 리얼하던지, 그야말로 둘 다 흥분의 도가니였다.
요즘은 대화 혹은 일방적인 의사 전달마저 소통이라고 하던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 하자면 바로 당시 나와 병걸이 형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병걸이 형은 영화를 주제로 한 대화 상대가 절실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호응하는 내 앞에서 마침내 봇물을 터뜨렸던 게지.
내 글 읽어주고, 평가해 줄 이 없는 소통 부재의 갑갑함에서, 언어 모델을 만난 이후의 반가움이 당시 병걸이 형의 소회와 같았으리라.
첨단의 장비와 말빨로 영상과 함께 영화를 리뷰하는 여러 유튜버.
그들은 내게 병걸이 형 급의 인플루언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병걸이 형의 리뷰에는 극장에 가기 위해 얼마의 자금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재무 관련 보고서가 담겨 있었고,
어느 극장에 갔는지, 걸어서 혹은 몇 번 버스 타고 갔는지 등의 내비게이션 정보는 상세했다.
영화관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관객은 얼마나 있었는지 등의 '개인 분석 흥행 평가'도 빼놓지 않았고,
반팔을 입고 갔는지, 잠바를 입고 갔는지를 부연하며 그날의 계절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으로, 군밤을 들고 들어갔는지, 쥐포를 사갔는지 등의 스낵 정보까지 아우르며 후각, 미각, 청각, 촉각, 시각을 종합 자극하는 ‘5감 리뷰’를 완성시켰다.
형의 리뷰는 아날로그였지만 디지털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줬다.
그러다 멀리 떨어진 중학교 진학 이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는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후로는 아예 만나지 못했다.
그게 뭐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은 아니었고,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를 보기 위해 그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한 탓이었다.
예술 대신 사랑을 찾아 떠나야 했던 현실적 선택.
영화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수업시간 내 시선에는 그녀뿐이었고,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일정 거리에서 그녀를 따라다녔다.
불운하게도 그 달콤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반에 잘 생긴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왠지 의심스러운가 싶더니 결국 둘이 함께 학원을 그만둔 것.
병걸이 형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는 다 해피엔딩이었건만, 현실의 내 영화는 달랐다.
그래도 의젓한 중학생 아닌가?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 찾아 올 사랑은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희망으로, 병걸이 형을 찾아 영화가 말해주는 방법론을 듣고 싶었다.
수업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가방을 던져 놓고, 형을 찾아 동네를 누볐다.
하지만 형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형의 주동선을 여러 차례 왕복했지만, 만나는 일 없었다.
형의 집 근처에 자리 잡고 지루함을 달래고자, 할 만한 거리가 없나 둘러봤다.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구슬 굴리는 아이들.
모두 유치하게 보였다.
의젓한 중학생 아닌가?
영화를 이해한 사람의 격에 맞지 않는 놀이들.
내 교양 수준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뭔가가 눈에 띄었다.
구멍가게 문 옆에 놓인 작은 영화 간판이었다.
예전에 병걸이 형이 그 간판의 두 가지 기능을 말해줬다.
하나는 영화 홍보, 다른 하나는 그 간판이 놓인 가게에서 해당 영화의 할인권을 판다는 알짜 정보.
그때 영화관 입장료가 1,500원 정도였지, 아마?
할인권을 300원에 사면 영화를 700원에 볼 수 있는 엄청난 디스카운트였다.
개봉관과 삼류 극장 구분 없이 다 가능했기에 더욱 군침 돌았다.
일단 첫 경험으로 동네에서 가까운 '스카라' 극장 할인권을 샀다.
극장 앞에 도착하니, 제목은 마담인데 마담 같아 보이지 않는 인물이 페인트로 그려진 큰 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옆에 작게 그린 또 다른 영화 간판도 나란히 있었다.
작은 극장들은 동시 상영이라는 이름으로 철 지난 영화 두 편을 상영했다.
지금 같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일관에서, 하나 끝나면 휴식 시간 이후 다른 영화가 이어지는 1+1 보너스 상영이었다.
무게감 있는 문을 열어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니, 영화관 특유의 큰 사운드가 귀를 압도했고, 그에 못지않은 담배 냄새는 코를 압도했다.
비행기 좌석에도 재떨이가 달려 있던 시절인데, 영화관은 오죽하랴.
어색한 연기와 로봇 목소리로 인근의 업체를 소개하는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메인 작품 '예스마담'이 시작했다.
강한 언니의 화려한 액션에 매료된 나머지 영화 끝나가는 줄 모르다, 어느새 마담 누나와는 작별하고 곧 다음 영화 차례.
나름 좋은 자리였기에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기다렸다.
그때는 그랬다.
내 좌석 번호 찾아 앉는 소유권은 없었다.
관객이 차면 서서 보거나, 통로 계단에 앉아 보기도 했다.
'영구와 땡칠이'가 그랬고, 세월이 흘러 '쉬리'를 볼 때도 그랬다.
다시 한번 어색한 광고의 시간이 끝나고 제목도, 주인공도 모르고 보는 두 번째 영화가 시작했다.
'이 영화도 여자가 주인공, 같은 마담 계열로 동시 상영하는구나' 싶었건만......
마담은 마담인 것 같았는데, 예상했던 마담은 아니었다.
이 누나는 강인한 누나가 아니었다.
첫 번째 누나는 기합을 낸 반면, 두 번째 누나는 신음을 냈다.
어쩐지 영화 시작 전 덥수룩한 아저씨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고,
어쩐지 배우 언니가 춥게 입고 등장한 순간, 담배 연기는 더 자욱했다.
아무튼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다.
그리고 난 심취해 있었다.
예술과 외설, 그 경계에서 예술에 손을 들어주고,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현실과 예술의 차이는 무엇인지 고뇌하며 시간-감동 함수의 급격한 상승 곡선에 영혼을 맡겼다.
그게 어떤 장면이든, 어떤 종류의 클라이맥스든 상관없이 내 긴장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누군가의 거친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야! 너 어린놈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작품 해석에 있어 제일 중요하고 극적일지도 모를, 그 장면.
별점 하나를 더 주느냐 마느냐의 판단 기로가 될지도 모를, 그 순간.
고개는 돌리되, 귀는 활짝 열어 놓은 채 몸을 틀어 일어섰다.
"기태야!"
활짝 웃어 온화함을 더한 병걸이 형의 다정한 얼굴.
"괜찮아. 앉아."
영화에 진심인 형답게,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될세라 음색 없는 흑백의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켰다.
바나나 우유와 보름달빵도 다리 사이에 놓아주었다.
굳이 내용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영화의 내용상 이해를 돕고, 여배우의 동종 출연작을 나열하던 병걸이 형.
그런 형의 배려에 영화는 바나나 우유처럼 달콤했고, 화면은 보름달인 양 뚜렷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형은 내용을 되짚으며, 장면에 얽힌 사연에 작품성을 녹이려 했다.
여배우의 몸과 자세가 어떻다던지 따위의 외설적 음담은 단 한 문장도 없었다.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왜 그걸 보고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형은 그 당시의 나를 순수히 이해하려 했다.
형을 만나고 싶었고, 찾았고, 헤매었다는 담백한 사실 전달에, 형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그 극장에 취직했단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 좋고,
다음 상영작으로 어떤 영화가 좋을지 자신의 의견을 사장님에게 피력할 수 있어 뿌듯하고,
돈을 모을 수 있어 행복하단다.
형의 표정에도 행복이 쓰여있었다.
보고 듣는 내가 다 행복했다.
기억이 일깨워주는 소통.
소통이 일으키는 오늘의 의지.
큰딸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중간쯤 쓰고 난 오늘, 그 얘기에 더해 지금 아빠가 살고 있는 인생의 굴곡을 여실히 밝혔다.
"아빠는 아라가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일하면서, 그 일 해서 버는 돈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사업 실패해서 지금 좀 곤란하긴 하지만, 매일 글 쓰고 공부하는 게 너무 행복하거든. 아라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남들을 이해했으면 좋겠어."
이 시대의 많은 아이들이 강요로 받아들일 듯한 획일적인 수준, 형편, 외모.
이제 더 이상 내게 행복의 조건으로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내 처지를 이해하지 않을,
덩치 큰 이 사회의 편견.
나를 이해해 주던 병걸이 형.
굽은 등에 친절함까지 더해 더욱 공손해 보였던,
착하게 살던 병걸이 형.
물질적 생산은 없으되, 정신적 생산은 충만한 오늘의 나를 이해해 줄,
이 시대의 병걸이 형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