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중학생의 영웅담을 더하기 위한 쓸데없는 시비였다.
묻지마 폭행이었지만, 피해자는 나를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자식의 일탈을 참고 또 참아오셨던 아버지.
결국 그날, 내 얼굴에 아버지의 차가운 손바닥이 날아왔다.
안 그래도 서먹했던 부자 사이는 그 뒤로 더욱 멀어졌다.
죄책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공기에서 오는 긴장이 더 버거웠다.
나는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시간을 피해 도망치듯 지냈다.
그런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시려는 듯,
아버지도 애써 나를 찾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색하고 답답했던 단절의 벽이 뜻밖의 계기로 무너졌다.
가로로도, 세로로도 ‘개똥아 똥쌌니 아니오’.
친구가 수업 시간에 노트에 적어둔 이 아홉 글자의 구성은
지금 봐도 참 기발한 배열이다.
피식 웃음이 나올 만큼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중독적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 TV를 보다 문득 그 글귀가 떠올랐고,
탁자 위에 있던 메모지에 장난삼아 써봤다.
아버지 오실 시간이 다가와 밖으로 나갔고,
늦은 저녁까지 놀다 들어와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리모컨을 집으려는데,
전날 그대로 놓여 있던 메모지에 익숙한 필체가 조용히 더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손글씨였다.
가로든 세로든 ‘유달산 달팽이 산이다’.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소주만병만주소’.
전라남도 목포의 유달산,
전라도 출신의 아버지.
무뚝뚝하셨던 그분이 아들에게 건넨 장난 같은 화답.
그리고...... 화해의 손길.
나는 웃으며 울었다.
눈물의 의미도, 웃음의 까닭도 몰랐다.
그냥 좋았다.
소중한 스물다섯 글자.
똥 싸지 않았다는 개똥이도 고맙고,
달팽이 사는 유달산도 고맙고,
알코올중독을 코앞에 두고 있던 누군가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