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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네디 Aug 04. 2023

필담

오랜 시간 자식의 일탈을 참아 오셨던 아버지의 귀싸대기 한 대.

안 그래도 서먹했던 부자 사이는 그 후로 더욱 소원해졌다.  

죄스러운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히 부담스러웠던 몇 개월의 대화 없는 날들.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시간을 피하려 했고, 그런 자식이 불편해할까 봐 아버지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으시는 눈치였다.


그러다 마침내 어색하고 난감하고 답답했던 그 분위기가 깨지는 계기가 찾아온다.



가로 세로 모두 '개똥아 똥샀니 아니요'


친구가 노트에 적어 놓은 아홉 글자의 구성이 참 신기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에서 TV를 보다 문득 아홉자가 떠올랐고, 탁자에 메모지가 보이길래 따라 적었다.


아버지 오실 시간이 다가와 밖으로 나가 늦은 저녁까지 놀다 돌아와 자고.


다음날 학교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TV 보려고 거실로 나와 탁자 위 리모컨을 집으려는데 여전히 놓여 있는 그 메모지에 내 글씨뿐만 아니라 눈에 익은 다른 글씨가 보였다,


아버지의 필체가 여실한 답글이었다.

가로, 세로 모두 '유달산 달팽이 산이다' 그리고 앞이나 뒤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소주만병만주소'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유달산,

전라남도 출신 아버지.

무뚝뚝하셨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화답 그리고 화해의 손길.

한껏 눈물 흘리며 웃었다.


어린 시절 나와 아버지가 나눈 필담.

내 인생 가장 감동적인 글귀는 다름 아닌 저 스물다섯 글자였다.


서로를 이해하게 했고 다시금 따뜻한 부자지간으로 동여매어 준 스물다섯 글자.


똥싸지 않았다는 개똥이도 고맙고,

달팽이 사는 유달산도 고맙고,

알코올중독을 목전에 둔 누군가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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